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작가와의 차 한잔
작가 지망생 이혜원 학생의 꿈과 고민

테이블 한쪽엔 작가를 꿈꾸는 청년이 앉았습니다. 글을 무척 좋아하지만 글 쓰는 법을 배운 적 없어 고민이 많은 청년입니다. 다른 한쪽엔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운명적으로 작가가 된 이가 앉았습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는 우연한 기회로 글쓰기를 시작했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습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쓴 전직 비서관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더스쿠프(The SCOOP)와 멘토링 전문 NGO 러빙핸즈가 두 사람의 티토링(Tea-toring)을 공개합니다. 강원국 작가와 이혜원 학생과의 만남편입니다.

티토링으로 만난 강원국 작가와 이혜원 학생.[사진=천막사진관]
티토링으로 만난 강원국 작가와 이혜원 학생.[사진=천막사진관]

이혜원 학생은 글쓰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여행과 책 쓰기가 주요 클래스인 샨티학교에 다니면서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걱정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또래보다 1년 늦었다는 점도 부담입니다. 스무살인 이혜원 학생은 이제 고3입니다. “한발 뒤처진 제가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강원국(60) 작가가 응답했습니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시작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을 지내고, 지금은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훌륭한 작가가 되는 비법은 따로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그는 “견디면 또다른 무대가 열릴 것이다”며 응원했습니다.

“저도 이 자리에 오기까지 좌절한 적이 많았습니다. 숱한 시련도 겪었죠. 하지만 풍랑이 있어야 배는 비로소 나아갈 수 있는 법입니다. 하루하루를 견디다 보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흥미롭게도 강 작가 역시 혜원 학생처럼 고 등학교를 1년 더 다녔습니다. 그는 “자퇴를 고민했을 정도로 고등학교 시절은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조언은 결이 봄볕처럼 따스했습니다.

 


“스무살에게 1년은 굉장히 중요하죠. 그렇지만 40대, 60대가 돼서 돌아보면 그 1년은 40분의 1, 60분의 1에 불과합니다. 힘든 시간은 점점 희석됩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도전하세요.”

지금부터 두 사람의 ‘티토링(Tea-toring)’을 공개합니다. 티토링은 더스쿠프(The SCOOP)와 멘토링 전문 NGO 러빙핸즈가 공동으로 기획한 ‘멘토링 프로젝트’입니다. 꿈을 꾸는 청년 멘티와 꿈을 이룬 멘토를 매칭해 차 한잔을 마시면서 공감대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입니다. 티토링 그 네번째편, 작가를 꿈꾸는 청년과 베스트셀러 작가의 만남입니다.

# 티토링 첫번째 음미 : 청년의 서툰 질문

이혜원 학생(이하 혜원) : “작가가 되기까지는 길이 너무 멀고 험난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저는 아직 고등학생인데, 딱히 전문적으로 글 쓰는 방법을 배우지도 않았고 대학에 입학해서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해야 작가가 될 수 있나요?”

혜원 학생의 고민을 들은 강 작가는 “나도 글로 먹고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른바 ‘글쓰기’ 시리즈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작가다. 그가 2014년에 쓴 「대통령의 글쓰기」는 2019년까지 195쇄란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같은 해 출간한 「회장님의 글쓰기」와 2018년에 쓴 「강원국의 글쓰기」까지 합하면 강 작가의 책 판매량은 30만부가 넘는다.

강 작가가 책을 쓸 수 있었던 데는 그의 독 특한 이력이 한몫했다. 2000~2003년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실에서 행정관을, 2004~2008년엔 연설비서관을 지냈는데, 주요 업무 중 하나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펴낸 게 바로 「대통령의 글쓰기」다. 하지만 강 작가는 “처음부터 작가를 꿈꿨던 건 아니다”고 말했다.

강원국 작가(이하 강 작가) : “초등학교 때는 영화배우가 꿈이었어요. 대학교에 가선 막연하게 기자를 꿈꿨었는데, 글 쓰는 재주는 없었거든요. 당연히 시험에서 떨어졌죠.”

강 작가는 1990년 대우증권에 취직했다. 당시 신입사원이었던 그가 맡은 일은 대우증권 창립 20주년 기념 사사社史를 쓰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성공적으로 사사를 펴낼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연설문을 작성하는 일도 맡았다.

