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 LINC+사업단 공동기획
셉템버의 부탁해YO 할매
상품선별사 할머니와 배달기사 할아버지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OECD 최고 수준이다.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공공일자리를 만드는 데 힘을 쏟는 이유다. 하지만 고용기간이 길지 않은 공공일자리로는 한계가 있다. 민간형 일자리를 창출하되 노인의 경험을 값어치 있게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문제는 민간형 노인 일자리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점이다. 할머니의 장보기 지혜를 배달 서비스에 접목한 가톨릭대 청년들의 ‘부탁해YO 할매’ 프로젝트에 눈길이 쏠리는 건 이 때문이다.

셉템버팀은 전통시장에 속속 도입되고 있는 배달서비스에 노인의 노동력을 투입해보기로 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셉템버팀은 전통시장에 속속 도입되고 있는 배달서비스에 노인의 노동력을 투입해보기로 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 노인들은 꽤나 빈곤하다. 지난 2월 한국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고령화 속도와 빈곤율’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3.4%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4.8%)보다 3배나 높다.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 관계자는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주요 선진 5개국(미국·일본·영국·독일·프랑스)의 평균인 14.4%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시니어 일자리를 활성화해 노인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그러나 ‘일하는 노인’의 현실을 살펴보면 문제가 간단치 않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의 노동시간은 하루 평균 1시간 28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하는 고령자의 비율은 33.8%로 비교적 양호했지만 이는 구직활동하는 노인까지 포함한 것이어서 수치의 질이 떨어진다.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04년부터 노인 일자리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노인에게 제공되는 공공일자리의 문은 그리 넓지 않다. 참여 자격이 기초연금 수급자로 한정돼 있는 건 대표적 사례다. 근무 조건이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다. 하루 3시간 이내 월 30시간 이상 일하는데, 활동비는 한달에 27만원 정도에 머물러 있다. 노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민간형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2020년 2학기 가톨릭대의 ‘지역혁신 캡스톤디자인 : 도시재생’ 수업에 참여한 임태윤·이가록·임형준 학생(셉템버팀)은 전통시장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민간형 노인일자리에 관심을 가졌다.[※참고 : 셉템버라는 팀명은 9월을 뜻하는 영어단어 ‘Septem ber’에서 따온 것으로, 사람의 일생을 12개월로 분류할 때 일자리를 원하는 노인은 9월쯤에 해당한다는 의미로 작명한 것이다.] 셉템버팀이 가진 첫번째 의문은 전통시장에 속속 도입되고 있는 배달서비스에 노인의 노동력을 투입하면 어떨까라는 거였다. 

할머니의 장보기 경험을 살릴 수 있다면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만했다. 이가록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가끔 할머니, 엄마와 시장에 가는데 아직도 엄마는 장 보는 도중 할머니께 이것저것 물어본다. 노인의 값진 경륜을 잘만 활용한다면 다양한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봤다.”

셉템버팀이 기획한 프로젝트의 이름은 ‘부탁해YO 할매’다. 고객이 주문하면 시장에 상주 중인 상품선별사(장보기 도우미) 할머니가 장을 봐주고 배달기사 할아버지가 장바구니를 배송하는 시스템이다. 장보기에 일가견이 있는 할머니의 지혜와 동네 지리에 익숙한 할아버지의 경륜을 활용하겠다는 취지였다. 임태윤 학생은 “편의상 할머니가 장을 보고 할아버지가 배달하는 것으로 구분했지만 성별에 제한을 둔 건 아니다”면서 “할머니가 운전하실 수도 있고 할아버지가 장을 보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셉템버팀은 이 프로젝트를 조금씩 가다듬고 있다. ‘부탁해YO 할매’ 콘셉트를 모바일 배달앱으로 만들고 있는 건 그 첫걸음이다. 전통시장 배달앱이 있긴 하지만 ‘부탁해YO 할매’처럼 노인의 지혜와 경험을 접목한 건 아직 없어서다. ‘부탁해YO 할매’ 배달앱을 론칭한 후엔 사회적기업을 만들어볼 계획도 갖고 있다. 

임형준 학생은 “‘부탁해YO 할매 사업을 사회적기업 인증 프로젝트로 진행해도 좋을 것 같다’는 부천시 사회적경제팀의 의견도 있었다”며 “사업을 본격화하기엔 아직 준비할 게 많지만 공모전 참가 등으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너희가 시장을 바꿀 수 있겠느냐’란 의문을 표하는 상인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전통시장을 앱 하나로 환골탈태시키는 게 쉬운 과제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도 숱하다. 최근 들어 전통시장의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데다 정부의 지원사업도 활성화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전통시장육성과 관계자는 “2025년까지 디지털 전통시장 500곳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청년 3명이 시작한 ‘부탁해YO 할매’ 프로젝트의 함의含意를 눈여겨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인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 전통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어서다. 소비자가 쉽게 쓸 수 있는 앱을 개발하고, 기존 배달앱을 넘어서야 한다는 과제가 있긴 하지만 이는 청년 3명의 몫만은 아니다. ‘부탁해YO 할매’란 참신한 아이디어를 전통시장에 접목하는 건 사회의 몫이기도 하다. 청년의 발걸음에 어른들이 보조를 맞출 차례란 얘기다. 

유두진 더스쿠프 전문기자
ydj12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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