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의 한계

여러 플라스틱을 섞어 만든 포장재는 분리배출 시 OTHER로 규정된다. 재활용 현장에선 OTHER로 구분된 포장재를 재활용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2019년 12월 시행된 포장재 재질·구조 평가제도에 따르면 이런 OTHER 포장재도 ‘우수’ 등급을 받을 수 있다. 분리배출 표시기준과 재활용 등급 표시기준이 다르기 때문인데, 소비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기준, 좀 단순하게 만들 순 없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의 한계를 짚어봤다. 

자원재활용법 개정으로 포장재 평가제도가 도입됐고, 유색 페트병·PVC 등의 사용이 금지됐다. [사진=뉴시스]
자원재활용법 개정으로 포장재 평가제도가 도입됐고, 유색 페트병·PVC 등의 사용이 금지됐다. [사진=뉴시스]

2018년 12월, 환경부는 친환경 포장재 제조를 늘리기 위한 법안을 마련했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이하 자원재활용법)’을 개정하면서다. 2019년 4월에는 포장재 재질에 따라 등급을 나누기 위해 ‘포장재 재질·구조개선 등에 관한 기준’을 개정했고, 같은 해 8월 세부내용을 발표했다.

개정된 자원재활용법의 골자는 ▲재활용 가능한 포장재를 최우수·우수·보통·어려움 4개 등급으로 나누고 ▲폴리염화비닐(P VC)과 유색 페트병, 일반 접착제를 쓴 페트병 라벨 등의 사용을 금지하는 것 두가지다. 2019~2020년 음료회사들이 제품을 투명 페트병으로 만들고 라벨을 없애는 등 앞다퉈 친환경 제품을 출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포장재 재활용 등급은 각 업체가 자체 평가 자료를 한국환경공단에 제출하면 확인서를 통해 받을 수 있다. ‘재활용 어려움’ 등급을 받은 포장재는 제품에 등급을 의무적으로 표시해야 한다.[※참고 : 이를 쉽게 말해 ‘포장재 재질·구조 평가제도’라고 말한다. 포장재 재질 등급을 나누는 기준은 ‘재활용 용이한 재질·구조(최우수·우수)’ ‘재활용이 제한적으로 용이한 재질·구조(보통)’ ‘재활용이 어려운 재질·구조(어려움)’ 크게 3가지다.] 

 

■허점❶ 무리한 예외 = 이런 포장재 재질·구조 평가제도는 빠르게 만들어졌지만 업체들에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은 건 아니다. 제도의 시행일은 2019월 12월 25일이었지만 정부가 9개월간의 계도기간(2019년 12월 25일~2020년 9월 24일)을 줬기 때문이었다.

계도기간이 끝난 후에도 등급 확인서를 받고 최대 6개월 내 제품에 표시하도록 했으니, 실질적으로 제도가 시행된 건 올해 3월 24일부터다. 이뿐만이 아니다. 환경부는 제품 공정 변경 등을 이유로 시행이 어렵다고 신청한 기업에 최장 9개월의 표기유예기간을 줬다. ‘이것저것 다 봐준 탓에 연말에야 제도가 완전하게 적용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환경부는 “2019년 시행 이후 1년 만에 ‘재활용 어려움’ 등급 페트병 출고량이 43% 줄어들 만큼 효과가 나타났다”고 강조했지만 법 적용의 계도·유예기간이 늘어지면서 잡음이 새어 나왔다. 가장 논란이 된 건 화장품 업계를 예외로 한 조항이었다. 

지난해 11월 환경부는 화장품 업계와 협약을 맺고 2025년까지 포장재 재질 등급 표시를 면제해줬다. “재활용 등급을 표기하면 이미지가 나빠지는 데다, 용기를 모두 친환경으로 전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화장품 업계의 호소를 들어준 결과였다. 대신 환경부는 2025년까지 ‘재활용 어려움 등급’에 해당하는 포장재 출고·수입량의 10%를 역회수하고 재생원료 사용을 확대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문제는 시중의 화장품 대부분이 ‘재활용 어려움 등급’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디자인·기능상의 이유로 플라스틱·유리 등 용기에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어서다. 가뜩이나 재활용이 어려운 화장품이 등급제 유예까지 받자 시민들은 항의하고 나섰다. ‘화장품 어택’ 캠페인을 통해 화장품 용기를 모아 업체에 보내거나, 행정예고 기간에 수천개의 반대의견을 보내며 적극적으로 반발했다. 환경부는 결국 시행일 직전 화장품 용기의 등급 표기 면제를 철회했다.

