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 LINC+사업단 공동기획
대학, 소셜벤처의 요람 되다
참신하면서도 실용적인 아이디어
플라스틱 없는 장보기의 시작

쓰레기 배출, 소음, 교통…. 우리 동네의 문제들은 사실 고루하기 짝이 없다. ‘왜 저런 문제를 여태 해결하지 못했나’란 의문이 들 정도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유는 있다. 동네도, 행정가도, 공무원도, 그 위에 켜켜이 쌓인 문제들과 함께 늙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꼭 고치겠다”면서 내놓은 해법이 문제를 해결하긴커녕 탁상공론이나 시대착오적인 전시행정에 그치는 사례가 많았던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가톨릭대 LINC+사업단’의 활동에 주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청년을 지역문제 해결의 주체로 지목하고, 청년들이 참신하면서도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맘껏 드러낼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2020년 2학기엔 58명의 가톨릭대 학생이 ‘소셜리빙랩’ ‘소셜벤처’ ‘도시재생’ 3개 클래스에서 20개의 솔루션을 제안했다. 잘만 가다듬으면 정책으로 내놓을 만한 아이디어가 숱했다. 양손 가득 검은 비닐봉지를 든 전통시장 손님에게 에코백 대여 서비스를 실행한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청각장애인과 수어 통역사를 화상으로 연결하는 앱을 기획한 팀도 있었다. 평범한 동네공원을 모든 세대를 아우를 공유공간으로 탈바꿈하자는 아이디어도 흥미롭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더스쿠프(The SCOOP) ‘소셜기록제작소’에서 자세히 들어보자. 소셜기록제작소는 사회적경제기업, 스타트업, 소셜벤처 등 주류 언론에서 ‘주목하지 않는 기업’을 취재하는 더스쿠프의 콘텐츠 속 콘텐츠다. 가톨릭대 청년들의 도전, 그 첫번째 막을 올린다.

학생들이 제시한 정책 중인 기성세대가 귀담아들어야 할 아이디어들이 적지 않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학생들이 제시한 정책 중인 기성세대가 귀담아들어야 할 아이디어들이 적지 않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대학에 입학한 20학번 새내기들은 그렇게나 설던 꿈을 누리지 못했다. 대학 합격통지서를 받아들었는데, 캠퍼스 낭만은커녕 노트북에 갇혔다. 재학생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비대면으로 수업을 하다 보니 동기 얼굴 볼 일도, 마음 편히 캠퍼스를 거닐 일도 없었다. 졸업식조차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한 졸업생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여러 기업이 코로나19를 이유로 채용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대학 졸업생 예상 취업률은 44.5%에 불과하다. 절반 이상인 55.5%가 직업을 구하지 못하는 셈이다. 2014년 이후 5년간(2014 ~2018년) 전국 4년제 대학졸업생의 실제 취업률이 62.6~64.5% 수준이었음을 고려하면 예상 취업률 44.5%는 실망스러운 전망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찬 바람만 불던 캠퍼스에서 가톨릭대 학생 58명은 따뜻한 실험을 벌였다. 실험을 주도한 김승균 가톨릭대 사회혁신센터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대학교육의 본질은 학생들이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2020년 2학기 가톨릭대는 ‘사회혁신융복합전공 캡스톤디자인’이란 이름으로 ‘실용’과 ‘교양’을 적절히 섞은 3개의 강의를 열었다. 강의실을 박차고 나온 학생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가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이었다. 학생들은 코로나19 위기에도 지역문제 해결과 지역발전을 주도하는 견인차 임무를 수행했다. 이들이 일군 3개월의 변화를 추적해보자.”

■살아있는 연구실: 혁신 = 지난해 9월 가톨릭대 사회혁신융복합전공은 ‘소셜리빙랩’ ‘소셜벤처’ ‘도시재생’ 등 총 3개의 클래스를 운용했다. 이중 소셜리빙랩 수업에선 16명의 학생이 6개팀을 꾸려 참가했다. 다양한 지역사회 난제와 맞닥뜨린 학생들은 ‘살아있는 실험실’에서 지역주민 중심의 해결법을 찾았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전통시장에서 몰아내기로 합심한 ‘슬우(함효경·전혜연·이정우 학생)’팀이 대표적이다. 3명의 학생은 재래시장(역곡상상시장)의 중심에서 ‘비닐봉지 Out’을 외쳤다. 대안도 마련했다. 에코백과 다회용기 대여서비스를 운영해 ‘제로 웨이스트 장보기’를 유도한 것이다.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들로부턴 “에코백 대여 서비스가 지속된다면 앞으로도 이용하겠다(82.0%)”는 긍정적인 답변도 끌어냈다. 

슬우팀의 함효경 학생의 설명이다. “전통시장에서도 대형마트 못지않게 많은 양의 플라스틱과 비닐 포장재가 발생한다는 걸 알게 됐다. ‘손님들이 귀찮다고 싫어하면 어떡하냐’란 우려도 있었지만, 취지에 공감하는 손님들이 생각보다 많아 수월하게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었다. 대여서비스가 전국으로 확대되면 전통시장에서 검정 비닐봉지가 사라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엿보게 됐다.”

