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 증세 보인 61세 여성 노동자
이성당 소유 호텔 항도의 이상한 대응
표준근로계약서 조작 인정했지만
“구두합의해서 문제 없다” 반박
노동자 최씨 “근로계약서 본 적도 없다”

호텔 객실 청소를 하던 61세 여성 노동자가 업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다. 노동자 가족은 당연히 산재처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호텔 측은 산재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그 과정에서 근로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함께 일한 동료의 진술도 조작했다. 군산을 대표하는 빵집 ‘이성당’ 일가에서 일어난 일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최씨 산재 논란을 단독 취재했다.

군산 이성당이 소유한 호텔 항도장이 근무 중 쓰러진 노동자의 근로계약서를 허위호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군산 이성당이 소유한 호텔 항도장이 근무 중 쓰러진 노동자의 근로계약서를 허위호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전국 3대 빵집으로 유명한 군산 이성당 일가가 근무 중 쓰러진 61세 여성 노동자 최○○씨의 산재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근로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성당의 계열사 호텔 항도(이하 항도장) 측은 근무시간 오전 9시~11시, 매주 5일 근무 등이 적시된 허위 근로계약서를 근로복지공단 군산지사에 제출하면서 “우리 근무시간과 업무를 고려했을 때 회사에서의 업무상 재해로 판단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더스쿠프(The SCOOP)가 단독 입수한 문건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노동자 최씨는 표준근로계약서에 서명署名한 적 없다. 항도장 측이 만든 가짜 계약서란 얘기다. 근로 내용이 사실인 것도 아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최씨 산재 논란을 ‘타임라인별’로 정리했다.[※참고: 최씨는 2020년 10월부터 이성당 안집에서 가사를 했다. 이성당 대표 A씨의 요청을 받은 2021년 1월 이후엔 항도장의 청소 등의 업무도 겸했다. 항도장은 유한회사 이성당의 소유로, 대표는 A씨의 아들 B씨다. 최씨 산재 논란엔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가사도우미의 문제도 들어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했다.]


■2020년 10월 = 지난해 10월 최씨는 전국 3대 빵집 중 한곳인 군산 ‘이성당’ 안집의 가사도우미로 취업했다. 최씨를 고용한 이는 이성당 대표 A씨였다.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여타 가사도우미들과 마찬가지로 최씨 역시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고, 일당은 10만원이었다. 그마저도 일주일에 한번, 열흘에 한번 지급했다.

■2021년 1월 = 최씨가 일을 시작한 지 3개월여 후인 2021년 1월 군산 소재 ‘항도장’에서 결원이 발생했고, 이게 사건의 발단이 됐다.  여기선 항도장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항도장은 유한회사 이성당의 계열사다. CEO는 이성당 대표 A씨(지분율 85.0%)의 아들 B씨다.

B씨는 이성당의 2대 주주(지분율 15.0%)이기도 하다. 이성당과 항도장이 사실상 한 몸이란 거다. 두 업체 간 거리도 40여m로 짧다. 이런 항도장에 결원이 발생하자, 이성당 대표 A씨가 최씨에게 “항도장 업무도 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성당과 항도장 양쪽에서 일을 시작한 최씨의 근무시간은 복잡해졌다. 오전 9시 전엔 이성당 안집으로 출근해 설거지·빨래 등 가사를 도왔다. 그로부터 30분~1시간 후 항도장으로 이동해 오후 1시께까지 객실청소·시설관리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참고: 중간중간 일이 생기면 이성당 안집에 다녀오는 경우도 숱했다. 최씨에겐 가사도우미 업무와 항도장 업무가 사실상 ‘하나의 일’이었던 거다.]

항도장 업무는 대략 오후 1시께 마무리됐다. 그후 최씨는 이성당 3층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6시까지 안집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했다. 빡빡한 일상이었지만 쉬는 날은 따로 없었다. 항도장에선 일주일 내내 일했고, 가사도우미 일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했다.[※참고: 최씨는 올해 61세(1959년)로 키 158㎝, 몸무게 45㎏의 작은 체구를 가졌다.]

그렇다고 임금을 많이 받은 것도 아니었다. 2021년 1월부터 이성당 안집과 항도장에서 각각 가사도우미, 근로자로 일한 최씨는 임금도 양쪽에서 받았다. 가사도우미 임금은 이성당 대표 A씨가 줬다. 호텔에서 일한 임금은 항도장 대표 B씨가 직접 입금했다. 각각 100만원, 80만원이었다.

