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하나로 떼돈 벌어들인 기업 사례
미국 퀄컴 CDMA로 수조원 매출 올려
LNG화물창 시장 독점한 프랑스 GTT
제니스 인수해 디지털TV 특허 얻은 LG

‘조선 강국’ 한국의 히트상품은 LNG운반선이다. 지난해 세계에서 발주된 LNG운반선 중 73%를 휩쓸었을 정도다. 하지만 LNG운반선을 1척 건조할 때마다 우리는 100억원의 로열티를 프랑스 엔지니어링업체 GTT에 내야 한다. LNG운반선의 저장창고를 설계하는 기술의 표준특허를 GTT가 보유하고 있어서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는 속담 그대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표준특허가 필요한 이유를 사례를 들어 살펴봤다. 

퀄컴은 특허 로열티로만 연간 수조원에 달하는 수익을 냈다.[사진=연합뉴스]
퀄컴은 특허 로열티로만 연간 수조원에 달하는 수익을 냈다.[사진=연합뉴스]

2019년 우리나라가 연구ㆍ개발(R&D)에 쓴 돈만 89조여원이다. 국가 R&D 100조원 시대가 눈앞이란 말인데, 국내총생산(GDP)의 4.6%를 R&D에 쏟아붓고 있으니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다. GDP 대비 R&D 투자 비중으로는 세계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토록 R&D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원천기술이 없다’는 약점을 극복하고 세계를 선도할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쉽게 말해, ‘돈 되는 특허’를 만들어 국가 경제의 원천으로 삼겠다는 거다. 그렇다면 대체 돈 되는 특허란 뭘까. 잘 만든 특허 하나가 어떤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지 살펴보자.

■퀄컴의 CDMA = 대표적인 예는 ‘휴대전화’다. 우리나라가 현재 IT 강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근원적 배경에는 CDMA(부호분할다중접속)가 있다. CDMA는 아날로그 방식의 1세대(1G) 이동통신 서비스를 디지털 방식의 2세대(2G) 이동통신 서비스로 전환한 핵심기술이다. 1996년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011’ ‘017’로 시작하는 휴대전화 번호를 쓰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다. 

혹자는 ‘역시 한국이 통신기술의 강국을 입증한 사례’라고 평할지 모르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다. CDMA의 원천기술은 우리가 아닌 퀄컴이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이 퀄컴의 CDMA 기술을 표준으로 받아들이지 않자 우리나라와 손을 잡은 것뿐이었다. CDMA뿐만이 아니다. 이후에 나온 3G WCDMA와 4G LTE 기술의 특허도 퀄컴에 있었다. 

당연히 우리나라는 퀄컴의 특허기술을 쓰는 대가로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해야 했다. 당시 퀄컴은 전체 매출의 30%가량을 특허 로열티로 벌어들이고 있었는데, 그중 20~30%는 우리나라가 지불한 로열티였다.

금액으로 따져도 만만치 않았다. 2014년 한해에 지불한 돈만 2조원에 육박하니, 1996년부터 지불한 총 로열티 비용은 말할 것도 없다.[※참고: 퀄컴의 나머지 매출 70%는 모뎀칩 판매로 벌어들인 돈이었다. 퀄컴은 2016년까지 모뎀칩 공급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특허로 번 돈은 연간 수십조원에 달했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LNG운반선 1척을 건조할 때마다 프랑스 GTT에 로열티를 100억원씩 지불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내 조선업체들은 LNG운반선 1척을 건조할 때마다 프랑스 GTT에 로열티를 100억원씩 지불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GTT의 LNG 화물창 = 세계 최고 수준의 건조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조선업계도 특허 로열티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LNG운반선 때문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LNG운반선은 국내 조선업계가 가장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선종이라서다. 지난해에도 세계에서 발주된 LNG운반선 중 우리나라가 무려 73%를 수주했다.

문제는 LNG운반선의 저장창고 역할을 하는 ‘LNG 화물창’ 기술이다. LNG는 영하 163도 이하의 극저온 창고에서 보관해야 하는데, 설계기술이 꽤 까다롭다. 그 때문에 아무 기술이나 사용하지 않는다. 1990년대 후반부터 프랑스 엔지니어링업체 GTT의 ‘멤브레인’ 기술이 주로 쓰이고 있는데, 현재는 시장점유율이 95%에 이른다. 국내 조선업체들도 GTT 기술을 쓰고 있다. 

하지만 특허 로열티가 만만찮다는 게 문제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LNG운반선 1척을 건조할 때마다 배값의 5%에 해당하는 100억원가량을 로열티로 지불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ㆍ삼성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 3사가 지난해 인도한 LNG운반선이 35척이었으니, GTT에 지불한 연간 로열티는 3500억원에 이른다. 아울러 남아있는 LNG운반선 수주잔고(2020년말 기준)가 총 139척. 앞으로 최소 1조3900억원의 로열티를 더 지불해야 한다.

물론 국내에 LNG 화물창 기술이 없는 건 아니다. 한국가스공사는 2014년 한국형 LNG 화물창 기술 ‘KC-1’을 완성했고, 국내 조선업체들도 비싼 로열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체 LNG 화물창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현재 이 기술들은 쓰이지 않고 있다. 한번 표준으로 자리 잡은 기술은 웬만해선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거나 새로운 시장이 생겨날 때 원천기술을 선점하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LG전자의 디지털TV = 국내 기업이라고 돈 되는 특허가 없는 건 아니다. LG전자의 디지털TV 기술은 그중 하나다. LG전자는 1995년 파산 위기에 놓인 미국 가전업체 제니스를 5억5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제니스가 가진 디지털TV 원천기술(VSBㆍ미국 디지털TV 전송 방식) 때문이었다. 디지털TV 시장이 활성화하면 쏠쏠한 로열티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LG전자에 인수된 이후 제니스는 실적이 악화 일로를 걷더니 1999년엔 미국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 때문에 제니스는 수년간 혹독한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디지털TV 시장이 개화開花한 2005년에야 빛을 보기 시작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ㆍ멕시코 등에서도 제니스의 원천기술을 표준규격으로 채택했다. 해당 국가에서 TV를 판매하려는 기업들은 제니스에 로열티를 내야 했다는 얘기다. TV 1대당 로열티가 3~5달러가량이었는데, 2009년엔 제니스의 연간 로열티 수익이 1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처럼 양질의 특허 하나만 있으면 앉아서도 돈을 벌 수 있다. 반대로 특허가 없으면 쓸데없는 비용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기술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제조만으로 돈을 벌 수 있던 건  옛날 얘기다. 이젠 ‘돈 되는 특허’가 있어야 산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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