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백화점 붕괴의 위험요인

대구 동성로 한복판에서 52년간 자리를 지켜온 대구백화점 본점이 7월부터 문을 닫는다. 휴점이라고는 하지만 대구백화점이 수년째 실적 부진을 이어온 것을 감안하면 재개장은 쉽지 않을 듯하다. 대구백화점은 지역 대표 백화점으로서 꿋꿋이 버텨온 곳인 만큼, 이곳의 휴점 소식은 충격을 줬다. 이미 전국 곳곳의 지역백화점은 사라졌거나, 백화점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들은 왜 무너지고 있는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그 답을 찾아봤다. 

전국의 지역백화점은 문을 닫거나 아울렛·할인점으로 바뀌었다. 사진은 2017년 대구백화점 본점 앞에서 열린 ‘대구 미소 친절의 날’ 행사 모습. [사진=뉴시스]
전국의 지역백화점은 문을 닫거나 아울렛·할인점으로 바뀌었다. 사진은 2017년 대구백화점 본점 앞에서 열린 ‘대구 미소 친절의 날’ 행사 모습. [사진=뉴시스]

‘대구 토종 백화점’ 대구백화점의 본점이 7월 1일자로 휴점한다. 재개장 여부는 알 수 없다. 1969년 개장한 후 52년간 대구의 번화가 동성로 한복판에서 터줏대감 역할을 해왔던 대구백화점 본점이 기약 없이 문을 닫은 셈이다. 이 소식을 접한 지역에서도 충격이 컸다. 대구백화점 본점은 대구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방문했을 만큼 상징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대구백화점의 휴점이 안타까운 이유는 또 있다. 지역 대표 백화점으로서 드물게 위상을 지켜온 곳이라서다. 대구백화점은 1988년 코스피시장에 상장하고 한때 연매출 4000억~5000억원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3년 이후 매출 감소세가 두드러졌고, 2016년부턴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섰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2020년에는 매출 1000억원 선도 무너졌다. 대구의 랜드마크란 상징성도 갈수록 치열해지는 유통업체 간 경쟁과 코로나19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는 얘기다.[※참고: 대구에는 또다른 지역백화점인 동아백화점(1972년 화성산업이 설립)이 있지만 2010년 이랜드리테일에 매각됐다. 동아백화점 본점은 2020년 폐점했다.] 

대구백화점 휴업에 숨은 함의는 무척 크다. 대구백화점이 지역백화점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서다. 사실 전국 곳곳의 지역백화점이 무너진 지는 오래다. 그나마 살아남은 지역백화점 대부분은 아울렛이나 할인점 형태로 연명하고 있다. 지역백화점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부터다. 1980년대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백화점도 호황을 누렸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진 이후엔 지역백화점이 먼저 위기를 겪었다. 

 

부산에선 1997년에만 유나·태화·미화당·세원·신세화백화점 등 무려 5개 백화점이 폐점하거나 부도를 냈다. 전남도 마찬가지였다. 광주의 화니백화점은 1997년 부도가 난 뒤 1999년 문을 닫았고, 1986년 개점한 가든백화점은 1998년 부도가 나며 의류 쇼핑몰 ‘이프유’로 재개장했지만 2010년 끝내 폐점했다. 1995년 문을 연 송원백화점은 3년 만에 현대백화점에 넘어갔다. 

그렇다면 지역백화점이 맥없이 무너지는 이유는 뭘까. 지역경제가 침체했기 때문일까. 물론 그 이유가 있긴 하다. 서용구 숙명여대(경영학) 교수는 “수도권에 구매력의 50~70%가 몰려있는 상황”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젊은층이 지역을 떠나면서 객단가 높은 고객까지 빠져나갔다. 구매력이 있는 소비자는 서울이나 해외에서 돈을 쓴다.”

