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크레인 관리의 허점

2014년 3톤(t) 미만 소형 크레인이 건설기계로 편입됐다. 정부는 성능을 검증하는 ‘제원표’가 없는 3t 크레인이 등록될 수 있도록 지원까지 하며 등록 소형 크레인의 수를 늘렸다. 크레인 수는 가파르게 늘어났지만 전담 정기조사는 진행되지 않았고, 사고는 숱하게 발생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타워크레인 사망사고 제로’라는 자화자찬성 발표만 늘어놨다. 현장은 분노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타워크레인 관리의 허점을 취재했다. 

국토교통부는 '2018년 타워크레인 중대사고'가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2주 만에 또다시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사진=뉴시스]
국토교통부는 '2018년 타워크레인 중대사고'가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2주 만에 또다시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사진=뉴시스]

“2018년엔 타워크레인 사망사고(중대사고)가 한건도 없었다. 2019년에도 안전점검을 시행해 불량 크레인을 현장에서 퇴출하겠다.” 2019년 1월 1일 정부의 발표 내용이다. 타워크레인을 강도 높게 점검한 결과,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자화자찬이었다.

현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한 근로자의 말을 들어보자. “타워크레인이 수십대씩 쓰러져도 사람만 죽지 않았다면 해당 현장은 ‘중대사고’가 발생한 곳으로 집계되지 않는다. 사람 사고만 없으면 끝이란 말인가.”

사람이 죽지 않았을 뿐 2018년에도 사고사례는 수두룩했다. 수원에서 50t 규모의 차량크레인이 중심을 잃고 넘어져 2명이 다쳤다(4월). 영등포에서도 대형 22t 크레인이 넘어갔다(9월). 인천 송도에서는 강철 와이어가 끊어지며 타워크레인에서 떨어진 호퍼가 땅에 처박히기도 했다(11월). 사람이 있었다면 곧바로 사망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순간들이 여러 차례 발생한 셈이다.

2019년에는 결국 사망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 광주에서 자재를 옮기던 2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파이프를 건물 위로 올리던 중 타워크레인에서 파이프가 쏟아지며 발생한 사고였다. 원인은 운전 미숙이었다. ‘타워크레인 중대사고 0건’이 발표된 지 2주 만이었다.
 

현장에서는 3t 미만의 소형 크레인을 문제로 꼽는다. 한국노총의 자체 통계에 따르면 정부가 한 건도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던 2018년에도 소형 크레인에서 발생한 사고만 10건에 달했다. 이중 7건의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는 조종석이 없는 무인 타워크레인에서 일어났다. 2019년 초부터 4월까지 집계된 사고만 따져도 소형 크레인에서 8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이 중 2개 현장에서 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자화자찬, 그 뒤에 숨은 문제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떠올리는 ‘타워크레인’은 한쪽 끝에 사람이 직접 앉는 조종석이 있고 반대쪽으로 기다란 ‘붐’이 뻗어있는 정(丁)자 형태다. 사람이 있는 ‘유인 크레인’이 과거에는 타워크레인을 대표하는 모습이었지만 최근에는 조종석이 없는 ‘무인 크레인’도 늘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공사 현장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도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무인 크레인이 늘어나는 이유는 비용 문제와 관련돼 있다. 무인 크레인의 경우 조종사가 직접 올라가지 않고 지상에서 크레인을 움직일 수 있다.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조종사가 올라가는 유인 크레인보다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
 

유인 크레인을 조종하기 위해서는 필기·실기시험을 거쳐야 발급되는 국가자격증이 필요하다. 1년에 3번 시행되는 시험의 합격률은 40%대다. 그러나 무인 크레인 조종사는 이보다 진입 장벽이 훨씬 낮다. 이론수업 8시간, 실기수업 12시간만 이수하면 무인크레인 조종자격을 얻을 수 있다. 의무교육시간을 3일 만에 채워 면허를 딸 수 있다고 광고하는 운전면허학원을 온라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건설기계 현황통계에 따르면 무인 크레인 조종 면허는 2014년 1건에서 2019년 3월 기준 8256건으로 크게 늘었다. 2018년 말부터 2019년 3월까지는 500건이 넘는 신규 면허가 발급됐다.

그렇다고 사고의 원인이 인력에만 있다는 건 아니다. 감독기관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강도 높은 점검으로 사망사고를 제로로 만들었다”고 발표했던 국토부는 타워크레인 관련 일제조사의 규모를 되레 줄였다.

2018년 12월부터 지난 1월까지 진행된 조사는 타워크레인이 설치된 전국 현장 50여곳을 불시에 방문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2017년 12월부터 20 18년 1월까지 진행됐던 조사는 전국 500개 현장이 대상이었다. 1년 만에 일제조사를 받는 현장이 10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소형 타워크레인 면허 발급 건수는 2015년부터 해마다 2000건씩 늘었다.[사진=뉴시스]<br>
소형 타워크레인 면허 발급 건수는 2015년부터 해마다 2000건씩 늘었다.[사진=뉴시스]

이뿐만이 아니다. 국토부는 1월 1일 ‘타워크레인 중대사고 0건’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자찬自讚했다. “타워크레인을 설치·해체하거나 인상작업을 할 때 해당 작업과정을 녹화한 영상자료를 제출토록 하여 작업자들이 작업절차와 안전수칙을 반드시 준수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자찬은 사실이 아니다.

영상자료 제출 의무인가

대한산업안전협회에서 실시하는 크레인 정기검사의 안내문을 보자. 크레인 설치·해체 영상의 제출은 ‘요구하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크레인 감독을 함께 진행하는 고용노동부도 “정기적으로 영상을 입수해 감독하는 것은 아니고 사고가 발생하면 원인 파악을 위해 영상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발표대로 영상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매번 타워크레인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일제조사’를 실시했다.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범위를 넓히고, ‘아무 일’도 없던 해에는 조사 대상지도 줄어들었다. 이러는 와중에 20시간의 교육을 받고 시험도 없는 무인 타워크레인 면허가 한해에 2000건씩 발급됐다.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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