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 속 이야기 ❶

대문에 사자머리가 붙어있다. 용맹한 얼굴에 위협적인 갈기로 무장한 사자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버스 손잡이만 한 철고리를 물고있다. ‘밀림의 왕’ 사자는 대체 언제부터 대한민국 주택 대문에 붙은 채 그 집을 지키기 시작한 걸까. 이 땅에서 많이 사용해온 문양인 용, 호랑이, 새, 물고기, 도깨비도 아니고 왜 사자였을까. 살짝 검색해보니 1970~1980년대 양옥집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자연스럽게 서양식 대문에 사자머리 손잡이가 달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말이다. 이번 주제는 단독주택의 대문이다. 집과 바깥의 경계에 선 커다란 문, 그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밀림의 왕 사자는 대한민국의 주택 대문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밀림의 왕 사자는 대한민국의 주택 대문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 대문 = 상상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 단독주택 앞에 서면 보통 대문과 담장이 있다. 그 높은 담장 뒤로 건물이 빼꼼 보인다. 담장과 대문은 부지를 견고하게 둘러싸고 있어 밖에서는 대문 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내부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뿐이다. 괜히 안이 궁금해 들여다보려고 기웃거리지만 시선이 넘어갈 빈틈은 없다. 그러다 주변에 사람이라도 지나가면 ‘나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란 느낌으로 선한 표정을 짓고, 밝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그 자리를 피한다.

나는 단 한번도 단독주택에 살아본 적이 없다. 단독주택의 대문은 나의 상상 속 공간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다. 어렸을 때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문을 바라보며 머릿속에 상상의 집을 지어보곤 했다. 어릴 때나 성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진=오상민 작가]
대문을 바라보며 머릿속에 상상의 집을 지어보곤 했다. 어릴 때나 성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진=오상민 작가]

# 대문이 있는 집 = 내 머릿속에 처음 각인된 단독주택은 이모할머니집이다. 아주 어렸을 적 기억이라 대부분의 기억은 흐릿하지만, 집과 관련된 몇개의 장면은 사진을 보는 것처럼 뚜렷하다.

첫번째는 대문 밖에서 엄마와 함께 초인종을 누르는 장면이다. 어린 내가 보기에 대문은 크고 높았으며, 아파트 문과 다른 중후한 품격이 느껴졌다. 두번째는 집 안에서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마당과 실내의 장면이다. 한여름 매미가 울 것처럼 하늘은 파랗게 반짝였고, 잔디정원은 진한 녹색으로 빛났다. 실내가구는 고풍스러웠고 소파에 앉은 이모할머니와 엄마는 소소한 대화를 나눴다. 


33㎡(약 10평)이 채 안 되는 작은 저층 아파트에 살던 내가 마당이 있는 그림 같은 집을 보고 놀라서 그날 그 장면이 머릿속에 탁하고 박힌 모양이다. 그때부터 나는 ‘대문이 있는 집=마당이 있는 집=부잣집’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대문은 집과 바깥의 경계에 있는 존재이며 상상 속 공간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다. [사진=오상민 작가]
대문은 집과 바깥의 경계에 있는 존재이며 상상 속 공간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다. [사진=오상민 작가]

# 대문 안 집의 상상❶ = 학창시절 새로 사귄 친구가 단독주택에 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부잣집 아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고는 어렸을 적 이모할머니댁의 대문과 마당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 손으로 낙서를 하면서 가보지도 않은 친구집 대문 안을 다음과 같이 상상하기도 했다. 

커다란 대문 뒤엔 가족만의 잔디정원이 있다. 한쪽 구석에는 강아지 집과 작은 연못이 있고, 세련된 옷을 입은 친구 부모님과 친구가 정원 한쪽 테이블에 앉아 기분 좋은 얼굴로 하하호호 웃고 있다. 상상은 집 안까지 퍼진다. 거실에는 소파가 있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 옆에는 흔들의자가 ‘끼륵’ 소리를 낸다. 식탁에는 미제사탕과 일제과자가 있고 주방에는 가정부가 음식을 하고 있다. 거실 한편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2층에는 방이 여러개 있다. 아마 친구집에는 화장실이 두개는 넘게 있을 것이다. 

이런 집이 부잣집이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궁금해지면 친구한테 슬쩍 물어본다. 대놓고 집에 대해 물어보면 내 상상이 들킬까봐 쑥스럽다. 친구가 무심히 대답한다. 대문, 마당, 2층… 내 상상이 대략 들어맞는다. 하지만 친구는 쑥스러운 듯 집 이야기를 더는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아파트에 살고 싶다고 한다. 왜 이 친구는 아파트에 살고 싶을까. 어렸던 난 이해할 수 없었다.