강 작가 : “취직하고 첫번째 맡은 임무가 글을 쓰는 일이었어요. 그러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연설문을 쓰는 일까지 담당했죠. 이런 경력을 좋게 봤는지 청와대에서 절 부르더라고요. 그렇게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게 됐죠. 첫 직장에서 글 쓰는 일을 맡지 않았다면 아마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을 거예요. 작가가 되는 비결은 따로 없는 것 같아요. 주어진 기회를 잘 붙잡고 난관을 잘 버티는 게 제 나름의 방법이었다고 봅니다.”

# 티토링 두번째 음미 : 버티는 법

혜원 : “연설문을 쓰면서 대통령에게 많이 혼났다고 들었는데 많이 힘들진 않았나요?”

강 작가 : “무서웠죠. 대통령에게 혼날 때마다 도망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대통령 그늘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요. 이 하늘 아래 도망갈 데가 없는 거예요(웃음). 어딜 가나 대통령 밑이잖아요.”

강원국 작가는 “도전하지 않으면 현실에 안주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사진=김대중노벨평화상 기념관 제공]
강원국 작가는 “도전하지 않으면 현실에 안주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사진=김대중노벨평화상 기념관 제공]

혜원 :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강 작가 : “그냥 이렇게 생각했어요. 어제 안 좋았던 일 다 잊고 오늘 새롭게 출발하자는 마음가짐을 가졌죠. 컴퓨터 리셋 버튼을 누르면 전원이 껐다 켜지는 것처럼요.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늘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텼죠.”

그러면서 강 작가는 ‘버티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들려줬다. 고등학교 입학 시험이 있던 당시 그는 입시에 떨어진 경험이 있다. 고등학생이 돼서도 학교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다. 자퇴를 결심해야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그 때문인지 그는 고등학생으로 4년을 보냈다. 그는 이 시기를 ‘1년 꿇었다’고 표현했다.

강 작가 : “고등학생 시절은 실패의 연속이었어요. 너무 험난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죠. 그저 버티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니 또다른 무대가 열리고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더라고요. 제가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을 꼽으라면 전 ‘버티기’가 답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 티토링 세번째 음미 : “아픔은 희석된다”

강 작가의 고백 아닌 고백을 들은 혜원 학생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도 고등학교를 1년 늦게 졸업해야 하는 ‘늦깎이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또래 친구들보다 1년 늦게 사회에 나가는 거잖아요. 남들보다 뒤처져 있다고 생각하니까 걱정이 정말 많이 되더라고요.”

티토링 4편 ‘강원국 작가와의 차 한잔’의 스틸컷.[사진=더스쿠프 포토]
티토링 4편 ‘강원국 작가와의 차 한잔’의 스틸컷.[사진=더스쿠프 포토]

강 작가 : “저도 그랬어요. 20살에게 1년은 굉장히 크죠. 20분의 1이니까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그 1년은 점점 희석이 됩니다. 40세가 되면 40분의 1, 60세가 되면 60분의 1로 비중이 줄어들기 때문이죠. 그때 돌이켜 보면 지금 1년 늦은 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강 작가는 마냥 버티기만 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게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노력’을 덧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뭔가를 시도하고 도전하는 덴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죠.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도전을 하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실패의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죠. 혜원 학생처럼 젊었을 때는 실패하더라도 얼마든지 역전할 기회가 있잖아요. 계속 도전하다 보면 꿈꾸는 세상이 열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혜원 학생은 강 작가의 조언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반론을 폈다. “도전하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다들 말은 그렇게 하죠. 하지만 실패를 받아주지 않는 게 요즘의 사회란 생각이 들어요.”

강 작가 : “그렇긴 합니다. 한국 사회는 실패를 잘 용납하지 않죠. 이런 분위기에선 청년들이 도전할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강 작가는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남들이 해보지 않은 일, 상상해서 시도하는 일은 당연히 실패할 확률이 높아요. 상상력이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길러지는 건 이런 이유에서죠. 도전하지 않으면 상상하지 않게 되고, 결국 현실에 안주하고 말 겁니다.”

