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 LINC+사업단 공동기획
혁곡역팀의 ‘돌봄에서 자람으로’
포괄적 성교육 제시

한국 교육에서 성性은 여전히 비밀스럽고 민감한 영역이다. N번방 사건 같은 사회적 성이슈가 터졌을 때에야 뒷북 치듯 대책이 쏟아진다. 하지만 별로 달라진 것도 달라질 것도 없다. 매뉴얼이 부족한 데다 성을 바라보는 개개인의 시각차가 워낙 커서다. 그렇다고 초중고 시절에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는 것도 아니다. 연간 얼마 이상 성교육을 하라는 교육부 지침은 엄연히 있지만 체육·보건 등 다른 과목으로 대체할 수 있다 보니 체계적인 가르침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아이들에게 온전한 성교육을 받게 할 방도는 없을까. 가톨릭대 학생들이 쉽지만 알찬 해법을 내놨다. 방과 후 돌봄서비스에 성교육 프로그램을 넣자는 내용이다.

초중고 시절에는 체계적인 성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초중고 시절에는 체계적인 성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1985년, 기자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다. 갑자기 수업에 들어온 양호선생님이 남학생들을 교실 밖으로 내보냈다. 안에선 성교육이 진행됐다. 근데 왜 여학생만…. 의문이 들었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성교육이 끝났는지 양호선생님이 교실에서 나가자 기자는 여학생들을 붙잡고 물었다. “야, 뭐 배웠어? 엉덩이 그림 봤어?” 짓궂은 질문에 여학생들은 그저 얼굴만 붉혔다.

35년이 훨씬 넘은 기억이다. 그 시절 성性은 부끄럽고 비밀스러운 영역이었다. 제대로 된 성지식을 쌓을 기회라곤 거의 없었다. 한 세대가 지난 요즘 아이들은 달라졌을까. 그런 것 같지 않다. 2017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발표한 초등학교 6학년 성의식 및 성교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월경을 제대로 알고 있는 비율은 47.6%에 불과했고 몽정의 정확한 개념을 숙지하지 못한 비율은 43.2%로 나타났다. 이런 상태로 청소년이 되니 상황이 나아질 리 없다.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청소년 성교육 수요조사에 따르면 중학생들의 성지식 점수는 3.70점에 불과했다(10점 만점).


현재 초등학교에선 학교보건법 등에 따라 연간 15시간 이상 성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체육·보건 등 다른 과목으로 대체할 수 있다 보니 의미 있는 성교육 시간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면 방법은 없을까. 2020년 2학기 가톨릭대 ‘지역혁신 캡스톤디자인:도시재생’ 수업을 수강한 진예은·김도희·강해리 학생(혁곡역팀)은 방과 후 초등 돌봄서비스에 포괄적 성교육을 넣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해법을 찾아나섰다. 기존 교육으로 채우기 힘든 성교육 시간을 보충함과 동시에 정형화된 돌봄 프로그램에 변화를 주겠다는 취지에서다. 

진예은 학생의 말을 들어보자. “활동지역인 부천시 역곡동 내 돌봄기관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코딩, 영어, 그림그리기 등 일반적인 프로그램을 실시 중이었어요. 가정의 역할을 대신하며 아이들을 잘 자라게 할 돌봄 프로그램이 없을까 고민하다 성교육을 떠올렸죠.”[※참고: 혁곡역이라는 팀명은 ‘혁신’과 ‘역곡역’의 합성어다.]

아이디어 회의 끝에 혁곡역팀이 선택한 성교육 솔루션은 2018년 유니세프가 발표한 ‘포괄적 성교육(CSE·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이었다. 포괄적 성교육이란 인간의 생애에서 성과 관련한 모든 경험을 포괄하는 교육이다. ▲관계 ▲가치·권리·문화·섹슈얼리티 ▲젠더 이해 ▲폭력과 안전 ▲건강과 복지를 위한 기술 ▲인간의 신체와 발달 ▲섹슈얼리티와 성적 행동 ▲성 및 재생산건강 등 8개 분야로 나뉜다. 

혁곡역팀은 이를 면밀히 살핀 뒤 초등학생의 눈높이에 맞게 ▲성의 이해 ▲사춘기 ▲성차이와 성평등 ▲자기이해 ▲자기표현 등 5개 분야로 재구성했고, ‘자기이해’ 부문을 세분화해 시범수업을 해보기로 했다.

강해리 학생은 “초등학생의 자기이해를 돕기 위해 ‘자화상 그리기’ ‘좋아·싫어 게임’ ‘감정온도계’ ‘내가 동화 속 주인공이라면?’ 등 4개의 세부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며 “시범수업의 이름은 ‘나자람 수업’으로 지었다”고 말했다. ‘나자람’이란 이름엔 진정한 성교육의 목적은 나를 아는 것에서 출발해 자아를 성장시키는 데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혁곡역팀이 프로젝트의 이름을 ‘돌봄에서 자람으로’라고 지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혁곡역팀은 나자람 수업 프로그램을 만든 뒤 부천시청소년성문화센터에 감수를 부탁했다. 성교육은 전문 영역이기에 전문기관의 검증을 받는 건 필수였는데, 부천시청소년성문화센터 측은 긍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하지만 시범수업을 진행하는 덴 어려움이 잇따랐다. 학생 모집도 문제였지만 코로나19로 직접 수업이 불가능하다는 게 큰 난관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지난해 12월 5일 화상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김도희 학생은 “화상수업이라도 진행해서 ‘돌봄에서 자람으로’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었다는 데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참여자는 역곡역 산울림청소년수련관에서 소개해 준 6명이었다. 아이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나자람 수업을 통해 나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답한 아이가 6명 중 5명이었으며 ‘추후에 나자람의 수업에 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한 아이는 6명 전원이었다. 혁곡역팀은 향후 돌봄기관의 교육과정에 ‘나자람 수업’이 편성되길 바라고 있다. 과연 가능할까. 학생들이 만든 혁신 교육법에 대한 답을 ‘어른들’이 내놔야 할 때다. 

유두진 더스쿠프 전문기자
ydj123@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