한 집일까 두 집일까. 대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런저런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사진=오상민 작가]
한 집일까 두 집일까. 대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런저런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사진=오상민 작가]

# 층간소음생산자 탄생 = 지금 나는 건축사사무소 대표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건축 관련 일을 하면서 잡지책에 나오는 잘 설계된 집들을 봐왔다. 하지만 내가 살 단독주택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언젠가 내가 살 집은 내가 설계하겠지’ 정도의 가벼운 의무감만 갖고 있었다. 살고 있는 아파트가 편리하고 쾌적해 딱히 주택으로 이사갈 만한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생명이 태어나고, 몸을 뒤집지도 못하던 아기가 배로 기어가고, 두 발로 걷고, 온 체중을 실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층간소음생산자’가 내 삶에 등장하면서 대문 안 단독주택을 다시 상상하게 됐던 거다. 이번에는 친구집이 아니다. ‘미래의 내 집’이다.

골목길에 살짝 열린 대문이 보인다. 대문은 안과 밖을 구분시키지만 때론 연결시켜주는 존재다. [사진=오상민 작가]
골목길에 살짝 열린 대문이 보인다. 대문은 안과 밖을 구분시키지만 때론 연결시켜주는 존재다. [사진=오상민 작가]

# 대문 안 집의 상상❷ = 명색이 건축사 아닌가. 이제 어렸을 적처럼 터무니없는 상상은 재미없다. 현실이 될 법한, 최소 기준 정도는 되는 상상을 펼친다. 자금이 넉넉지 않으니, 내가 구할 수 있을 정도의 땅은 경사가 있는 언덕 위 꼭대기, 조그맣고 삐뚤빼뚤한 땅일 가능성이 높다. 

땅콩주택처럼 작은 건 싫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땅콩도 크다. 좁쌀이나 수수주택… 그것도 불가능할 것 같다. 힘이 빠지지만 그래도 상상이니 땅콩주택 정도로 가정하고 상상을 이어가본다.

첫번째는 집과 사무실을 합치되 분리하는 구조다. 맨 아래층은 내 사무실이다. 출입구를 경사 낮은 곳에 둔다. 그 위층부터가 집이다. 경사 높은 부분에 대문을 배치한다. 경사를 이용해 각층을 따로 진입하도록 한다. 진입구가 다른 건 사무공간과 집을 분리하기 위해서다.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대문을 지키는 사자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대문을 지키는 사자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아래위에 있지만 출입구를 따로 만들어야 공간이 분리되고, 시선이 겹치지 않는다. 집과 사무실이 아래위에 있어 출근시간이 없다. 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 필요할 때 아내·아이들과 더 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두번째 상상은 작은 마당과 비가 들이치지 않는 툇마루, 넓은 현관의 조합이다. 때론 카페처럼, 때론 놀이터처럼 집과 마당을 경계 없이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현관은 실내도, 실외도 되고, 마당과 연결되기도 분리되기도 했으면 좋겠다. 비오는 날 마당 옆 툇마루에 앉아 아내와 아이들과 수다를 한바탕 떨면서 재잘거리면 행복할 것 같다.

더 많은 상상이 있지만, 이 정도면 내 공간으로 충분하다. 나머지 공간엔 아내와 아이들의 상상을 더했으면 좋겠다. 이런 나와 아내, 아이들의 상상이 작고 단단한 내 집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물론 그 경계엔 우리집 대문이 있을 것이다. 상상만으로 설렌다. 

파란 하늘색을 닮은 대문. 언젠가 주택을 짓는다면 대문은 어떤 색이 어울릴까 혼자만의 생각을 해본다. [사진=오상민 작가]
파란 하늘색을 닮은 대문. 언젠가 주택을 짓는다면 대문은 어떤 색이 어울릴까 혼자만의 생각을 해본다. [사진=오상민 작가]

# 상상 끝 다시 현실 = 어릴 때 친구집을 그리던 내 상상의 끝엔 친구의 반전고백이 있었다. “나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어.” 지금 내가 그리는 우리 집의 상상의 끝엔 ‘돈’이 있다. 토지비, 건축비, 거주비(공사기간), 부동산비, 세금 등 집을 짓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 고구마 줄기 따라오듯 줄줄이 이어진다. 여기에 (내가 직접 하겠지만) 설계비, 감리비, 공사기간 다른 일을 못하는 데서 기인하는 기회비용까지 생각하면 이게 돈을 버는 것인지 쓰는 것인지 헷갈린다. 

결국 돈 생각에 상상은 현실이 되고 나는 ‘아직 급하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도피해 버린다. 어렸을 때 부자친구집에 대한 상상이 비현실적이었는데, 내 돈으로 내 집을 짓는 게 더 비현실적이다. 심지어 난 건축가다. 언제쯤 내 집을 지을 수 있을까. 대문 안 ‘부잣집’ ‘남의 집’ 말고, 대문 안 ‘내 집’ 말이다. 그렇게 나는 아내와 함께 대문 안 우리 집을 상상해본다.

글 = 박용준 보통사람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opa.lab.02064@gmail.com 

사진 = 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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