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개발 순환정비

국토교통부는 올해 부동산 대책의 초점을 ‘공급’에 맞췄다. 주거 안정을 위해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뜻이었다. 그중 대표 정책은 ‘공공재개발’이다. 부작용을 위한 대책도 발표했다. 기존 주택이 한꺼번에 사라지면서 발생하는 ‘임차수요’ 부담을 낮추기 위해 ‘순환정비’를 도입하기로 했다. 다소 어려운 용어인 ‘순환정비’는 2020년 영등포 쪽방촌에서 주목받은 재개발 방식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영등포 쪽방촌식 재개발의 경제학을 풀어봤다. 

국토교통부는 공공재개발 방식으로 순환정비를 택했다.[사진=연합뉴스]
국토교통부는 공공재개발 방식으로 순환정비를 택했다.[사진=연합뉴스]

2021년 부동산 정책의 화두는 ‘공공재개발’이다. 집주인들끼리 조합을 만들어 추진해야 했던 ‘민간’ 노후주택 정비사업에 정부가 참여하는 방식이다. 국토교통부는 여기에 새로운 개념을 덧붙였다. ‘순환정비’다. 

이건 또 뭘까. 지금까지 재개발ㆍ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은 ‘전면철거’ 방식을 사용해왔다. 1000세대 규모 아파트를 전면철거 방식으로 재건축한다고 가정해보자. 일단 1000세대의 주민은 모두 집에서 떠나야 한다. 주민이 집을 비우면 한번에 건물을 철거한다. 이 기간 기존에 살던 주민들은 최소 2년간 거주할 집을 찾아야 한다. 아파트(공동주택)를 철거하고 새집을 만드는 데 걸리는 기간이 통상 2년이라서다.

그렇다 보니 재개발ㆍ재건축은 주택을 공급하기 전에 특정지역에서 임차 수요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1000세대가 사라졌으니, 1000세대의 수요가 생겼다는 거다. 이를 부동산 용어로 ‘멸실滅失’이라고 한다. [※참고 : 한국부동산원ㆍ부동산114 등 정부 산하기관이나 민간 부동산시장조사업체에서도 재정비사업으로 인한 이주수요를 전세가 상승의 불안 요소로 보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멸실이 주택공급 효과를 상쇄한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전국에 신규 공급된 주택은 51만8084호였다. 같은 기간 멸실된 주택은 12만6676호다. 시장에 50만호가 넘는 주택이 공급됐지만 실제론 순증 효과는 39만호 수준이다.

특히 서울의 멸실 비중이 크다. 2019년 서울에 공급된 주택은 7만5373호였지만 멸실 주택은 3만2370호에 달했다. 전체 공급량의 42.9%에 달하는 물량이 ‘사라진’ 셈이다. 국토부가 새로운 공공재개발ㆍ재건축 방식으로 ‘순환정비’를 꺼내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택이 줄어들면서 발생할 수 있는 충격(임차수요)을 최소화하면서 공급효과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다. 

국토부가 2ㆍ4부동산대책을 통해 발표한 순환정비의 내용을 단순하게 옮겨보자. “사업구역간 순환정비를 하거나 수도권 인근 택지를 활용한 광역 재개발을 할 것이다. 주택 멸실로 인한 이주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쉽게 풀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공공재개발을 시작하면 서울 내에서도 여러 사업구역이 생긴다. 이들은 동시에 개발할 수 없기 때문에 철거 시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점을 이용해 먼저 완공되는 사업지의 주택을 순환정비를 위한 주택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사실 순환정비는 올해 처음 탄생한 개념이 아니다. 2020년 1월 ‘영등포 쪽방촌 공공개발’ 계획이 발표되면서 순환정비 방식이 소개됐다. 쪽방촌 개발에서 순환정비가 언급된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 주민들이 개발기간에 지낼 수 있는 주택을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 

재정비 공급의 그림자

영등포 쪽방촌 개발에 적용되는 순환정비의 핵심은 ‘사업지 쪼개기’다. 사업지를 두곳으로 나눠 한곳은 철거하고 다른 한곳은 노후건물을 리모델링한다. 철거 구역의 주민들은 리모델링된 노후건물에 입주해 임시거주한다. 한쪽에서 철거와 재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선 주민들이 임시거주를 하는 셈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재건축이 끝나면 임시거주하던 주민들이 다시 그곳으로 이주하고, 그 임시거주지에서 다시 재건축이 진행된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순환정비 방식이 제대로 추진된다면 철거기간 발생하는 전세가 급등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대부분 주민에게 살던 지역을 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순환정비가 완전무결한 건 아니다. 이 방식이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두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는 규모다. 기존 주민을 수용할 만한 정비용 주택이 없다면 국토부가 목표로 내세운 ‘임차수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국토부는 “도시정비사업지 내 숙박시설을 임시 주택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주택이 아닌 만큼 주민 만족도를 담보하기 쉽지 않다.

둘째 조건은 위치다. 국토부가 시도하는 순환정비는 영등포 쪽방촌처럼 ‘사업구역 내’에서 진행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국토부가 2ㆍ4대책에서 언급한 순환정비는 ‘사업구역 바깥’이거나 ‘수도권 내 광역정비’다. 

그렇다면 주민들은 ‘사업구역 바깥’으로의 이주를 감수해야 하고, 광역 순환 정비의 경우엔 현재 거주하는 지역 밖으로 나가야 할 수도 있다. 재정비 사업으로 잠시 주거지를 떠나야 하는 주민들로선 탐탁지 않은 조건이다. 일례로 임시거주지가 학교나 직장에서 지나치게 멀리 떨어진다면 ‘임차수요’의 폭증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 

이태경 부소장은 “순환정비 대체주택의 위치가 기존 생활권에서 너무 멀어지면 임차수요 부담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며 “광역순환 정비가 이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다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울에서 새롭게 공급하는 주택은 약 32만호다. 2025년까지 추진하는 공급계획이니 1년으로 단순 계산하면 매년 6만4000호다. 이중 공공재개발로 진행되는 사업지에서 상당수 주택이 멸실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순환정비는 효율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국토부가 꺼내든 ‘순환 정비’가 정착한다면 민간 도시정비사업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임차수요 부담도 덜어낼 수 있다. 하지만 단점과 한계를 메우려는 정책이 없으면 또다른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다. 새로운 정책을 내는 것보다 새 정책이 퍼지는 데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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