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 속 이야기 ❷

명패와 우체통, 그리고 초인종이 세로로 나란히 붙어있다. 익숙한 듯 낯선 모습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명패와 우체통, 그리고 초인종이 세로로 나란히 붙어있다. 익숙한 듯 낯선 모습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그 옛날 그 대문을 창신동에서 다시 본다. 두꺼운 지붕에 명패, 우편함, 초인종 등 군더더기가 참 많다. 하지만 그 옛날 그 시절엔 뭐 하나 하찮은 게 없었을 게다. 명패는 내 집의 상징물이었을 테고, 우편함은 새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을 것이다. 하물며 초인종이 없으면 철문을 쾅쾅 두드리거나 소리를 질러야 했을 것이다. 지금은 하찮아진 그것들을 보면서 나는 낭만을 소환해 본다.

대문은 출입의 목적을 넘어 집의 얼굴 역할을 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대문은 출입의 목적을 넘어 집의 얼굴 역할을 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대문의 형태 = 주택의 대문엔 으레 지붕이 있다. 지붕이 없어도 대문 역할을 능히 할 수 있는데 굳이 무겁고 두꺼운 콘크리트 지붕을 머리 위에 올려놨다. 전통한옥의 대문도 가운데 지붕을 들어올려 ‘솟을대문’이라 부르는 걸 보니, ‘대문 위 커다란 지붕’은 역사·문화적 전통을 갖는 양식인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대문 위에 크고 두꺼운 지붕을 설치하는 걸까. 

아마도 지붕이 있는 건 이 땅의 변화무쌍한 사계절 때문일 것이다. 내리쬐는 여름 햇빛과 비, 살을 에는 겨울 추위와 눈, 그 사이 봄·가을 등 우리나라 특유의 자연은 사람들이 지붕과 그늘이 있는 공간을 선호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지붕 위 구조물에 풀이 돋아났다. 어디서 새싹이 날아왔을까. 혹시 집주인이 심었을까. 싱그러운 초록색이 회색빛 골목길을 환하게 만든다. [사진=오상민 작가]
지붕 위 구조물에 풀이 돋아났다. 어디서 새싹이 날아왔을까. 혹시 집주인이 심었을까. 싱그러운 초록색이 회색빛 골목길을 환하게 만든다. [사진=오상민 작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목木구조로 집을 지어올렸다. 목재의 휨과 뒤틀림을 방지하기 위해 지붕을 올려 목자재를 보호하는 건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철대문도 마찬가지다. 강한 햇빛과 물은 철대문을 망가뜨린다. 콘크리트 지붕은 철대문 위에서 눈·비를 막아 철의 부식을 구조적으로 보호한다.

햇빛이 너무 강하거나 눈·비가 올 때 지붕이 있으면 잠시 피할 수 있다. 담장 밖 손님이 초인종을 누르고 잠시나마 우산 없이 또는 그늘 아래서 응답을 기다린다. 지붕은 손님을 배려하는 공간이자 손님이 잠시 피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지붕의 필요성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지붕의 크기와 두꺼움을 설명하진 못한다. 그 두꺼운 수평 부재의 이유는 전통적인 비례에서 답을 찾아보자. 

전통한옥의 지붕구조는 건물에 비해 커다란 편이다. 그런데도 낯설지 않은 건 그 비례가 우리 눈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두꺼운 수직·수평 부재가 적절한 비례로 연출된 모습은 격식 있어 보인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집주인의 품격과 수준을 보여주기 위해, 또는 대문을 대문답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두꺼운 콘크리트 지붕을 적절한 비례로 만든다. 그것이 이런 형태의 대문을 갖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대문은 집주인의 취향과 쓰임의 목적에 따라 소재도, 색상도, 모양도 각각 다르다. [사진=오상민 작가]
대문은 집주인의 취향과 쓰임의 목적에 따라 소재도, 색상도, 모양도 각각 다르다. [사진=오상민 작가]

■ 대문 손잡이 = 사자가 주택의 대문에 달려있다. 페인트칠에 덮인 사자의 용맹한 얼굴과 둥근 손잡이, 그리고 철대문은 옛 단독주택의 상징인 것 같다. 

밀림의 왕 사자는 언제부터 대한민국 주택 대문에 붙어 집을 지키기 시작한 걸까. 유례를 찾아봤지만, 기록을 확인하는 게 쉽지 않다. 1970~1980년대 양옥집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서양식 대문에 사자머리 손잡이가 자연스럽게 달린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마을의 주택가를 둘러보면 사자 말고도 다양한 손잡이가 있다. 엽전 모양, 둥근 모양, 육각 모양, 봉 모양, 한번꼰 모양, 두번꼰 모양, 꽈배기 모양, 동물 모양 등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봉 모양, 사자 모양, 엽전 모양 등 다양한 대문 손잡이의 모습. [사진=오상민 작가]
봉 모양, 사자 모양, 엽전 모양 등 다양한 대문 손잡이의 모습. [사진=오상민 작가]

■대문 부착물❶ 명패 = 대문에 한발 더 다가가 본다. 대문 주위에는 집주인의 이름이 적힌 명패, 우편함, 초인종 등이 필요한 위치에 적절히 붙어있다. 하나씩 들여다보자.

먼지 닦은 지 오래된 듯 보이는 명패가 대문에 걸려있다. 한자로 쓰인 탓에 이름을 읽을 수가 없다. 이름을 밖에 알리기 위한 명패의 용도가 무색해진다. 이름을 읽어보려 뜻과 음을 떠올려 보지만 그뿐이다. 나 같은 보통사람들에게 한자 명패는 복잡한 선을 음각양각한 생활 속 예술작품이다.