■3월 29일 = 최씨에게 문제가 생긴 건 올 3월 29일이다. 평소처럼 이성당 안집에 출근했다가 항도장으로 이동한 최씨는 욕실청소를 하던 중 어지러움을 느꼈다. 동료 정○○씨의 권유로 객실에 잠시 누웠지만 상태는 점점 심각해졌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최씨는 11시48분께 남편에게 연락했고, 남편은 곧장 항도장으로 출발했다.

남편을 기다리기 위해 동료 정씨의 부축을 받고 항도장 앞 도로까지 나온 최씨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시간은 오전 11시 50분께였다. 쓰러진 최씨는 동료의 신고로 출동한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병명은 뇌 지주막하 출혈이었다. 항도장에서 일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진 셈이었다.

■3월 30일~4월 19일 = 최씨 가족은 ‘근무 중에 쓰러졌으니 산재처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씨의 남편은 “아내가 쓰러진 후 항도장에 확인해 보니 ‘4대 보험 가입업체’였다”며 “항도장 관계자로부터 산재처리가 가능할 것이라는 답변도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항도장 측은 4월 19일 “최씨의 뇌출혈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을 근로복지공단 군산지사(이하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했다. 항도장은 그 근거로 ▲최씨가 작성한 표준근로계약서 ▲최씨와 함께 일한 동료 정씨의 진술서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서류들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노동자 최씨가 근무 중 쓰러진 항도장의 소유자는 유한회사 이성당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노동자 최씨가 근무 중 쓰러진 항도장의 소유자는 유한회사 이성당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표준근로계약서 허위 작성 = 가장 중요한 표준근로계약서부터 보자.

❶근로계약기간 : 2021년 2월 1일부터 2021년 12월 31일까지
❷근무장소 : 항도장
❸업무의 내용 : 항도장 청소
❹근로시간 : 9~1 1시
❺근무일·휴일 : 매주 5일 근무, 주휴일 매주 월요일

❻월급 : 80만원

이 계약서의 작성일은 2월 1일로 표기돼 있다. 계약서 하단부엔 항도장 대표 B씨의 날인捺印과 최씨의 서명署名이 기재돼 있다. 하지만 이 계약서는 항도장이 허위로 작성한 것이다. 최씨는 이 계약서를 본 적도, 서명한 적도 없다. 계약서에 적혀 있는 최씨의 서명은 항도장의 누군가가 거짓으로 쓴 거다.


실제로 최씨의 서명은 ‘한문 최崔’지만 이 계약서엔 한글 ‘최’가 엉성하게 쓰여 있다. 서명뿐만이 아니다. 근무시간 오전 9시~11시, 근무일 매주 5일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 주휴일이 매주 월요일인 것도 아니다. 최씨 측은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온종일 일했는데, 자기들 맘대로 근무시간을 쪼갰다”면서 “주말도 없이 일한 사람을 어떻게 이런 식으로 취급할 수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며 한탄했다.

항도장 관계자는 “최씨의 서명을 허위로 작성한 건은 우리의 잘못”이라면서도 “하지만 최씨의 의견을 수렴해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으니 별문제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근로계약서를 노동자의 서명 없이 임의로 작성한 건 맞지만 그 내용이 허위는 아니란 거다.


■동료 진술 조작했나 = 항도장 측은 최씨의 근무시간을 줄이기 위해 동료 정씨의 진술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참고: 정씨는 최씨가 쓰러진 날 항도장 앞까지 그를 부축해준 이다. 119에 신고한 이도 정씨다.] 정씨는 사고 다음날인 3월 30일 최씨 남편과의 통화에서 “(최씨가) 하루 3~4시간 정도 일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항도장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자료엔 이와는 전혀 다른 정씨의 진술서가 첨부돼 있었다. “… 최씨는 9시30분부터 11시30분까지 평균 2시간 근무했습니다. 청소할 객실이 5개 미만일 때는 혼자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조작’으로 밝혀졌다.

