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에 인수된 K-뷰티 브랜드
높은 기업가치 평가 받았지만…
K-뷰티 거품론 확산 우려 적지 않아

세계 화장품 시장을 주무르는 글로벌 기업들이 K-뷰티 기업에 러브콜을 보냈다. 아시아 시장에서 K-뷰티 붐이 한창이던 2017~2019년의 일이다. ‘홈쇼핑 아이크림’으로 유명한 카버코리아부터 피부과 전문의와 만든 화장품 ‘닥터자르트’로 인지도를 높인 해브앤비까지 수조원대에 글로벌 기업에 인수됐다. 특히 스타일난다의 ‘3CE’는 세계 화장품 업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문제는 그들의 현주소가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2017년부터 카버코리아를 필두로 스타일난다, 해브앤비가 글로벌 기업에 인수됐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17년부터 카버코리아를 필두로 스타일난다, 해브앤비가 글로벌 기업에 인수됐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17년 ‘카버코리아(AHC·이하 대표 브랜드)’, 2018년 ‘스타일난다(3CE)’, 2019년 ‘해브앤비(닥터자르트)’…. 글로벌 화장품의 품에 안긴 ‘K-뷰티’ 스타트업들이다. 
모두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액수로 글로벌 기업에 인수되면서 K-뷰티의 성공신화로 불렸다.[※참고: 패션 브랜드 ‘스타일난다’를 운영하는 ‘난다’는 2009년 화장품 브랜드 ‘3CE’를 론칭했다. 기사에선 편의상 난다를 스타일난다로 기재했다.] 

신호탄을 쏘아올린 건 카버코리아였다. 2017년 ‘홈쇼핑 아이크림’으로 이름을 날린 카버코리아는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에 22억7000만 유로(약 3조원)에 인수됐다. ‘역대급 딜’이라고 불릴 만큼 국내 화장품 업계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이었다. 

이듬해엔 색조 화장품 브랜드 ‘3CE(쓰리컨셉아이즈)’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스타일난다가 글로벌 화장품 1위 기업 로레알그룹에 인수됐다. 로레알그룹은 스타일난다의 지분 100%를 6000억원대에 사들였다. 

국내 ‘더마 화장품(dermatology cosme tic·피부과학화장품)’ 시장을 연 해브앤비도 2019년 에스티로더(에스티로더 컴퍼니즈)에 인수됐다. 인수금액이 17억 달러(약 2조원)에 달한 데다 에스티로더의 첫 아시아 화장품 브랜드 M&A 사례로 이슈가 됐다. 

“세계가 탐내는 K-뷰티” “세계는 왜 K-뷰티에 반했나” “글로벌 대세가 된 K-뷰티”…. 각종 미디어는 K-뷰티 찬사를 쏟아냈다. ‘제2의 카버코리아’ ‘제2의 스타일난다’를 꿈꾸는 화장품 기업도 숱하게 많았다. 사실 글로벌 기업들이 K-뷰티 기업에 ‘러브콜’을 보낸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K-뷰티 브랜드를 발판 삼아 떠오르는 아시아 시장을 잡기 위해서였다. 

컨설팅그룹 리치24H(REACH24H) 코리아 손성민 지사장의 말을 들어보자. “당시 글로벌 화장품 기업의 아시아 매출이 50%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아시아 시장이 그만큼 중요해진 건데, 기존 자사 제품으로는 시장을 확대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인기를 끄는 K-뷰티 브랜드에 관심을 두는 글로벌 기업이 증가했다. 때마침 카버코리아가 매물로 나오자 유니레버가 인수했다. 이를 기점으로 K-뷰티 브랜드를 인수하는 붐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2년, 글로벌 기업에 인수된 K-뷰티 브랜드들은 성공 신화를 이어가고 있을까. ‘그때 그 주역’들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특히 로레알그룹과 에스티로더가 지난해 ‘유상감자(주식 수를 줄이고 그만큼을 주주에게 보상)’ 방식으로 사실상 투자금 일부를 회수한 건 좋은 시그널이 아니다. 로레알그룹은 감자 대가로 스타일난다로부터 1326억원을 회수했다. 에스티로더 역시 해브앤비로부터 2207억원을 받았다. 

카버코리아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모기업인 유니레버가 카버코리아를 다시 파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끊이지 않아서다. 소문의 근원지는 유니레버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그래임 피케틀리(Graeme Pitkethly)의 발언이다.

높은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던 K-뷰티 브랜드들의 실적이 악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높은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던 K-뷰티 브랜드들의 실적이 악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해 10월 로이터 통신은 그래임 피케틀리 CFO의 발언을 바탕으로 “유니레버가 소규모 화장품·생활용품 브랜드를 매각하는 등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는데, 업계에선 유니레버에 인수된 후 실적 감소세를 겪어온 카버코리아가 매각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수조원대 가치를 인정받았던 K-뷰티 브랜드의 위세가 한풀 꺾인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실적이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스타일난다의 매출액은 2564억원으로 전년(2695억원) 대비 4.8%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8.3%(618억원→443억원)나 쪼그라들었다.[※참고: 스타일난다는 2018년 12월 중국 내 패션ㆍ화장품 사업권ㆍ상표권 등을 로레알그룹에 넘겼다.] 

해브앤비의 매출액과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각각 27.4%(6072억→4408억원), 53.2% (1239억원→579억원) 감소했다. 2018년 실적의 ‘정점’을 찍은 카버코리아도 침체를 피하지 못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액 4643억원과 영업이익 864억원을 기록했는데, 전년 대비 각각 23.6%, 27.4% 줄어든 수치였다. 

물론 코로나19 여파로 화장품 시장이 위축되면서 실적 악화를 피하지 못한 영향이 크다. 하지만 코로나19에서만 그 이유를 찾긴 어렵다. 이들 업체의 주요 타깃인 중국의 화장품 시장은 코로나19 국면에서도 성장세(2019년 2992억 위안→2020년 3400억 위안ㆍ성장률 9.5%)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특히 화장품 수입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31.1%나 증가했다. 

이는 한때 글로벌 기업을 홀렸던 카버코리아, 스타일난다, 해브앤비가 성장일로를 걷고 있는 중국에서 통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이들 K-뷰티 브랜드들이 ‘비싼 몸값’에 걸맞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갖추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트렌디함’ ‘가성비’ 등은 갖췄지만 소비자의 선택을 지속해서 받을 만한 제품을 개발하는 덴 실패했다는 거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K-뷰티 브랜드의 지속 성장을 위해선 원천적인 피부과학 기술개발 등을 통해 제품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손성민 지사장은 “세 브랜드 모두 성장률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K-뷰티의 강점인 독창성을 지켜가면서 환경·효능·기능성·안정성 등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김주덕 성신여대(뷰티산업학)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내비쳤다. “K-뷰티 브랜드들은 독특하고 트렌디함을 내세워 성장해 왔다. 하지만 고도의 피부과학 기술을 갖춘 제품이 아니라면 중국의 로컬 브랜드 등에 금세 따라잡힐 수밖에 없다. 실제로 중국 젊은층은 자국 문화에 자부심이 높고 이는 로컬 브랜드를 향한 충성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차별화한 프리미엄 제품 개발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로벌 기업이 호들갑을 떨며 인수했던 K-뷰티 기업의 침체가 올해에도 이어진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그 M&A 결과가 ‘그저 그런’ 수준에 그친다면, K-뷰티에 거품이 꼈다는 인식을 시장에 줄 수 있어서다. 김주덕 교수는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던 K-뷰티 기업들이 그에 걸맞은 실적을 내지 못한다면, 과대평가됐다는 인식을 남길 우려가 있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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