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위기 속 컴백 … 그럼에도 풀지 못한 과제들
2010년 위기 속 컴백 … 그럼에도 풀지 못한 과제들
  • 김다린 기자
  • 호수 413
  • 승인 2020.10.28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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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가 남긴 빛과 그림자

10월 25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공功도 있고 과過도 뚜렷하지만 그가 키를 잡고 있던 30여년 삼성그룹이 초일류기업으로 발돋움한 건 사실이다. 특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2010년 3월 삼성 사장단의 SOS를 받고 컴백한 이후엔 ‘21세기 삼성’의 밑그림을 직접 그렸다. 하지만 숱한 성과만큼 짙은 그림자와 과제를 남겼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이건희 회장이 남긴 빛과 그림자를 냉정하게 분석해 봤다.

이건희 회장은 “10년 안에 삼성이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사라질 것”이라면서 2010년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사진=삼성전자 제공]
이건희 회장은 “10년 안에 삼성이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사라질 것”이라면서 2010년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사진=삼성전자 제공]

곪았던 부종이 터진 건 2008년이었다. 그해 4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비자금 사건으로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그러자 삼성에 탈이 났다. 2008년 4분기 7400억원의 적자를 냈던 거다. 분기 단위로 실적을 집계하기 시작한 2000년 1분기 이후 첫 적자였다. 다행히 어닝쇼크는 오래가지 않았다. 

2009년 삼성은 한국기업 최초로 ‘연간 100조원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더 큰 위기가 찾아왔다. 애플의 스마트폰 ‘아이폰3G’와 ‘아이폰3GS’가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옴니아’로 맞대응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부족한 경쟁력으로 ‘옴레기(옴니아+쓰레기)’란 오명까지 얻으며 주저앉았다. 세계 곳곳에 ‘애니콜 신화’를 쏘아 올렸던 삼성의 휴대전화가 순식간에 조롱거리로 전락했던 거다.

삼성 경영진은 분주해졌다. 2010년 2월 17일 사장단협의회에선 다음과 같은 논의가 오갔다. “(이건희) 회장의 복귀를 요청하자.” 사장단협의회는 2008년 이 회장의 경영일선 퇴진과 함께 그룹 컨트롤타워가 해체되면서 신설된 협의체였다. 


하지만 삼성 전체를 아우를 만한 리더십을 발휘하진 못했고, 결국 이 회장에게 SOS를 치자는 논의가 전개됐다. 사장단협의회에선 일주일 후인 2월 24일에도 같은 논의가 이어졌다. 결론은 같았다. “복귀를 요청하자!” 경영진은 곧바로 건의문을 작성했고, 작성된 건의문은 이건희 회장에게 전달됐다.

그로부터 한달 뒤인 3월 23일, 장고를 거듭하던 이 회장이 복귀를 결정했다. 부담스러운 결정이었다. 퇴진 의사를 밝힌 후 23개월 만이었고, 특별사면을 받은 지 불과 3개월이 지났을 뿐이었다. 성급하다는 지적이 나올 법도 했다. 
 

그런데도 복귀를 결정한 이유는 뭘까. 과거 삼성그룹 계열사의 CEO를 맡았던 경영인 A씨는 그 이유를 ‘도요타의 몰락’에서 찾았다. “… 도요타는 삼성의 벤치마킹 기업 중 한곳이었다. 그런 도요타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희 회장의 위기감이 커졌을 것이다….” 

2007년 자동차 판매 대수에서 GM을 누르고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했던 도요타는 2010년 1월 부품 결함 문제로 리콜 파동에 휘말렸다. 양적 성장을 추구하면서 원가절감 경영을 벌인 게 문제의 단초로 작용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삼성 역시 당시 도요타와 비슷한 전략을 추구하고 있었다. 도요타의 몰락을 목도한 삼성그룹 안팎에 “영원한 1등은 없다”는 위기감이 감돌 만한 상황이었다.

이런 위기감은 이 회장이 복귀하면서 삼성 공식 SNS에 남긴 소감에도 잘 묻어있다. “…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도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


이 회장이 조직에 분발을 촉구하자 삼성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이 회장이 복귀한 지 단 한달 만에 사장단협의회에선 ‘신사업’ 논의가 펼쳐졌다.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통 큰 투자’ 결정을 내렸다. 향후 10년간 신수종사업 5개를 선정해 23조원을 쏟아붓겠다는 전략을 세웠던 거였다.

