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청 반박과 더스쿠프 재반박
특허경쟁력 상승 조심스럽다던 특허청
6일 후 발표한 보도자료에서는 말 바꿔
표준특허 개수와 경쟁력은 별개의 문제

“지난해 삼성전자가 2500여개의 표준특허를 한번에 등록하면서 우리나라 표준특허 수가 갑작스럽게 늘어났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그만큼 높아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 더스쿠프가 표준특허 취재를 하던 5월 4일 특허청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더스쿠프는 삼성전자가 2500여개의 표준특허를 등록한 공동기술위원회 ‘ISO/IEC JTC1’의 통계를 제외한 3대 국제표준화기구(ISOㆍIECㆍITU) 기준으로 우리나라 표준특허의 현주소를 점검하면서 ‘한국 표준특허, 미국은 고사하고 일본의 ‘4분의 1’ 수준’이란 제목의 기사를 작성했다. 

그랬더니 특허청이 갑자기 “삼성전자도 우리 기업이며, 우리나라의 기술경쟁력이 높아졌다고 봐야 한다”는 내용의 반박자료를 냈다. 하지만 애초에 “삼성전자의 표준특허를 통해 우리나라 기술경쟁력의 상승을 단언하긴 어렵다”고 말한 건 특허청이었다. 특허청이 말을 번복한 이유는 뭘까. 특허청의 반박을 더스쿠프(The SCOOP)가 재반박했다. 

2500여개 표준특허를 쏟아낸 삼성전자 효과를 단언하기가 조심스럽다던 특허청은 6일 만에 말을 바꿨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2500여개 표준특허를 쏟아낸 삼성전자 효과를 단언하기가 조심스럽다던 특허청은 6일 만에 말을 바꿨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5월 4일 오후 1시 41분

더스쿠프 : “우리나라 표준특허 경쟁력의 현위치를 파악하려고 한다. 3대 국제표준화기구에 등록된 국가별 표준특허 통계자료를 원한다.” 

특허청 : “통계자료를 줘도 되는지 확인해보겠다. 다만, 표준특허 통계를 볼 때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2500여개의 표준특허를 한번에 등록하면서 우리나라 표준특허 수가 갑작스럽게 늘어난 측면이 있다. 이를 근거로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그만큼 높아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

지난 5월 4일 오후 1시께 더스쿠프가 특허청과 유선상 나눈 대화다. 요청한 자료는 2시반쯤 전달받았다. 그로부터 2시간 뒤 특허청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 5월 4일 오후 4시 39분

특허청 : “기사에 통계자료가 쓰이나.”
더스쿠프 : “말씀드렸듯 통계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표준특허 경쟁력의 현주소를 다루려고 한다.”
특허청 : “기사가 언제쯤 나가나.”
더스쿠프 : “다음주 화요일(11일)이나 수요일(12일)쯤 나갈 예정이다.”
특허청 : “기사를 안 내면 안 되겠나. 위에서 원하지 않는 것 같다.”

그로부터 6일 뒤인 5월 10일 특허청은 ‘한국 3대 국제표준화기구가 선언한 표준특허 세계 1위’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골자는 이렇다. “우리나라 표준특허 수가 2016년 대비 6.4배 증가해 세계 1위에 올랐다. 이는 우리 기업의 표준 경쟁력이 강화됐다는 걸 의미한다.”

보도자료가 나오기 전 특허청 관계자가 ‘언제 나오느냐’고 물어본 기사는 5월 10일 발간된 더스쿠프 통권 440호에 ‘미국은 고사하고 일본의 ‘4분의 1’ 수준’이란 제목으로 실렸다. 더스쿠프는 이 기사에서 삼성전자가 2500여개의 표준특허를 등록한 공동기술위원회 ‘ISO/IEC JTC1’의 통계를 제외한 3대 국제표준화기구(ISOㆍIECㆍITU) 기준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의 표준특허 수 순위는 6위에 그친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나아가 표준특허와 특허가 일부 기업에 편중돼 있다는 것이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삼성전자가 2500여개의 표준특허를 등록한 공동기술위원회 ‘ISO/IEC JTC1’의 통계를 제외한 덴 특허청 관계자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신중하게 판단한 결과였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2500여개의 표준특허를 한번에 등록하면서 우리나라 표준특허 수가 갑작스럽게 늘어났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높아졌다고 보긴 어려울 수 있다.”

