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바디 오브 라이즈(Body of Lies) ❶

인터넷 시대를 ‘정보 홍수시대’라고 하지만 케이블방송 시대는 가히 ‘영화의 홍수시대’다. 까마득한 옛날 일주일에 한번 방송사에서 엄선해서 보여주는 ‘주말의 명화’는 웬만큼 검증된 영화여서 어느 정도 믿고 보아도 무방했지만, 넘쳐나는 영화전문 채널들이 24시간 365일 틀어대는 영화의 홍수 속에서 ‘볼 만한’ 영화를 선택하기란 실로 지난한 일이다.
 
영화의 홍수 속에서 ‘바디 오브 라이즈(Body of Liesㆍ2003)’를 건질 마음을 먹은 것은 ‘리들리 스캇’이라는 감독 이름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 있었지만, 낚시성 영화 제목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치인이나 정부는 당연히 거짓말을 본업처럼 입에 달고 살고, 교직ㆍ성직까지 거짓말로 떡칠이 된 시대다. 당연히 우리가 사는 ‘거짓의 시대’에 그 거짓의 ‘몸통’이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 ‘혹’한다. 리들리 스캇 감독이 던진 낚싯바늘에 걸린 셈이다.
 
훈민정음으로 표기한 제목 ‘바디 오브 라이즈’는 무척이나 어설프다. 세종대왕이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달리는 느낌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아마도 ‘거짓의 몸통’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 굳이 영어 제목을 고수한 배급사의 깊은 뜻은 헤아리기 어렵다.
 
영화는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2003년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전쟁의 막전 막후에서 벌어졌던 첩보전을 다룬다. 이라크 전쟁은 그 시작과 과정 모두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과 ‘의도된 거짓 정보(Dis-information)’들이 뒤섞여 온통 거짓으로 점철된 석연치 않은 전쟁이었다.
 
▲ 영화 ‘바디 오브 라이즈’는 거짓으로 점철됐던 이라크 전쟁을 다룬다.[사진=더스쿠프포토]
로저 페리스(Roger Ferrisㆍ디카프리오 역)는 이라크 전쟁 첩보전 수행을 위해 현지에 파견된 CIA 정예 현장요원이다. 페리스는 그의 직속상관 에드 호프만(Ed Hoffman•러셀크로우)과 이라크 거물 테러리스트 알 살림(Al-Saleem)을 추적하지만 가치관과 방법론이 미묘하게 충돌한다. 알 살림의 체포라는 같은 목적을 위해 뛰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오정보, 역정보, 거짓정보를 흘린다. 
 
페리스와 호프만은 각각 현지의 ‘정보원’을 운영한다. 이라크인 ‘앞잡이’ ‘끄나풀’들이다. 페리스는 니자르(Nizar)라는 이라크 앞잡이와도 서로 속고 속인다. 페리스는 자신의 직속상관인 호프만을 속이고, 호프만은 다시 자신의 상관인 CIA 국장을 속인다. 여기에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요르단 정보국 책임자 하니 살라암(Hani Salaam)과 이라크의 이중첩자 카라미(Karami)까지 합세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누가 적이고 누가 ‘우리’인지 종잡을 수 없게 된다. 
 
각자 판돈을 걸고 둘러앉은 라스베이거스의 포커판이 된다. 서로 자기 카드를 감추고 ‘포커 페이스’을 하고 남들의 카드를 훔치기에 여념이 없다. 누가 판돈을 쓸어담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라크 포커판에 둘러앉은 이들은 어쩌면 모두 ‘거짓의 깃털’에 불과하다. 리들리 스캇 감독은 영화 제목을 ‘거짓의 몸통’이라고 붙여놓고 정작 ‘거짓의 몸통’은 그림자도 보여주지 않고 ‘깃털’들만 나열한다. 리들리 스캇 감독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거짓의 몸통’은 과연 누구일까.
 
▲ 거짓된 정부를 묵인한 국민은 ‘거짓의 몸통’이나 다름없다.[사진=아이클릭아트]
이라크 현지에서 물고 물리는 거짓과 기만의 첩보전을 수행한 이들 ‘깃털’들의 상관인 CIA 국장이 몸통일까. CIA 국장을 임명한 미국 대통령이 진정한 ‘거짓의 몸통’일까. 아마도 모두 아닐 듯하다. 이라크 전쟁계획의 수립과 전쟁개시의 승인은 모두 ‘적법’한 규정과 절차를 통해 이뤄졌고, 영화 속 첩보전과 전쟁에 소요되는 모든 경비는 의회의 이중삼중二重三重 위원회와 청문회 등 엄정한 검증과 승인을 걸쳐 집행된다. 
 
과연 이들 의원들이나 의회 지도자들이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대통령의 거짓과 전쟁의 허구와 기만을 몰랐을까.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선출한 미국 국민들은 과연 그 전쟁의 정체를 몰랐을까. 엄밀히 말하면 미국 국민들 대부분이 그 거짓과 기만을 알면서도 전쟁을 원했거나 필요로 했을 뿐이다. 결국 이라크 전쟁이라는 거대한 ‘거짓의 몸통’은 미국 국민들이었다는 얘기다. 
 
매일 매일 지난 정권들의 온갖 ‘거짓’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모두 개탄하고 분노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이 정말 몰라서, 감쪽같이 속았던 ‘거짓’들은 아닌 듯하다. 알거나 혹은 짐작하면서도 그 거짓들이 자신들에게도 필요했거나 원했던 것일 수도 있고, 외면하거나 눈감았던 ‘거짓’들일 뿐이다. 언제나 ‘거짓의 몸통’은 우리 자신들이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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