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된 백화점 3사 덩치게임
잃어버린 10년 극복할까
더현대 서울 열풍 그 이면

‘럭셔리 쇼핑’의 대명사 백화점. 2000년대 초반까지 승승장구하던 백화점은 최근 수년간 ‘굴욕’을 맛봐야 했다. 백화점에서 옷 사고 구두 사던 사람들이 가성비 좋은 다른 유통채널을 이용하거나 ‘온라인’을 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12년부터 이어진 백화점의 침체기를 두고 업계 사람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그랬던 백화점이 최근 ‘변신’을 꾀하고 있다. 지난 2월 문을 연 ‘더현대 서울’이 그 신호탄이다. 

더현대 서울은 백화점만이 선보일 수 있는 넓은 공간, 명품 라인업, 화려한 디스플레이, MZ세대를 유혹할 만한 맛집과 편집숍 등을 내세워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하고 있다. 백화점의 침체를 백화점스럽게 탈출하겠다는 속셈인데, 이런 전략은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도 사용할 전망이다. ‘덩치게임’을 시작한 백화점의 전략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백화점의 반격과 풀지 못한 숙제를 취재했다. 

‘더현대 서울’이 화제 속에 문을 연 가운데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도 올해 신규 백화점 개점을 앞두고 있다.[사진=뉴시스]
‘더현대 서울’이 화제 속에 문을 연 가운데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도 올해 신규 백화점 개점을 앞두고 있다.[사진=뉴시스]

여의도가 ‘보물섬’이라도 된 듯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현대백화점이 2월 26일 문을 연 ‘더현대 서울’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구름 같은 대열에 합류해 찾아간 더현대 서울은 ‘그동안 없던’ 백화점임은 분명했다. 1층 입구부터 널찍하게 펼쳐진 통로와 6층까지 뻥 뚫린 천장은 ‘실내’라는 갑갑함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12m 높이에서 떨어지는 인공폭포, 매장 곳곳에 심어 놓은 나무들, 5층에 자리 잡은 3350㎡(약 1000평) 규모의 휴식 공간 ‘사운즈 포레스트’도 시원했다. 

지하 1~2층엔 온갖 ‘맛집’과 ‘핫플레이스’가 들어서 있었다. MZ(밀리니얼ㆍZ)세대를 타깃으로 한 스니커즈 리셀숍은 눈길을 끌었고, 국내 최초로 문을 연 유명 SPA 브랜드 매장에 들어가려면 경쟁자 100명쯤은 따돌려야 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오프라인으로 승부수를 거는 게 가능할까’라는 생각 대신 ‘어쩌면 백화점의 반격이 더현대 서울에서 시작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호기심이 스쳤다. 

비단 기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소비자 반응도 뜨거웠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코로나19가 끝난 줄 알았다’ ‘주차난에 택시 타고 가는 걸 추천한다’…. 각종 SNS에선 더현대 서울이 이슈로 떠올랐다. 인스타그램엔 개점 1주일 만에 관련 게시물이 2만개나 업로드됐다. 미디어도 호평일색이었다. “잭팟이 터졌다” “더현대 서울 가서 쉬고 오자” “정지선(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야심작이 통했다” 등을 헤드라인으로 내세운 기사가 속속 올라왔다. 

더현대 서울의 초반 흥행을 눈여겨보는 건 경쟁사들도 마찬가지다.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도 올해 ‘초대형 백화점’의 신규 출점을 앞두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더현대 서울이 ‘서울 최대 규모 백화점’ 자리를 꿰찼다면, 롯데백화점은 조만간 ‘경기도 최대 규모(9만3958㎡ㆍ약 2만8400평) 백화점’을 선보인다.

오는 6월 경기도 화성에 문을 여는 동탄점으로, 롯데백화점이 2014년 이후 처음 선보이는 백화점이다. 롯데백화점 측은 “쾌적하게 개방된 새로운 백화점을 구현할 계획이다”면서 “복합문화 공간, 개방형 명품관, 테라스 파크 등을 도입한 랜드마크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세계백화점은 오는 8월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 부지에 대전신세계 엑스포점을 연다. 백화점뿐만 아니라 호텔·과학시설·전망대 등을 갖춘 신세계 사이언스파크로 구축된다. 이들을 아우르는 면적은 28만3466㎡(약 8만5700평)에 달한다. 신세계백화점 측은 “상징성이 있는 대전 엑스포 부지에 지어지는 만큼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시설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 지점엔 풀기 힘든 의문이 하나 있다. 대형마트·SSM(기업형슈퍼마켓)·편의점 등 다른 유통채널에 ‘왕좌’ 자리를 빼앗긴 지 오래인 백화점이 왜 느닷없이 덩치를 키우느냐다. 오프라인이 침체기에 접어든 지금, 가뜩이나 오프라인 매장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코로나19 국면인데 말이다. 이 의문을 풀기 전에 백화점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살펴보자.

사실 백화점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2000년대 중반까지 고속성장을 하면서 전성기를 누린 백화점은 최근 수년간 굴욕을 맛봐야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훨씬 전에 빠져든 성장 정체기도 극복하지 못했다. 백화점 시장 규모(매출액 기준)는 2012년 이후 29조원 안팎을 맴돌고 있다. 

