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훈의 패착, 후손들의 갑질
조중훈의 패착, 후손들의 갑질
  • 이윤찬 기자
  • 호수 286
  • 승인 2018.05.01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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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물려준 재산과 경영권의 배신…창업자의 땀 누가 왜곡했나
물컵 갑질로 파문을 일으킨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둘째딸 조현민씨. [사진=뉴시스]
물컵 갑질로 파문을 일으킨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둘째딸 조현민씨. [사진=뉴시스]

# 염전과 화물트럭 

1940~1950년대. 인천에서 가장 큰 염전을 운영하던 K씨는 지역을 대표하는 ‘거부巨富’였다. 돈과 사람이 항상 북적이던 K씨의 회사엔 낡은 화물트럭을 운전하는 청년도 드나들었다. 많은 사람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청년이었다.

“성실하고 참 친절했어요. 아무리 땀을 흘려도 웃음을 잃지 않았죠. 집안 어르신들이 ‘언젠가 큰 인물이 될 사람’이라면서 칭찬을 늘어놓곤 했어요(K씨 셋째딸의 증언).” 

그런데 K씨 집안 어른들이 모르는 게 있었다. 그 청년이 여름 뙤약볕에서 쏟아내던 땀의 의미였다. 그건 땀이 아니었다. 희망이자 꿈이었다. ‘진저리’ 나는 가난을 아들에게, 또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 조중훈(1920~2002년) 한진그룹 명예회장,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 겸손, 그리고 미담 

조중훈 명예회장은 1945년 11월 물류업체 한진상사를 창업했다. 자산은 트럭 한대뿐이었지만 사람들의 신뢰를 한몸에 받았다. 웃음과 겸손함 덕이었다. 그가 비상飛上을 시작한 건 창업 5년차, 미군과 7만 달러짜리 수송계약을 체결하면서다. 구멍가게처럼 작았던 한진상사의 몸집은 갈수록 커졌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겸손했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1960년, 다친 정비사의 요양을 돕기 위해 부암동 자택 밑에 방을 내준 건 유명한 일화다(조중훈 평전 「사업은 예술이다」 중).
 
# 쉽게 물려준 재산의 덫  

조 명예회장은 그렇게 희망과 꿈을 이뤘다. 좋은 평판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가난의 대물림도 끊어냈다. 그의 맏아들(조양호)을 그룹 회장에 올려놨고, 공직자 집안의 딸(이명희)도 며느리로 삼았다.

다음 세대인 손주들(현아ㆍ원태ㆍ현민)에겐 ‘재벌 3세’라는 타이틀도 선물했다. 장성한 세 손주가 ‘한진’의 핵심 보직을 꿰찼으니, ‘황금수저’를 물려준 셈이었다. 하지만 쉽게 물려준 재산은 조 명예회장의 참뜻을 보란 듯이 무너뜨렸다. 

# 창업자의 뜻과 후손의 갑질 

‘재벌’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후손들은 몹쓸 권력에 취했다. 사고를 쳐도, 갑질을 해도, 세상은 그들 앞에 고개를 조아렸다. 할아버지처럼 땀을 흘리지 않아도 돈다발이 넝쿨째 들어왔다. 한진그룹이 2009년에 세운 IT기업 ‘싸이버스카이’는 좋은 사례다. 

현아ㆍ원태ㆍ현민 등 세 남매가 사이좋게 지분을 나눠갖고 있던 이 회사는 그룹의 일감을 받으면서 몸집을 키웠다. 딱히 애쓰지 않아도 매출은 껑충 늘었고, 그럴수록 배당액이 커졌다. ‘부당 내부거래가 아니냐’는 눈총이 쏟아졌지만 세 남매에겐 별일 아니었다. 힘들이지 않고 얻은 지분을 그냥 팔면, ‘부당내부거래’ 논란도 피하고, 수십억원에 이르는 차익도 남길 수 있었다.
 
조 명예회장의 며느리도 세상 위에 군림했다. 시아버지의 뜻이 담긴 공익법인 이사장에 난데없이 등극해 숱한 갑질을 쏟아냈다. 그럼에도 그에게 ‘뭐라 그럴 수 있는 이’는 없었다. [※ 참고 | 더스쿠프(The SCOOP)가 ‘제동목장과 일우재단, 증여의 비밀’을 독점 공개한다. 이명희씨가 일우재단 이사장에 등극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 있다.] 

# 땀의 잔인한 왜곡 

예상했든 그렇지 않든 경영권과 부를 아들에게 쉽게 물려준 건 조 명예회장의 패착敗着이었다. ‘인재를 키워야 기업과 나라가 성장한다’고 믿었던 조 명예회장의 폐부肺腑에 비수를 꽂은 건 다름 아닌 아들ㆍ며느리ㆍ손주였다. 조 명예회장의 경영철학(기업은 인간이다)이 정작 후손들에겐 전달되지 않은 셈이다. 

“재산을 물려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행위가 보통 이롭기보다는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티 분 피켄스 BP캐피털매니지먼트 회장).” 청년 조중훈의 땀이 왜곡된 이유다.  
이윤찬ㆍ김정덕ㆍ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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