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흔드는 ‘예고편 경영’

“깜짝 발표가 있을 것이다.” 정용진(50) 신세계 부회장은 2017년 5월 31일, 8월 24일 두차례에 걸쳐 세가지 깜짝 발표를 예고했다. 날짜를 정확하게 명시하진 않았지만 ‘한달 안’ ‘올해 안’ ‘내년 상반기’라며 시기도 밝혔다. 정 부회장의 흥미로운 예고편에 업계도 귀를 바짝 세웠다. 그렇다면 본편은 예고편만큼이나 흥미로웠을까. 개봉 일정이 예전보다 미뤄진 것도 있지만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정용진 부회장의 예고편 경영을 해부했다.

▲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깜짝 발표’ 예고 전략으로 업계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다.[사진=뉴시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깜짝 발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새로운 사업이나 전략을 공개하기 전에 예고편을 미리 내보내는 거다. 2017년에 예고했던 ‘깜짝 발표’만 해도 세개나 된다. 시작은 편의점 사업이었다.

“편의점 ‘위드미’에 대한 깜짝 놀랄 발표가 한달 안에 있을 것이다.” 지난해 5월 31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신세계그룹&파트너사 채용박람회에서 정 부회장은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편의점 ‘위드미’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자 미니스톱 등 동종업체 인수ㆍ합병(M&A)이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 부회장은 “점포수를 늘려갈 획기적인 방법”이라고만 밝힌 채 구체적인 내용은 함구했다.

‘위드미의 변화’ 한마디에 업계엔 온갖 추측이 나돌기 시작했다. “동종업체들과 차별화를 내세운 만큼 3無(24시간 영업ㆍ로열티ㆍ영업 위약금) 정책을 바꾸는 건 아닐 것” “브랜드를 교체하려면 현실적으로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쉽지 않을 것” 등 ‘깜짝 발표’가 무엇일지 넘겨짚어 보는 말들이 난무했다.

주식시장도 반응했다. 정 부회장의 깜짝 발언이 있기 하루 전인 5월 30일 신세계의 주가는 23만45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정 부회장이 “깜짝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31일엔 24만3500원으로 소폭 상승했다. 일주일 후인 6월 7일엔 25만1500원으로 발언 전보다 7.2% 올랐다. “이마트를 중국시장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계획을 함께 밝힌 영향도 있지만 정 부회장의 깜짝 발언이 주가에 영향을 미친 것만은 분명하다.

 

그로부터 약 2개월 후인 7월 13일. 드디어 그 정체가 밝혀졌다. 예고했던 한달은 넘겼지만, 내용은 파격적이었다. 편의점 브랜드인 ‘위드미’를 ‘emart24’로 바꾸기로 한 거다. 그동안 브랜드가 약점으로 지적돼 온 만큼 ‘이마트’의 브랜드 파워를 내세워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편의점’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계산이었다. 신세계는 “리브랜딩 작업을 비롯해 emart24에 3년간 3000억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봤지만 브랜드를 바꿀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면서도 “취약점을 보완하는 탁월한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예고편으로 관심 모으기

첫번째 예고편에서 업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던 경험 때문이었을까. 8월 24일엔 예고편 두편을 한꺼번에 틀었다. 이날 스타필드 고양 오픈기념식에 참석한 정 부회장은 “온라인몰 강화를 위해 오픈마켓 인수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며, 연말 전에 깜짝 놀랄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베트남ㆍ캄보디아ㆍ라오스 등 동남아 국가들과 접촉하고 있는데 내년 상반기쯤 깜짝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예고도 했다. 연내에 온라인 사업 관련 발표를, 2018년 상반기에 해외시장과 관련된 깜짝 발표를 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업계는 이번에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온라인 사업은 대형마트의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정 부회장이 그동안 끊임없이 강조해온 분야다. 그래서인지 업계의 눈과 귀가 “연말 전에 깜짝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정 부회장에게 쏠렸다.

가능성이 가장 높게 점쳐진 건 11번가 인수였다. 하지만 박정호 SK텔레콤 대표가 “11번가 매각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데다 정 부회장도 “검토해본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 대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11번가 인수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그러자 소셜커머스 3사 중 한곳을 인수하거나 글로벌 온라인 커머스를 인수하는 방안이 제기됐다. 본편은 해를 넘겨 1월 26일에야 공개됐다.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로 나뉜 온라인 사업부를 물적분할 후 통합하고 이커머스 사업 전담 법인도 별도로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이커머스 사업에 1조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외국계 투자운용사 2곳과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해외사업 역시 궁금증을 갖게 하는 행보 중 하나다. 당시 이마트가 중국시장 철수를 공식화한 터라 다음 공략지에 더더욱 관심이 집중됐다. 그런 상황에서 정 부회장이 ‘동남아 국가’라고 말하면서 범위를 좁혔으니, 주식시장이 반응할 만했다.

그가 입 열자 주가 꿈틀

정 부회장의 발언에 이마트의 주가가 반응했다. 8월 22일 이마트의 주가는 22만7000원으로 3주째 내림세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다 정 부회장이 깜짝 발표를 예고한 24일 23만원, 그 다음날인 25일엔 23만1500원으로 소폭 상승했다. 그 효과가 길지 않아 28일 다시 내림세로 돌아서긴 했지만, 깜짝 상승 효과는 분명히 나타났다.

▲ ‘올 상반기’라고 예고한 해외진출 관련 발표가 무엇일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상반기에 있을 거라는 해외진출 깜짝 발표 공언은 조금씩 구체화되는 모양새다. 정 부회장은 최근 베트남을 방문해 이마트 해외 직영 1호점인 고밥점과 추가 부지를 둘러보고 왔다. 호찌민에 세워질 2호점은 내년 초에나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올 상반기에 과연 어떤 해외진출 관련 발표가 있을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이처럼 정 부회장은 ‘깜짝 발표’ 예고 전략으로 관심을 불러 모으는데 성공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즉흥적인 발언은 아니다”면서 “사업을 실행하고, 준비하고, 오픈하는 과정 중에서 ‘이 정도는 공개를 해도 되겠다’는 판단에서 (정 부회장이) 그런 발언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예고편만 나온 세번째 본편은 과연 어떤 내용일까. 시장 관람자들의 눈과 귀는 이미 모아졌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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