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청 “우리나라 표준특허 세계 1위 올라”
하지만 3대 표준화기구 통계 순위는 달라
미국, 일본, 핀란드에 크게 뒤진 6위에 머물러
표준특허 수, 미국 고사하고 일본의 4분의 1 불과
삼성 등 일부 기업에 특허 편중된 것도 문제

지난 10일 특허청은 3대 국제표준화기구 기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표준특허를 보유한 나라가 됐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의 기술경쟁력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기엔 허수가 많다. 무엇보다 3대 국제표준화기구는 국제표준화기구(ISO),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을 말한다. 3개 기구에 등록된 표준특허만 따져보면 우리나라는 391개로 세계 6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세계 1위라는 숫자는 어디서 온 걸까. ISO와 IEC가 IT분야 표준화 작업을 합동관리 하기 위해 설립한 ‘공동기술 위원회 ISO/IEC JTC1’ 때문이다. 여기에 등록된 표준특허를 더하면 단숨에 우리나라는 표준특허 수 3344개로 세계 1위로 올라선다. 하지만 ISO/IEC JTC1은 ISOㆍIEC와 구분되는 별도 조직이다.

심지어 ISO/IEC JTC1에 등록된 우리나라 표준특허 2953개 중 2500여개는 지난해 말 삼성전자가 쏟아낸 특허다. 국내 표준특허가 일부 기업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는 얘기다. 표준특허 수 세계 1위가 맞다고 하더라도 그게 곧 우리나라의 기술경쟁력이 높아졌다는 걸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에 발표된 우리나라 표준특허 순위는 숫자가 부풀려진 감이 없지 않아 있다”면서 “우리나라 기술경쟁력이 그만큼 높아진 것으로 착각할 수 있는데, 이를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표준특허 세계 1위라는 영광의 이면에 또다른 함의가 숨어있다는 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표준특허 보유수 한국 1위”란 특허청 발표에 숨은 이면과 진실을 취재했다.  

표준특허는 로열티 등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사진=연합뉴스]
표준특허는 로열티 등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사진=연합뉴스]

옆에 스마트폰이 있는가. 유심을 확인해보면, 어떤 스마트폰이든 똑같이 생겼을 거다. 이는 국제표준화기구가 해당 유심을 표준규격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이 표준규격에 맞추기 위해 ‘표준특허’를 적용해 유심 슬롯을 만들고, 이 과정에서 표준특허를 가진 기업은 로열티를 챙긴다. 표준특허를 ‘돈 되는 특허’의 전형이라 말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표준특허 경쟁력은 어느 정도일까.

한해 수십만개의 특허가 쏟아진다. 하지만 특허라고 다 같은 특허가 아니다. ‘돈 되는 특허’는 따로 있다. ‘얼마나 양질의 기술인가’ ‘시장성이 있는가’ 등에 따라서다. 기술무역수지(기술무역수출-기술무역도입)가 만년 적자인 우리나라로선 ‘돈 되는 특허’를 만드는 게 급선무다. 그런 맥락에서 눈여겨봐야 할 게 있다.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표준특허’다.

표준특허란 표준규격이 정해진 제품을 만들 때 필요한 특허를 말한다. 가령, 유럽통신표준화기구(ETSI)가 노키아(핀란드)의 5G 기술을 표준규격으로 지정했다면, 유럽에서 5G 스마트폰을 판매하기 위해선 반드시 노키아 기술을 사용하고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표준특허가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기술ㆍ제품별 규격이 다를 때 생길 혼란을 방지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브랜드별 스마트폰마다 유심(가입자 정보를 담은 칩)이 다르다면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을 공산이 크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표준화기구는 스마트폰 유심의 표준규격을 정한다. 그 이후부터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표준규격에 맞추기 위해 관련 표준특허를 적용해야 한다. 

표준특허의 가장 큰 강점은 시장지배력이 크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5G 스마트폰을 생산ㆍ판매하려면 지정된 표준특허를 반드시 사용해야 해서다. 뒤집어 말하면 표준특허를 통해 안정적이면서도 막대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표준특허를 보유한 A기업이 5G 스마트폰 1대당 3달러(약 3300원)의 로열티를 받는다고 했을 때, 연간 벌어들이는 로열티 수익은 8억1780만 달러다(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 기준 2020년 5G 스마트폰 출하량 2억7260만대). 실제로 특허 전문가들은 “표준특허는 특허분쟁 위험이 낮고 경제적 가치가 높아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면서 “국가 경제와 기업에 매우 중요한 수익의 원천”이라고 설명한다. 

세계 각국과 글로벌 기업들이 표준특허를 차지하기 위해 사활을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장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로열티 수익까지 챙길 수 있어서다. 특히 인공지능(AI)ㆍ사물인터넷(IoT)ㆍ자율주행차 등 새로운 표준규격이 필요한 신산업에서 표준특허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표준특허 경쟁에서 조금 뒤처져 있다. 무엇보다 주요국들과 비교했을 때 수적으로 부족하다. 통계를 보자. 표준특허는 주로 3대 표준화기구인 국제표준화기구(ISO),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 인정된 특허를 기준으로 집계된다.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3대 표준화기구에 등록된 국내 표준특허는 총 391개였다. 미국, 일본, 핀란드, 프랑스, 독일에 이어 6번째로 표준특허가 많았는데, 나쁘지 않은 순위다.[※참고: 국가ㆍ조사기관별로 계수 방법이 달라 자료에 따라 오차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수에선 상당한 차이가 있다. 미국은 1555개, 일본과 핀란드는 각각 1422개로 우리나라(391개)보다 3~4배가량 많았다. 프랑스의 표준특허 수는 우리나라보다 221개 많은 612개였다. 그나마 독일의 표준특허 수가 441개로 우리나라와의 차이가 적었다.

[※참고: 한편에선 우리나라의 표준특허 수가 기준을 달리하면 적지 않다는 반론을 편다. 그 근거는 국제표준화기구(ISO),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가 IT분야 표준화 작업을 합동 관리하기 위해 설립한 ‘공동기술 위원회 ISO/IEC JTC1’에 등록된 표준특허다. 이 통계에선 우리나라가 2953개로 가장 많은 표준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그 이유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삼성전자가 2500여개의 표준특허를 한번에 쏟아내면서 숫자가 부풀려진 감이 없지 않아 있다”면서 “자칫 우리나라 기술경쟁력이 그만큼 높아진 것으로 착각할 수 있는데, 이를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표준특허의 경쟁력이 아쉬운 건 ‘숫자’만이 아니다. 특허가 일부 기업에 편중돼 있다는 점도 약점이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장은 “삼성 등 소수기업이 표준특허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건, 기술적 역량도 소수기업에 편중돼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우려할 만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표준특허만이 아닌 전체 특허 출원에서도 나타나는 문제다. 일례로 지난해 유럽특허청(EPO)에 출원한 기업별 특허 수를 따져보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각각 3276개, 2909개였고, 그다음이 119개의 특허를 출원한 포스코였다. 미국에서도 삼성전자와 LG그룹은 각각 8539개, 5112개의 특허를 등록했고, 현대차와 SK그룹은 1626개, 1091개의 특허를 등록하는 데 그쳤다. 
 
물론 중소기업의 특허등록 실적은 더 초라하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특허 대부분을 소수기업이 보유하고 있다는 건 우리나라의 기술경쟁력이 보이는 것보다 더 나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우리나라는 기술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기술무역수지에서 단 한번도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원천기술이 없어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숱하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이제는 기술력이 곧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다. 기술무역수지를 개선하고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넘어갈 수 있는 열쇠는 돈 되는 특허 ‘표준특허’에 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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