재난 키우는 ‘악순환의 고리’
재난 키우는 ‘악순환의 고리’
  • 김정덕 기자
  • 호수 253
  • 승인 2017.09.01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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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후 국가재난 분석해보니…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국내 달걀 관리 시스템의 허점들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중요한 건 그동안 국내에 큼지막한 사건ㆍ사고가 터질 때마다 지적돼 온 고질적인 문제점들이 이번 살충제 달걀 파동에서도 예방과 분석, 대응과 사후대책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재연됐다는 점이다. 왜 반복되는 걸까. 변하지 않는 공식이 있어서다. 그 공식을 깨지 못하면 문재인 정부도 별반 다를 바 없다.

▲ 살충제 달걀 파동은 이전 정부의 세월호 참사나 구제역 파동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다.[사진=뉴시스]

■2016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3년간 달걀 잔류농약검사 없었다”고 지적, 손문기 식약처장 “농식품부와 함께 안전관리 대책 수립하겠다” 답변.-직유 유기

■농식품부는 2016년부터 올해 1월까지 달걀유통센터(GP센터) 추진, 식약처가 규제라면서 반대.-생산자 중심 사고로 예방 실패

■농식품부는 이미 4~5월 친환경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DDT)이 검출 확인.-정보 은폐

■친환경 인증 농가들, 살충제 사용.-감독기관(식약처)의 부실 감시

■“살충제 달걀 없다”면서 “안심해도 된다”고 호언한 류영진 식약처장.-안이한 태도

■살충제 달걀 생산한 농가 발표하면서 미검출 농가까지 포함.-졸속 조사와 표기 오류

■전수검사 과정에서 일부 농가에 표본 채집 맡겨 조사 신빙성 하락.-엉터리 조사

■살충제 달걀 농가 조사 후 농식품부와 식약처의 정보 공개 엇박자.-컨트롤타워 부재

■살충제 사용 농가에 친환경 인증 해준 민간기관 13곳 중 9곳에 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 퇴직자 재취업.-농피아(농관원+마피아) 비리 논란

■전수조사 끝난 8월 18일 제도개선 방안 발표.-졸속 대책 발표

■살충제 허용기준치 넘지 않은 35개 농가에 ‘친환경’ 딱지 떼고 유통 허용.-솜방망이 처벌

‘살충제 달걀’ 파동 과정에서 지적된 문제들이다. 어떤가. 패턴이 보이지 않는가. 정부가 재난에 대처하는 방식은 ‘일정한 유형’을 띠고 있다. ▲재난의 징조 ▲징조의 무시 ▲재난 발생 후 초동대처 미흡 ▲이해관계자들의 정보 은폐 ▲책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허술하고 졸속적인 대책 ▲재발 가능성 잔존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박근혜 정부, 현재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큼지막한 사건ㆍ사고들을 보면 이 공식은 결코 빗나가지 않는다.

1. 구제역 사태 : 초동대처 실패

먼저 2010년 11월부터 2011년 4월까지 있었던 구제역 사태를 보자. 당시 경북 안동(소 구제역)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보름만에 경기도 양주(돼지 구제역)로 번지면서 사상 최악의 구제역 피해를 낳았다.

징조는 있었다. 그해 1월 경기 포천과 연천, 4월에는 인천 강화와 경기 김포, 충북 충주, 충남 청양 등에서 구제역이 번졌다. 한해 두번의 구제역을 겪었다면 정부도 이골이 날 법했다. 하지만 11월 중순 안동에서 구제역 의심 신고를 받고서 간이검사키트로만 구제역을 판정했다. ‘음성’ 결과가 나오자 차단방역은 실시하지 않았다. 초동대처에 실패한 거다.

예방이 필수였다. 하지만 농가들은 백신이 가축 상품성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정부는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놓친다는 이유로 백신 사용을 기피했다. 2009년 기준 소고기와 돼지고기 수출액은 합계 약 20억원. 348만 마리의 대량 살처분과 매몰 비용으로 3조원을 투입한 것과 비교하면 정부의 판단 착오였다. 결국 백신을 찔끔찔끔 사용했던 탓에, 구제역을 서둘러 잡는데 실패했다. 정부가 전체 백신 처방을 결정한 후에는 ‘물백신’ 논란마저 일었다. 정부는 백신의 효과조차 제대로 몰랐다.