“머뭇거릴 시간 없다, 앞만 보고 가자” 

삼성은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2010년 6월 ‘갤럭시S’를 출시하며 아이폰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메모리반도체 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결정한 것도 이때다. 글로벌 반도체업체들이 추가 시설 투자를 고민할 무렵 이 회장은 화성사업장 메모리 반도체 16라인 착공을 지시하고 직접 기공식에도 참여했다. 


당시 전직 임원은 이 회장의 경영 복귀를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겉보기와 달리 삼성 계열사의 개성은 무척 강하다. 단기성과를 내기엔 적합한 구조지만 장기적인 포석을 놓기엔 한계가 적지 않다. 삼성에 이를 잘 조정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가 필요한 이유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나왔다.[사진=삼성전자 제공]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나왔다.[사진=삼성전자 제공]

최악의 위기를 천금의 기회로 바꿔온 이 회장의 리더십은 그의 경영 에피소드에서도 잘 드러난다. 국내 1위에 매몰돼 타성에 젖어 있던 삼성을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참고 :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1993년 이건희 회장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임직원을 모아놓고 “양量 위주에서 질質 위주의 경영으로 변해야 한다”면서 ‘신경영’을 역설한 것을 상징하는 말이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는 말로 압축된 이 회장의 발언은 재계 명언으로 꼽힌다.] 

그럼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나오기 6년 전인 1987년으로 시계추를 돌려보자. 그해 삼성그룹의 키를 잡은 이 회장은 조용한 혁신을 꾀하고 있었다. ‘외국인 고문을 영입하라’ ‘품질관리에 신경 써라’ 등이 숱한 혁신책의 골자였다. 

하지만 시장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성장을 거듭하던 삼성에 타성이 깃들었던 탓이었다. 마음을 놓을 만도 했다. 1987년 13조5000억원이었던 매출은 1992년 35조7000억원으로 2.6배가 됐다. 시가총액은 같은 기간 1조원에서 3조6000억원으로 260% 늘어났다. 당시 삼성 임직원들은 “우리가 국내 최고”라면서 샴페인을 터뜨렸다. 

이 회장은 달랐다. 해외 유통점에서 삼성의 제품이 ‘3류’로 홀대받는 현실을 직시했다. 국내 1등에 도취해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조직문화도 꿰뚫어 봤다. 과거 삼성그룹 계열사의 CEO를 맡았던 경영인 A씨 역시 이런 이유로 질책을 당한 적이 있었다.

당시 실적도 좋고 국내시장 점유율이 상승하는 추세여서 긍정적인 보고를 올렸는데,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반문을 들었다. “일본 미쓰비시보다 잘하는 게 뭐가 있습니까.” 삼성 사람들이 실적에 취해 샴페인을 터트릴 때, 이 회장의 눈은 세계로 향해 있었다는 의미다. 

이 회장은 자만에 빠진 삼성의 환부를 도려낼 계획을 세웠고, 1993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발단은 일본인 고문 후쿠다 다미오가 전달한 한장의 보고서였다. 후쿠다는 삼성제품 디자인의 문제점을 수차례 지적했지만 수용되지 않자 보고서를 작성해 사표와 함께 이 회장에게 제출했다. 후쿠다는 세탁기를 조립하는 한 직원이 잘 닫히지 않는 문을 면도칼로 깎아내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까지 전달했다. 

전 삼성 계열사의 한 대표는 “품질 관리에 문제점이 있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회장에게 보고하진 않았다”면서 “그룹이 잘 성장하고 있는데, 별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 보고서를 접한 이 회장은 200여명의 삼성 주요 임원을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 소집했다. 글로벌 기업에서도 유례없는 해외 소집이었다. 영문을 알지 못한 대부분의 임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경영진 공백 탓에 ‘업무가 마비된다’며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임원도 있었다. 

소집 형식도 파괴적이었지만 이 회장의 발언 강도는 더 셌다. “마누라, 자식 빼고 모두 바꿔라!” 이것이 그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이다. 이후에도 이 회장의 행보는 ‘혁신의 연속’이었다. 