■허점❷ 복잡함과 혼란 = 포장재 재질·구조 평가제도의 한계는 이뿐만이 아니다. ‘재활용을 용이하게 만든다’는 목적과 달리, ‘등급기준’이 복잡해 소비자에게 되레 혼란을 주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분리배출 시 ‘OTHER’로 구분되는 복합재질 포장재의 사례를 들어보자. 복합재질 포장재는 플라스틱+플라스틱, 플라스틱+유리, 플라스틱+유리+종이 등 여러 재질로 만들어진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OTHER 포장재는 재활용 현장에서 분류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OTHER 포장재도 재활용 등급 표기는 ‘우수’를 받을 수 있다. 예컨대 즉석밥 용기처럼 다른 재질이 붙어있지 않은 포장재는 실제 선별장에선 재활용으로 분류하지 않지만 평가제도 기준에선 우수에 가깝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분리배출과 재활용 등급은 다른 것으로, 어려움 등급을 받았다고 재활용이 안 되는 포장재는 아니다”면서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재활용 유무를 판단하기 모호한 포장재가 ‘최우수·우수’ 등급이면 재활용이 잘 되고, ‘어려움’ 등급이면 재활용이 안 되는 것으로 혼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점❸ 분담금 20%의 한계 = 포장재 재질·구조 평가제도에 아쉬운 점은 또 있다. 등급이 중요한 이유는 재활용 용이성 때문만은 아니다. 등급에 따라 제조업체에 부과되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분담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재활용 어려움 등급을 받은 업체의 분담금은 20% 할증된다. 늘어난 분담금은 최우수 등급을 받은 업체의 인센티브(분담금 단가의 50%)가 되거나 포장재 재질 개선을 위한 연구비에 쓰인다. 

하지만 여기서도 업계를 지나치게 배려한 듯한 부분이 있다. 2020년 8월 환경부가 세부내용을 발표할 땐 재활용 어려움 등급의 분담금이 최대 30%에 달했기 때문이다. 한국포장재활용사업공제조합 측은 “환경부·환경공단·의무생산자(제조·수입업자)·재활용업자 등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분담금 할증 비율이 20%로 확정됐다”고 설명했다. 20%에 그친 할증이 기업에 얼마나 페널티로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포장재 재질·구조 평가제도에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기존의 분리배출 표시제도가 개선되지 않은 것도 아쉬운 점이다. 2020년 9월 환경부는 재질 중심의 분리배출 표시를 배출요령 위주로 바꾸는 방안을 내놨다. 가령, 제품에 붙어있는 삼각형 모양의 분리배출 표시에 ‘캔류’ ‘페트’ ‘종이팩’만 표시했다면 개정 후엔 ‘투명 페트병-라벨을 떼서’ 등 구체적인 재질과 배출 방법을 함께 표기하는 방안이었다. 

쉬운 재활용을 유도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지침은 무산됐다. 환경부 관계자는 “업계의 비용 부담이 크다는 주장과 홍보물·안내문으로 배출요령을 알리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의견에 따라 철회했다”고 설명했다. 대신 환경부는 재활용이 안 되는 포장재에는 분리배출이 불가능하다고 표시하는 지침을 행정예고 중이다. 

이렇듯 포장재 재질·구조 평가제도와 분리배출 표시제도는 너무 자주 바뀌었고, 소비자가 받아들이기 복잡하다. 그러다 보니 제도의 한계는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업계의 볼멘소리에 따라 방향이 결정돼 왔다. “이 제품은 재활용이 된다 안 된다”를 더 쉽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을까.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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