요즘에는 명패를 설치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설치하더라도 대부분 한글명패인데, 여기에 디자인을 가미한 것도 있다. 한자 명패도 멋있지만, 난 한글 명패가 더 아름다워 보인다. 단체생활하는 곳에서 자기 물건에 이름을 적는 건 필수다. 

다들 비슷한 물건을 사용하기 때문에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해야 해서다. 이름을 적어 내 것임을 알리고, 필요할 때 내 것임을 확인한다. 집에 이름을 새기는 것은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일이다. 저마다 모양이 다른 집을 잊어버릴 일은 단언컨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명패를 달까. 예나 지금이나 집을 짓는다는 것은 인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명패를 단다는 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집을 갖게 됐다는 하나의 상징적인 기념행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은 명패가 달린 집보다 없는 집이 더 많다. [사진=오상민 작가]
지금은 명패가 달린 집보다 없는 집이 더 많다. [사진=오상민 작가]
흔적만 남은 명패의 자리가 어딘가 모르게 외로워 보인다.[사진=오상민 작가]
흔적만 남은 명패의 자리가 어딘가 모르게 외로워 보인다.[사진=오상민 작가]

■대문 부착물❷ 우편함 = 이번엔 우편함을 보자. 철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LETTERS’라는 영어단어가 쓰여있다. 낡은 문에 영어가 적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는데, 철문과 글씨가 꽤나 잘 어울린다.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감성이 이런 모습인가 싶다. 

이메일과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우편함은 집 밖 소식이 들어오는 창구였다. 긴급한 전보는 물론 대학합격 통지, 군입영 통지 등 외부와 연결된 중요한 알림은 우편함을 거쳐야만 소식을 받을 수 있었다.

우편함에서 편지를 꺼내 읽던 기억을 되살려본다.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우리집 우편함에 여러 개의 우편물이 꽂혀있다. 뭉치로 손에 들고 집으로 들어가며 내 이름이 적힌 편지를 고른다. 

알록달록한 편지봉투에는 이름과 주소가 적혀있고, 한쪽 귀퉁이에는 우표가 붙어있다. 집에 들어가 식탁에 가족들 우편물을 대충 놓고, 책상에 앉아 조심스럽게 내게 온 편지의 봉투 한쪽 귀퉁이를 뜯어낸다. 조심히 다뤄야지 실수하면 편지지까지 찢어진다. 

봉투를 열어 편지를 꺼낸다. ‘ㄷ’자로 접힌 편지지를 곱게 펼친다. 영화포스터 이미지로 만든 편지지와 손글씨로 적힌 글을 천천히 읽어 내려간다. 편지는 편지를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 가슴 설레는 일이다. 그 시절 편지는 ‘낭만’, 그 자체였다.

스마트폰, 이메일, 카카오톡, DM…. 0.1초면 전 세계 어디든 원하는 사람에게 연락을 보낼 수 있는 지금 우편함은 구시대의 유물이나 광고 같은 느낌이다. 기술은 편리함을 만들고 과거의 불편함은 낭만으로 기억된다. 언젠가 카카오톡도 우편함의 편지처럼 낭만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철문과 LETERS의 영어단어 조합이 묘하게 어울린다. [사진=오상민 작가]
철문과 LETTERS의 영어단어 조합이 묘하게 어울린다. [사진=오상민 작가]
초록은 동색이다. 대문을 칠할 때 우체통도 함께 칠했을 것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초록은 동색이다. 대문을 칠할 때 우체통도 함께 칠했을 것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대문 부착물❸ 초인종 = 커다란 초인종 위에 작은 초인종이 올라타 있다. 어미 거북이 등껍데기에 새끼 거북이가 올라간 것처럼 모습이 재미있다. 왜 초인종은 초인종을 업어야 했을까. 

옛날 초인종은 참 컸다. 초인종 버튼, 스피커, 마이크 등 다양한 전기통신기술을 초인종 박스에 욱여넣어야 했을 테니, 그 시절 초인종은 클 수밖에 없었을 게다. 요즘 초인종은 옛 초인종보다 훨씬 작다. 물론 더 작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보고 눌러야 하니 그쯤에서 타협한 것 같다. 

어쨌거나 새 초인종을 설치하기 위해 옛 초인종을 철거하면 커다란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그 구멍을 메꾸는 것은 생각보다 번거로운 일이다. 때론 초인종 가격보다 구멍을 메꾸는 비용이 더 들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디자인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은 윷판에 말을 업듯, 큰 초인종에 작은 초인종을 얹는다. 

두꺼운 수평 부재가 있는 대문의 형식과 모양은 집집마다 비슷하지만 대문과 부착물의 크기, 형태, 재질, 색상, 제품, 위치는 집마다 다르다. 대부분 현장에서 맞춰 대문을 제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건축가와 건축주의 취향도 ‘다름’에 한몫했을 게 분명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 몸의 윤곽과 구성은 같지만, 표정과 분위기, 생각은 같을 수 없다. 이처럼 형식은 비슷하되, 내용은 다른 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아파트가 대중화하면서 우리나라의 집들이 평범한 공동주택이 돼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현관문 뒤에 마련된 몇가지 타입의 공간에서 살고 있다. 효율적이고 기능적이지만 자연스러워 보이진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곳에서 잘도 맞춰 살고 있다. 나도 오늘 그곳으로 퇴근한다. 

우편함 밑에 수줍게 숨어있는 초인종이 귀엽다. [사진=오상민 작가]
우편함 밑에 수줍게 숨어있는 초인종이 귀엽다. [사진=오상민 작가]
엄마가 아기를 업듯 큰 초인종 위에 아기 초인종이 올라와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엄마가 아기를 업듯 큰 초인종 위에 아기 초인종이 올라와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옛 초인종과  지금의 초인종이 한 벽면에 함께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옛 초인종과  지금의 초인종이 한 벽면에 함께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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