약 6개월만에 잡힌 구제역 재발방지 대책으로 정부는 구제역 긴급행동지침과 가축전염병예방법 등을 수차례 개정했다. 하지만 구멍은 여전했다. 물백신을 사용하게 된 원인은 밝혀진 바 없고, 공급업체를 안 바꾸고 관리를 제대로 못한 농림축산식품부 공무원들은 경고 처분만 받았다. 현재도 구제역과 관련해 과학적 의견을 담은 자체 보고서는 전무하다. 항생제, 성장호르몬, 살충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밀집사육 환경은 지금도 그대로다.

2011년 9월 15일 일어난 대정전 사태(순환단전 사태)는 어떨까. 전문가들은 그 전부터 지속적인 전력수요 증가로 인해 공급위주의 전력 정책을 수요관리 위주로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정부는 귀를 닫았다.

2. 대정전 사태 : 불통의 대가

예고도 없이 찾아온 순환단전 과정은 체계적이지 않았다. 공개된 지식경제부 담당 과정과 전력거래소 중앙급전소장의 대화를 보면 당시 순환단전은 체계적 절차나 객관적인 판단보다는 사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됐다. 정전사태 이후에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전력계통운영지침서 등 주요 매뉴얼에는 전력계통 문제 발생 시 조치상황만 있을 뿐 대규모 수요 발생 시 조치 방안은 없었다. 예비전력에 관한 인식도 각각 달라 혼선을 빚었다. 그 때문에 656만호의 가구는 갑작스럽게 정전을 겪었다. 사람들이 승강기에 갇혔고, 비상용발전기가 없는 중소기업들은 큰 피해를 봤다. 병원에선 수술이 중단되기도 했다.

중요한 건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전소 부족으로 생긴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 설비로 공급할 수 있는 최대 전력은 7219만kW였고, 순환단전을 실시한 9월 15일의 최대 전력수요는 6728만kW였다. 잦은 고장을 내는 핵발전소가 문제였고, 발전기를 대량 정비하는 상황에서 순환단전이 있었다. 만약 당시 정부가 대대적인 핵발전소 점검에 나섰더라면 2013년에 불거진 불량원전부품 납품 비리가 훨씬 빨리 드러났을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럼에도 정부는 전기료 인상을 통해 수요 억제에 나섰다. 최중경 당시 지식경제부장관이 사퇴했지만 전력당국 담당자들은 경고 조치를 받는 데 그쳤다.

3. 가습기살균제 사건 : 구멍 뚫린 대책

2011년 불거진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어떤가. 원인 모를 폐질환으로 사망한 이들은 공식적으로는 이미 2006년부터 발생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살균제를 폐질환 원인으로 지목한 후에야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조사 결과 업체들은 유해성을 알고도 판매했고, 업체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은 전문가들은 업체에 유리한 보고서를 작성해줬다. 정부의 책임도 작지 않았다. 당시 산업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은 가습기살균제를 ‘살균제(의약외품)’로 분류해 안전성 조사를 해야 했지만, ‘세정제(자율안전확인 대상)’로 분류해 안전검사 없이 KC마크를 부여했다.

환경부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시행령에 따라 해당 화학물질들의 유해성심사를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유해화학물질의 제조ㆍ유통ㆍ관리가 제대로 안 됐다는 거다. 이후 화학물질관리법이 개정, 화학물질등록 및 평가법이 제정됐지만,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살충제 달걀 파동과 발암물질 생리대 사건으로 이어졌다.