담배꽁초들이 볼썽사납게 널려 있는 골목을 정화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 ‘꿈부기팀(권효정·기세민·김민형 학생)’의 스토리도 흥미롭다. 학생들은 상습 투기지역에 직접 제작한 꽁초 수거함을 설치했다. 학생들이 만든 수거함은 ‘빨간 우체통’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내가 만든 꽁초, 해로움이 다시 나에게 돌아옵니다”란 섬뜩한 메시지를 담기 위해서였다. 효과는 뚜렷했다. 수거함이 설치된 골목의 담배꽁초가 획기적으로 줄었다. 

‘같이가치팀(김지윤·하승민 학생)’은 아이스팩에 주목했다. 배송 식품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이커머스 업체들이 아이스팩의 사용량을 늘리고 있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대부분의 아이스팩은 플라스틱 성분의 아이스젤이 들어있어 재활용이 어렵고, 하수구에 버리면 환경을 오염시킬 수도 있어서다.

학생들은 주민 설문조사와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아이스팩 수거함을 늘리는 방안과 아이스팩 내용물을 재활용할 솔루션을 제안했다. ‘타조팀(채주연·유지승·이동하 학생)’은 문화매핑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구도심에 숨어있는 문화공간을 발굴하고, 지역주민이 이를 찾아갈 수 있는 참여형 지도를 제작한 것이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노인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진 학생들도 있었다. ‘두드림팀(안별·이주현 학생)’이다. 이들은 지역주민 일부를 ‘마음리더’로 양성하고, 마음리더를 중심으로 한 독거노인 소통 커뮤니티를 제안했다. 어르신들의 고립감을 줄임과 동시에 마음리더 양성을 통한 지역 일자리까지 창출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이다. 

‘혁곡역팀(김도희·강해리·진예은 학생)’은 초등학생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질 높은 돌봄서비스를 계획했다. ‘포괄적 성교육(인권과 성평등에 기반한 성교육)’을 주제로 교육 프로그램을 짜고,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학생들을 가르쳤다. 

영유아 때부터 성 고정관념에 갇힌 사회에서 자라난다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단순한 지식이 아닌 삶의 지혜와 태도를 교육해 아이들의 내적 성장을 꾀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혁곡역팀은 교육 결과를 토대로 지역 돌봄기관에 ‘내적 성장 프로그램 의무화’를 제시했다. 

■기업가정신: 솔루션 = 소셜벤처 수업을 통해 캠퍼스를 누빈 학생들도 있었다. 소셜벤처는 사회적가치를 추구하는 스타트업을 뜻한다. 기업가 정신을 기반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난제인 ‘청년 실업’과 ‘일자리 창출’이란 두 가지 주제를 동시에 해결할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24명의 학생은 8개팀으로 나뉘어 ‘예비 소셜벤처 창업가’의 기질을 드러냈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사업 아이템을 직접 제시하고, 수익모델까지 도식화했다.  

‘비덩할멈팀(김동한·조소연·성원형 학생)’이 계획한 애플리케이션(앱) ‘Be건강’을 보자. 이 앱은 식료품뿐만 아니라 생활용품·패션제품까지 아우르는 종합쇼핑 플랫폼이다. 무엇보다 고객 타깃을 ‘채식주의자’로 한정한 게 눈에 띈다.

비덩할멈팀이 이런 플랫폼을 고안한 이유는 간단하다. 육식 위주의 식문화를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바꾸면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어서다. 식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중 80%가 축산업과 관련돼 있다. 김동한 학생은 “시장에 나온 채식주의자 전용 앱을 비교분석하고, 문제점을 보완한 서비스를 기획하게 됐다“면서 “실제 앱을 론칭했을 때의 미래 수익 시나리오까지 직접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 되자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청각장애인을 주목한 학생들도 있었다. ‘푸른하늘팀(김종성·오현우·이현지 학생)’이었다. 이들이 계획한 ‘핸즈라이브’ 앱에선 전문 수어 통역사를 화상으로 연결해준다. 덕분에 청각장애인도 실시간 양방향 의사소통을 꾀할 수 있다. 전문 수어 통역 인력이 부족하단 현실을 고려해 수어를 전공 중인 대학생까지 플랫폼에 끌어들이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건강한 신체능력을 갖춘 6070 세대를 대상으로 일자리 창출을 계획한 ‘셉템버팀(임태윤·이가록·임형준 학생)’의 얘기도 들어보자. 학생들은 건강하고 활동적인 중장년층이 전통시장 물품을 가까운 가정에 배달하는 서비스를 기획했다. ‘배달의 민족’의 액티브시니어 버전인 셈이다. 6070세대가 오랫동안 전통시장에 다닌 만큼, 이들의 좋은 물품을 고르는 안목을 활용할 수 있는 데다 지역 어르신의 소득도 끌어올릴 기특한 아이디어였다. 