강 작가는 자신이 보좌했던 두 대통령이 즐겨 하던 얘기를 예로 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는 괴테의 말을 종종 인용했어요. ‘멈춰 있기만 하는 건 배가 아니다. 파도와 풍랑이 거세게 이는 바다에 있을 때 비로소 배의 존재 의미가 생긴다’, 이런 의미에서였죠.”

혜원  :  “노무현 대통령은요?”

강 작가 : “노 대통령도 비슷한 말씀을 했어요. ‘시도하고 도전하면 성공·실패 확률이 반반이지만 실패가 두려워서 도전하지 않으면 100% 실패한다’고 말이죠. 이런 마음가짐이 두 사람을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려놓은 것 아닐까요? 혜원 학생도 실패에 덜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 티토링 네번째 음미 : 익숙할 때까지의 고비

강 작가의 말을 곰곰이 듣던 혜원 학생은 “글쓰기를 좋아하시느냐”는 질문을 던지면서 화제를 돌렸다. 글쓰는 게 직업인 작가에게 글을 좋아하느냐고? 뻔한 질문 같았지만 강 작가는 뜻밖의 답을 입에 담았다.

강 작가는 청년에게 “풍랑이 있어야 배는 전진한다”는 조언을 건넸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강 작가는 청년에게 “풍랑이 있어야 배는 전진한다”는 조언을 건넸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강 작가 :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글쓰기가 제일 힘든 일이란 생각도 종종 들고요.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인 경우도 적지 않죠. 처음 글을 쓸 때도 그랬어요. 글에 재주가 없어서 글쓰기가 즐겁지 않았죠. 글쓰기에 익숙해지면서 재미를 찾은 것 같아요. 일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재미있을 수 없죠.”

강 작가가 이렇게 말한 덴 나름의 이유가 있다. 누구에게든 ‘낯섦’이란 게 있기 때문에 ‘익숙해질 때까지의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 거였다. 글이든 공부든 운동이든 꾸준히 하다 보면 ‘알찬 결실’을 맺을 것이란 조언이었다. “힘들지만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가끔은 생각보다 잘 쓴 글이 한두편씩 나오죠. 그럴 때 또다른 재미가 붙습니다. 그런 경험을 반복하는 게 작가의 삶이 아닐까요?”

혜원 : “글이 정말 안 써질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땐 어떻게 극복하나요?”

강 작가 : “그런 시기를 ‘작가의 장벽’이라고 불러요. 벽에 부딪힌 느낌을 받아서죠. 그럴 때는 일단 글쓰기를 멈춥니다. 무작정 붙든다고 해서 갑자기 글이 써지진 않아요. 책을 읽거나 다른 공부를 하는 등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면 글감이 하나둘씩 채워지고 다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죠.”

사실 혜원 학생은 선생님의 추천으로 책 한편을 쓸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도전하지 않았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남들이 제 글을 보고 어떤 평가를 할지가 두려웠어요. 소위 말해 ‘멘탈’이 약한 편이죠. 어떻게 해야 단단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 [※참고: 혜원 학생은 대안학교인 ‘샨티학교’를 다닌다. 이 학교에선 여행과 글쓰기를 통해 학생들의 자립심을 길러주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강 작가 : “저도 똑같아요. 이제 60세가 다 됐지만 아직까지 독자가 두렵습니다. 어쩌면 혜원 학생보다 더 두려움이 클 걸요?”

강 작가는 “점점 높아지는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베스트셀러 작가’란 타이틀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럴 땐 단순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는 제 아내가 유일한 독자라고 생각하고 글을 씁니다. 그러면 불안감도 걱정도 덜 수 있어요. 아내는 제 글을 무조건 좋다고 하거든요. 귀찮아서 하는 얘기겠지만 저에겐 꽤 큰 힘이 됩니다. 혜원 학생도 주변에 그런 친구를 만들어 보세요.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이어도 좋습니다. 나를 격려하는 한사람의 존재가 있으면 글을 써나갈 수 있는 큰 힘을 얻을 수 있어요.”

두 사람의 티토링은 그렇게 끝났다. 혜원 학생은 “언젠가 또 작가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강 작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다음에 정말 작가가 된다면 꼭 다시 연락을 주세요. 그때는 작가 대 작가로 만나서 얘기를 나눕시다. 파이팅.”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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