▲ 문재인 정부는 전력수급계획의 기본 방향을 수요관리로 설정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일례로 화평법 제8조에는 “신규 화학물질은 물론이고 기존에 수입되던 화학물질이더라도 수입량이 연간 1t 이상이라면 반드시 등록절차를 거쳐 유해성ㆍ위해성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해물질로 등록되지 않은 신규 화학물질은 실질적으로 기업의 자율 규제만 거치면 최종 제품을 출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화평법 시행규칙 제23조에 따르면 신규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는 신청기업이 제출한 자료를 검토하는 방식이다. 만약 기업이 제출 서류 조작하면 위해성 심사도 통과, 또다시 생활화학제품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거다.

4. 메르스 사태 : 은폐의 대가

2015년 메르스 사태도 비슷하다. 2013년 7월 메르스가 세계 최초로 확인된 이후 2015년 2월까지 세계보건기구(WHO)는 수차례 사전대비를 권고했다. 질병관리본부는 2013년 6월부터 메르스 대책반을 운영하면서도 외국 사례나 특성, 감염양상 등의 연구를 하지도 않았다. 메르스 발생 시 효과적인 통제방안이나 병원 내 감염방지 대책도 없었다. 건강상태질문서를 전수 징구에서 자진신고로 전환해 오히려 검역조치를 완화했다. 결국 공항에서부터 검역에 실패했다. 일부러 검사를 의뢰한 의심 환자에게는 발병 국가를 거쳐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사조차 하지 않았다.

삼성병원은 환자 전수 명단(연락처ㆍ주소 포함 678명)을 작성하고도 명단 일부를 늦게 제출해 방역망 가동을 지연시켰다. 정부는 해당 병원 정보를 꽁꽁 숨겼다. 전국 시ㆍ도 보건소는 2013~2014년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수차례 메르스 대응 지침을 전달받고도 이를 의료기관에 제대로 배포하지도 않았다.

결국 우리나라는 세계 3위의 메르스 발병국이라는 오명을 썼고, 관광객 감소와 소비 침체 등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피해를 봤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손해액을 최소 10조원으로 밝히기도 했다.

5. 세월호 침몰 : 무능의 종합판

정부의 총체적인 기능 상실을 보여주는 2014년의 세월호 침몰사고도 있다. 정부는 세월호 침몰 원인이 과적과 급변침 등이라고 정리했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7월 7일부터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가 본격적인 조사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것들만 보면 세월호는 침몰되기 전부터 고장이 잦았다. 하지만 청해진해운은 제대로 수리하지 않았다. 한국선급은 이런 세월호에 ‘안정’ 판정을 내렸다. 게다가 안전대처 교육이 미흡했던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은 승객을 버려둔 채 도주하기 바빴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전부였다.

정부는 군을 동원한 체계적인 구조작업을 벌이지도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스스로 컨트롤타워를 부인했다. 컨트롤타워가 없는 상황에서 ‘전원 구조’를 비롯해 잘못된 정보가 판을 쳤다. 결국 해경보다 빨리 출동한 어선들에 의해 구조된 것 외에 추가 구조는 없었고, 세월호 침몰사고는 탑승객 476명 가운데 63.8%인 304명이 사망한 대형사고로 기록됐다.

사후 대책은 더욱 엉망이다. 사고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정부와 여당의 비협조에 파행을 거듭했다. 진상규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고 발생 한달 만에 재난방지를 위한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국민안전처 신설, 해경과 소방방재청 기능을 국민안전처로 이관해 재난관리기능 일원화, 안전점검 공무원에게 특별사법경찰권 부여, 국민안전처장관에게 재난안전에 관한 지자체 특별교부세 교부 권한 부여, 민관 유착 막기 위한 공직자윤리법 개정 등을 내걸었다. 여당의 지원을 받은 계획들은 대부분 통과됐다. 선박안전 규정 강화를 비롯해 선박안전운항 관리자의 책임ㆍ권한 강화한 해운법도 개정됐다.

하지만 실효성은 논란거리다. 관련 규정들을 사용자가 어겼을 시 처벌 조항이 그리 무겁지 않아서다. 더구나 당시 정부는 규제완화 정책기조를 유지했다. 안전은 여전히 후순위였다는 방증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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