더스쿠프가 취재한 전문가들 역시 같은 입장을 취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장은 “삼성전자 등 소수기업에 표준특허가 편중돼 있다는 건, 기술적 역량도 소수기업에 몰려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우려할 만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특허청은 더스쿠프 오프라인이 발행된 날인 5월 10일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 3대 국제표준화기구가 선언한 표준특허 세계 1위’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삼성전자 덕분에 특허수가 갑자기 늘어난 것을 우리 경쟁력의 상승으로 단언하기 어렵다”면서 특허청 스스로 밝혔던 우려를 ‘다르게 포장해서’ 발표한 셈이다. 그래서 더스쿠프는 5월 12일 기존 내용에 특허청의 난데없는 발표자료를 덧붙인 ‘“표준특허 보유수 1위” 특허청 발표의 이면과 진실’이란 제목의 기사를 온라인에 표출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특허청은 지난 14일 이 온라인 기사를 반박하는 설명자료를 냈다. 특허청이 반박한 지점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ISO/IEC JTC1은 ISO와 IEC 산하의 공동기술위원회이기 때문에 표준특허 통계도 포함해서 봐야 한다”는 점이다. ISOㆍIECㆍITU 표준특허 현황에 ISO/IEC JTC1에 등록된 표준특허를 합산하면 우리나라의 표준특허 수는 391개(세계 6위)에서 3344개(세계 1위)로 증가한다.

둘째 반론은 “삼성전자도 우리나라 기업이므로, 삼성전자의 표준특허 경쟁력은 우리나라의 기술경쟁력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는 거다. 아울러 특허청은 표준특허 상위권인 다른 국가들도 일부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에 표준특허가 편중돼 있는 게 문제 될 게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삼성전자가 쏟아낸 표준특허를 통해 우리나라의 기술경쟁력을 섣불리 판가름해선 안 된다’고 설명한 건 특허청이다. 며칠 만에 특허청의 입장이 바뀐 이유는 알 수 없다. 이를 묻는 질문에 특허청 관계자는 “데이터를 산출ㆍ검토하는 단계에서 데이터 추이가 불연속적인 부분이 있어서 단정적으로 말하는 게 조심스럽다고 했던 것”이라면서 “우리나라의 기술경쟁력이 향상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미는 아니었다”면서 말의 뉘앙스를 살짝 바꿨다. 

더스쿠프가 특허청 관계자의 말을 꼬집으려는 건 아니다. 데이터를 산출하는 과정에서 입장을 바꿀 순 있다. “기사를 안 내면 안 되겠나. 위에서 원하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의 진위를 파악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특허청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더라도 문제가 있다.

 

3대 국제표준화기구에 선언된 우리나라 표준특허 중 83.7%는 삼성전자의 특허다.[사진=뉴시스]
3대 국제표준화기구에 선언된 우리나라 표준특허 중 83.7%는 삼성전자의 특허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가 삼성전자의 활약에 힘입어 표준특허 수 1위에 오른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로 인해 우리의 기술경쟁력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 올랐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유는 간단하다. 표준특허가 한 기업에 편중돼 있다는 건 위험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 기술과 국내 산업의 취약한 부분을 가릴 가능성도 높다.

정은미 본부장은 “우리나라의 산업 포트폴리오가 다양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주력 분야가 아닌 곳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데, 그런 부문에서의 리더십은 부족한 편”이라면서 “예컨대 소ㆍ부ㆍ장 등 원천기술의 부족 문제도 마찬가지인데, 보이는 데만 힘을 쏟고 안도하거나 소수기업에 편중된 기술력이 분산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2500여개의 특허를 쏟아낸 것도 정보기술 분야에 국한돼 있다. 

“다른 국가들도 일부 대기업이 표준특허를 주도하고 있다”는 특허청의 주장에도 허점이 있다. 3대 국제표준화기구 기준 표준특허 순위 상위권에 올라있는 국가들을 보자. 표준특허 2위국인 미국(2793개)에서 가장 많은 표준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곳은 애플이다. 3위 핀란드(2579개)에선 노키아, 4위 일본(1939개)에선 NTT의 표준특허 비중이 가장 높다. 이들 기업이 자국에서 차지하는 표준특허 비중은 각각 애플 12.5%, 노키아 99.2%, NTT 12.5%다.

삼성전자가 우리나라에서 차지하는 표준특허 비중은 83.7%로, 삼성전자보다 비중이 높은 곳은 핀란드의 노키아뿐이다. 문제는 국가가 일부 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을 때 리스크가 얼마나 큰지를 노키아가 단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이다. 1990년대 이동통신시장을 장악했던 노키아가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핀란드의 국가 경제도 덩달아 위기를 맞은 바 있어서다. 

 

한발 더 나아가 표준특허 수만으로는 기술경쟁력을 가늠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표준특허의 개수와 표준특허의 가치는 ‘정(+)의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표준특허는 카운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져 개수는 의미가 없다. 특허를 어떻게 쪼개느냐에 따라 개수를 얼마든지 늘릴 수도 있다. 특히 통신 분야는 표준특허가 많다. 표준특허가 많다고 특허 강국이고, 기술경쟁력이 높다는 게 아니란 얘기다. 표준특허 자체의 퀄리티를 따져야 하는데, 얼마나 가치 있고 경쟁력 있는 특허인지 보려면 라이선스 수입을 봐야 한다. 불필요한 특허를 늘리는 건 오히려 기술발전에 독이 될 수 있다.”

특허청의 주장대로 표준특허 수 세계 1위에 오른 우리나라가 기술경쟁력에서도 1위인지는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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