1995년 3월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 불량률이 높았던 휴대전화 15만대를 쌓아놓고 불에 태운 뒤 품질경영을 강조했다. 모든 계열사에 7ㆍ4제(7시 출근 4시 퇴근)를 적용하기도 했다. 사회 통념을 깬 새로운 규범으로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였다. 

이건희 회장이 풀지 못한 문제점은 삼성이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았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이건희 회장이 풀지 못한 문제점은 삼성이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았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이 회장은 조직문화도 뜯어고쳤다. 인맥과 아부가 통용되지 않는, 아첨꾼은 설 자리가 없는 문화였다. 이를 잘 드러내는 에피소드가 있다. 삼성그룹 비서실 출신 한 기업인의 회상을 들어보자. 1980년께 그는 이 회장으로부터 난처한 질문을 받았다. “선대 회장님과 저와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잘 모르겠다”고 답하자 이 회장이 쏘아붙였다. “미적분을 물어본 것도 아닌데, 제가 어려운 질문을 했습니까. 답은 두개입니다 모르면 정말 바보고, 알면서 말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입니다. 비서실은 나의 분신입니다. 제 생각을 꿰뚫어야 합니다.” 학연ㆍ지연 또는 측근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이 회장의 경영 철학이 읽히는 사례다.

2010년 위기에 빠진 삼성이 기대했던 건 이런 리더십이었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삼성전자 갤럭시 시리즈는 애플 아이폰의 시장 점유율을 앞섰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선 슈퍼호황이 겹치며 무려 24년간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 ‘황제’로 군림하던 인텔을 권좌에서 밀어냈다. 

하지만 ‘이건희식 리더십’은 2014년 5월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그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멈췄다. 그러자 삼성 안팎에 소용돌이가 쳤고, 그가 밀어붙였던 각종 사업의 성과도 냉정한 ‘평가대’에 올라섰다.

무엇보다 5대 신수종사업(태양전지ㆍ자동차용전지ㆍ발광다이오드(LED)ㆍ바이오제약ㆍ의료기기 등)은 알찬 결과를 맺지 못했다. 태양전지‧LED 사업부는 일찌감치 구조조정을 거쳐 축소되거나 외부로 매각됐다. 의료기기 사업도 삼성메디슨을 통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이 회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5억원에 불과했다. 자동차용전지(삼성SDI)와 바이오제약(삼성바이오로직스)만 제구실하고 있으니, 반타작만 성공한 셈이다.  


이 회장의 경영 복귀와 함께 등장했던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에도 한계가 노출됐다.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이 치솟으면서 ‘갤럭시 신화’가 열렸지만 수익 면에선 여전히 애플의 독주체제가 계속되고 있다. 갤럭시를 두고 ‘많이 팔리지만 실속은 없다’는 혹평이 쏟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2조 달러(약 2253조원)를 넘나드는 애플의 시가총액과 350조원 안팎인 삼성전자의 시총을 비교하면 ‘맞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이 회장 시절부터 제기돼온 “삼성의 하드웨어는 강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약하다”는 고질병도 여전하다. ‘도요타 리콜 사건’ 이후 이 회장이 추진했던 질적 혁신이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는 거다. 

더 심각한 건 그가 채택한 경영 시스템이다. 은둔의 경영자였던 이 회장은 ‘정경유착’ ‘삼성공화국’‘노동탄압’‘황제세습경영’ 등 삼성에 붙은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떼내지 못했고, 이는 그룹을 흔드는 위험요인으로 작용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린 이재용 부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는 건 대표적 사례다. 이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의혹 사건 파기환송심에 대한 선고는 올해 안에 이뤄질 전망이다. 징역형을 선고받을 경우 ‘리더십 공백’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경영권 관련 논란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세습에 동원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도 받고 있다. [참고 : 일부 미디어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확보할 상속세 재원을 우려한다. 하지만 상속세 이슈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는 만큼 섣불리 언급해선 안 된다. 상속세 문제는 추후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해볼 계획이다.]
 

이처럼 이 회장은 한국 경제계에 빛과 그늘을 모두 남겼다. 글로벌 기업 삼성의 혁신을 이끈 리더십만은 인정받아 마땅하지만 그만큼의 상처와 그림자도 남겼다. 이제 삼성은 공식적인 ‘3세 경영시대’를 맞았다. 이 회장이 남긴 빛과 그림자를 얼마나 수용하고 버릴지는 3세 경영자와 삼성의 몫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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