급격한 유통환경 변화에 휘청

하지만 지역경제 침체는 지역백화점 붕괴의 숱한 이유 중 하나일 뿐이다. 지역경제 때문이라면 지역백화점 자리에 둥지를 튼 대기업 백화점도 문을 닫았어야 한다. 그럼 뭘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대기업·서울 기반 백화점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 지역백화점이 흥했다 사라진 자리를 보면 롯데·신세계·현대 등 대기업 백화점이 들어서 있다.

이들은 같은 상권에 지점을 내거나 부도가 난 지역백화점을 사들이며 지역에 진출했다. 일례로 1990년대 초까지 호황을 누리던 부산의 지역백화점들은 1995년 현대백화점과 롯데백화점이 부산에 진출하자마자 점유율의 절반 이상을 뺏기며 빠르게 쇠퇴했다(부산향토문화백과).

 

지역백화점이 유통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버티지 못한 것도 붕괴의 또다른 이유다. 온라인 쇼핑이 발달하면서 ‘쇼핑 트렌드’가 급변할 때 지역백화점은 발 빠르게 변신을 꾀하지 못했다. 허약한 자본력 탓이었다. 박주영 숭실대(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이렇게 꼬집었다.

“소비자들은 백화점에 가지 않아도 질 좋은 제품을 앉아서 살 수 있게 됐다. 해외직구의 보편화로 저렴하게 해외 명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이후 자본력을 갖춘 기업들은 전통적인 백화점의 형태에서 벗어나 대형매장을 만들거나 각종 체험시설·문화시설로 무장하는 등 변신을 꾀했다. 하지만 지역백화점에는 온라인몰을 키울 만한 인프라도 없고, 백화점의 형태를 뒤바꿀 만한 자금의 여력도 없었다.”

[※참고: 사실 이 부분에선 ‘머니게임’의 폐해를 지적해야 한다. 지역백화점이 온라인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다. 소비 행태의 변화로 백화점의 수익원이 면세점과 명품으로 좁아졌는데, ‘바잉 파워’가 약한 지역백화점으로선 대기업 백화점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박 교수는 “현재 백화점의 수입원은 면세점과 명품인데, 이건 대기업 백화점만이 가질 수 있다”며 “그들끼리도 명품 브랜드를 유치할 때 갖은 애를 쓰는데, 지역백화점이 어떻게 명품을 끌어 오겠나”라고 지적했다.] 

눈 높고 충성심 없는 MZ세대


지역백화점이 무너진 이유는 또 있다. 지역백화점이 신新소비층인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유혹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서용구 교수는 “젊은 층은 지역백화점을 ‘어머니가 쇼핑하시는 곳’으로 인지하지, 자신이 소비할 곳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며 “가뜩이나 백화점을 향한 기대치가 높은 MZ세대에게 지역백화점은 매력적인 채널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정보력이 좋고 눈이 높은 MZ세대는 지역백화점에 충성심이 없다. [사진=연합뉴스]
정보력이 좋고 눈이 높은 MZ세대는 지역백화점에 충성심이 없다.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지역백화점이 무너진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다른 문제도 짚어봐야 한다. 자본력이나 유통망에서 대기업에 밀릴 수밖에 없는 지역백화점을 ‘지역경제 육성’ 차원에서 보호할 순 없었느냐는 거다. 이는 백화점과 전통시장의 ‘상생’과는 다른 문제다. 지역백화점이 지역민을 위해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지역 내 업체와 협업하는 역할도 할 수 있어서다.

유통컨설팅업체 김앤커머스의 김영호 대표는 지자체의 역량 부족을 문제로 꼽았다. “지역경제가 어려우면 당연히 지역민의 소비가 줄어든다. 부자들은 굳이 지역 안에서 돈을 쓰진 않는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중앙정부에만 의존할 뿐, 전문성을 가지고 지역경제를 살릴 노력을 하지 않는다. 지역 기반 업체들이 없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지역에 터줏대감이 사라진 자리엔 ‘돈 많은 대기업’이 들어섰다. 지역적 특색은 사라질 거고, 그 사이에서 상생의 고리가 약해질 공산도 크다. 지역백화점의 붕괴를 단순하게 바라봐선 안 되는 이유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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