‘프리즘팀(강병규·이현주·김도하 학생)’이 계획한 앱 ‘유사지식’은 “디지털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란 질문에서 출발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디지털 기술이 사회 전역에 퍼지고 있는데, 정작 ‘디지털 문맹’으로 불리는 고령층 지역주민들을 향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문제점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프리즘팀은 디지털 활용능력이 뛰어난 고등학생을 ‘디지털 강사’로 선정하고, 앱을 통해 지역노인과 학생을 매칭하는 서비스를 떠올렸다. 플랫폼에 참여한 학생들에겐 ‘봉사시간’을 부여해 참여를 유도했다.

이밖에도 많은 학생이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아이디어로 클래스를 빛냈다. ‘리마인드20팀(김건우·염나경·박지휘 학생)’은 식단 및 음식 소비패턴을 분석하는 식품 가계부 앱 ‘투데잇’을 제출했다. ‘나비박스팀(전혜영·하누리·이하림 학생)’은 일회용 테이프가 필요 없는 친환경 박스를 고안했다.

‘FYA팀(김재연·박현우·성지현 학생)’은 예술계에서 입지가 좁은 지역 청년 예술가의 미술작품을 대여해주는 서비스를 계획했다. 교통약자들의 편의시설 여부와 상세 위치를 안내하는 위치기반 서비스를 비즈니스 모델로 내세운 ‘슉슉팀(이성재·조예신·이진민 학생)’도 있었다. 

■도시재생: 청년 = 16명의 학생은 6개 팀을 꾸려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도시재생’을 탐구했다. 도시재생은 원주민을 몰아내는 대규모 철거와 하향식 재개발 대신, 주민이 참여하며 지역 공동체를 보존하는 방식의 재생이다. 정부와 여러 지자체가 도시재생의 가치를 내세우며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전시행정의 표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도시를 재생한다고 나섰다가 어설픈 덧칠로 도시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반면 가톨릭대 도시재생 클래스를 수강한 학생들의 아이디어는 남달랐다.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거창한 재생사업과 비교하면 ‘작고 소소한 변화’처럼 보일 순 있지만, 주민들의 실제 삶을 들여다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안부인사팀(차민정·정보경·김민형 학생)’이 계획한 지역사회 자율방범 앱 ‘위맵’의 작동방식을 보자. 주민들이 직접 우범지역을 촬영하고 공유하면, 커뮤니티를 통해 함께 해법을 모색한다. CCTV나 비상벨, 가로등이 고장 났을 때 즉각 신고할 수 있는 기능도 갖췄다. 일상 속의 안전정보나 범죄·사고 현황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범 플랫폼이다. 

‘아무말팀(조소연·김동한·성원형 학생)’은 성장동력을 잃어가는 지역 경제에 솔루션을 제공할 대안을 내놨다. 코로나19로 침체된 지역(역곡 대학로) 상권을 다시 활성화하자는 취지에서다. 지중화(전선과 통신선을 땅에 묻는 사업)를 통해 쾌적하고 안전한 보행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상권을 대표할 마스코트를 만들고 버스킹 공연을 통해 문화 이벤트를 더하자는 거다. 상권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의 변화를 동시에 꾀하는 투트랙 전략이었다. 

가톨릭대 학생들은 다양한 사회적 해법을 과감하게 제시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가톨릭대 학생들은 다양한 사회적 해법을 과감하게 제시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고가 하부부지(부천 성심고가)의 활용 방안을 효과적으로 제시한 학생들도 있었다. ‘시소팀(조예신·구한희·정희재 학생)’이다. 이들은 삭막하기만 한 콘크리트 공간을 동네 주차난을 해소할 수 있는 공영주차장으로 바꿔보자고 제안했다. 

서영은·윤선주·오현우 학생은 ‘블랭크팀’을 꾸려 공유경제 서비스를 제시했다. 낙후된 동네공원을 지역주민 모두가 활용할 수 있는 공유공간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작은 영화관, 플리마켓 등 다양한 볼거리를 설치해 모든 연령층이 공간을 누릴 방안을 고심했다. 이밖에도 부천 대표 문학인을 테마로 한 굿즈를 제작한 ‘아리아리팀(한설희·홍유진·설유진 학생)’, 문화 콘텐츠를 기반으로 동네 지도를 새롭게 제작한 ‘만담꾼팀(조희상·박예빈·엄아린 학생)’ 등의 아이디어도 돋보였다. 

더스쿠프(The SCOOP)는 ‘소셜기록제작소’를 통해 학생들이 제시한 해법을 연재할 계획이다. 사회의 문제를 신선하면서도 날카롭게 통찰한 학생들의 외침에 정책적 함의를 담아보겠다는 게 우리의 계획이다. [※ 참고: 소셜기록제작소는 세상이 알아보지 못한 사회적경제기업, 스타트업, 소셜벤처 등의 처음과 혁신을 취재하는 더스쿠프의 콘텐츠 속 콘텐츠다.] 

김승균 센터장은 “코로나19로 현장조사가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도 학생들은 지역사회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미래를 제시했다”면서 “학생들의 제안을 그저 아이디어만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정책적인 공감과 지지를 보여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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