특히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온라인 쇼핑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유통시장에서 백화점(이하 신세계ㆍ롯데ㆍ현대백화점 3사 기준)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6년 22.9%에서 2020년 15.2%로 쪼그라들었다. 코로나19 국면에선 편의점(GS25ㆍCUㆍ세븐일레븐 3사)의 점유율(2020년 16.6%)에도 밀렸다. 

그나마 백화점의 체면을 살려준 건 ‘명품’이었다. 백화점 매출을 이끌던 여성캐주얼ㆍ잡화 등의 비중이 감소한 반면 명품 매출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지난해 백화점 전체 매출 중 명품이 차지한 비중은 30%에 달했다. “양극화가 백화점을 살렸다”는 웃지 못할 분석이 나돈 이유다. 

더현대 서울은 영업공간을 줄이고 휴식공간을 늘렸다.[사진=연합뉴스]
더현대 서울은 영업공간을 줄이고 휴식공간을 늘렸다.[사진=연합뉴스]

실제로 백화점들은 여전히 ‘명품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롯데백화점 동탄점(6월 개점)이 소득 수준이 높은 ‘동탄맘’을 주요 타깃으로 삼은 건 대표적 사례다. 이런 흐름을 살펴보면 백화점이 ‘덩치싸움’을 시작한 이유를 찾아낼 수 있다.

백화점만이 만들 수 있는 넓은 공간, 명품 라인업, MZ세대를 유혹하는 맛집과 편집숍 등을 내세워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하겠다는 거다. 백화점의 위기를 백화점답게 탈출하겠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백화점의 반격은 성공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백화점이 변신을 시도했다는 데는 긍정적 평가가 많다. 정연승 단국대(경영학ㆍ유통학회장)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최근 개점하는 백화점은 전통적인 형태의 백화점과는 다르다. 구조나 동선이 몰(mall)과 유사해 다양한 콘텐츠와 휴식 공간을 갖추고 있다. 온라인 시장이 확장하는 가운데 오프라인으로 고객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반론도 많다. 무엇보다 ‘백화점스러움’을 내세운 오프라인 전략이 소비의 중심축으로 떠오른 MZ세대를 유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들은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을 즐기면서도 온라인에서의 합리적 구매를 추구한다. 그래서 백화점의 맛집·편집숍 등을 찾은 MZ세대가 정작 의류나 잡화에서 ‘큰 소비’를 할지는 점치기 어렵다. 쉽게 말해 구매 연계가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이 맛집 등에 대규모 공간을 할애하는 건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다른 제품도 구매하는 구매 연계효과를 기대해서다”면서 “하지만 똑똑한 MZ세대는 ‘그런 소비’를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백화점에서 ‘밥만 먹고 가는’ 이들이 숱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더구나 백화점이 MZ세대의 빠른 트렌드 변화를 좇기도 쉽지 않다. 덩치가 큰 만큼 MZ세대의 자유분방한 기호에 따라 자유자재로 몸을 바꾸기가 쉽지 않아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은 팝업 스토어나 부분 리뉴얼 등을 통해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덩치가 워낙 커서 매장 구성 자체를 시시때때로 바꾸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백화점의 높은 ‘명품 의존도’가 양날의 검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명품 브랜드가 백화점 매출을 끌어올릴 순 있지만 수익성엔 큰 도움을 주지 못해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의 경우 백화점에 지불하는 수수료가 9%(매출액 대비) 안팎으로 일반 패션ㆍ잡화(30%대)보다 낮다”면서 “결국 수수료율이 높은 패션ㆍ잡화 브랜드 매출이 늘어야 백화점 수익성이 좋아지는데 현재로선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에 온라인에 올라타려는 명품 브랜드가 부쩍 늘어났다는 점도 백화점엔 불안 요소다. ‘루이뷔통’ ‘펜디’ ‘셀린느’ 등을 보유한 LVMH그룹이 자체 온라인몰 ‘24S(2017년)’을 론칭한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9년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한 24S는 35만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을 제공하고 있다. 

백화점이 아니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국내외 명품 구매 사이트가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참고: 온라인 명품 쇼핑업체 머스트잇이 2020년 11월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1년간 명품 소비자 중 49.0%가 온라인에서 명품을 구입했다.] 

이런 변수들을 감안했을 때 ‘인구 증가’와 ‘소득 증대’ 등을 통해 전체 시장이 확대되지 않는 한 ‘백화점의 부활’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유통업계 안팎에서 “백화점이 규모를 키우는 건 성장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경쟁사에 점유율을 뺏기지 않기 위한 ‘고육책’에 불과하다”는 자조 섞인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양세정 상명대(소비자경제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휴식이나 체험 공간을 확대하는 백화점의 변화는 1~2년 전부터 시작해 왔다. 그 변화를 본격적으로 시도한 게 더현대 서울인데,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소비심리가 폭발하면서 더 큰 이슈가 되고 있다고 본다. 이런 백화점의 변신이 이미지 제고 이상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온라인 플랫폼으로의 연계 등이 이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론칭 전부터 어마어마한 덩치로 화제를 모았던 더현대 서울은 어쨌거나 초반 돌풍을 일으키는 덴 성공했다. 더 큰 백화점을 론칭할 준비를 하고 있는 롯데와 신세계에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줬을 게 분명하다. 백화점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건데, 그들이 풀지 못한 과제도 숱하다. 백화점은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