4월 23일 동료 정씨는 근로복지공단에 방문해 다음과 같은 사실확인서를 제출했다. “… 본인(정씨)은 2021년 4월 23일 10시58분에 근로복지공단 군산지사 재활보상부에 방문함. 항도장이 제출한 본인의 진술서는 2019년 4월 19일 항도장 직원이 최씨의 근무시간을 불러준 대로 작성한 것으로 사실이 아님을 확인합니다.” 항도장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근거서류인 ‘정씨의 진술서’가 항도장 의도대로 쓰였다는 얘기다.

항도장 측은 “동료 정씨가 최씨 남편의 협박 때문에 말을 바꾼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정씨는 취재팀과의 통화에서 이 주장을 재반박했다. “항도장에서 날 찾아와 별다른 생각 없이 진술서를 작성했다. 진술서 내용을 번복하는 과정에서 최씨의 남편이 압력을 행사하거나 협박한 적은 없다. 이번 일로 나도 항도장 일을 관뒀다. 더 관여하고 싶지 않다.”

■항도장은 왜 조작했을까 = 그렇다면 항도장은 왜 최씨의 근무시간을 오전 9시에서 11시까지라고 주장하는 걸까. 노동 전문가들은 “업체 측이 산재 책임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렸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산재가 입증되려면 ▲업무수행성 및 기인성 ▲근무시간 ▲근무일수 세가지가 중요하다. 쉽게 풀어보면, 근로와 산재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가, 하루에 얼마나 일했는가, 한달간 얼마나 일했는가다.

항도장 측이 원하는 대로 최씨의 근무시간을 오전 9~11시로 줄이면 ‘업무수행성 및 기인성’에서 빠져나갈 틈이 생긴다.  최씨는 오전 11시48분에 항도장에서 빠져나와 50분에 항도장 앞 도로에서 쓰러졌다. 항도장의 주장대로라면 근무시간이 아니다. 아울러 ‘업무강도’가 높지 않았다는 주장의 근거도 ‘근무시간 2시간’에서 나온다. 항도장 측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서류에 다음과 같이 기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내용의 일부를 그대로 기록해 보자.

2. 귀사는 신청인의 재해 사실을 인정합니까. “아니요”

3. 그 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해 주세요.
“두통을 호소한 장소는 항도호텔이 맞으나 우리 근무시간과 업무를 고려했을 때 회사에서의 업무상 재해로 판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근로복지공단에서 판단해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물론 이 지점에선 다소 ‘복잡한 내용’이 있다. 최씨가 항도장 업무와 가사도우미 일을 함께했다는 점이다. 항도장 측은 “가사도우미는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산재의 대상이 아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실제로 가사도우미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직업군이 아니다. 근로기준법 제11조(적용범위)는 ‘근로기준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 다만, 동거하는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과 가사家事 사용인에게는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적시하고 있다.[※참고: 5월 21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가사근로자의 고용 개선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가사근로자법)’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가사도우미도 퇴직금·4대 보험·유급 휴일·연차 유급휴가 등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고용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던 가사도우미가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이후 68년 만이다.] 

하지만 이런 법적 공백을 십분 수용하더라도 항도장의 주장엔 어폐가 있다. 앞서 언급한 내용을 다시 설명하면, 최씨를 가사도우미로 고용한 이는 이성당 대표 A씨다.

최씨에게 항도장에서 일을 해달라고 요청한 이도 A씨다. A씨는 항도장을 소유하고 있는 유한회사 이성당의 최대주주이고, 항도장 대표 B씨의 모친이다. 더구나 최씨의 일이 명확하게 구분돼 있지도 않았다. 이성당에 출근한 다음 항도장으로 이동해 업무를 봤고, 다시 이성당으로 돌아와 가사를 했다.[※참고: 이성당과 항도장이 한 몸이란 증거는 또 있다. 이성당 측은 항도장의 노동자(카운터 직원)를 뽑는 채용공고를 자신들의 이름으로 내왔다. 항도장을 사실상 이성당이 지배해왔다는 얘기다.]

김종진 노무사(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는 “그나마 다행인 건 최씨가 사업장에서 쓰러져 산재 처리를 다퉈볼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가사도우미 업무를 보다 문제가 터졌다면 최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 산재심사위원회 출신 노동전문가도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최씨 사례는 가사도우미와 항도장의 근무시간과 업무를 통합한 상태에서 봐야 한다. 최씨를 고용하고 업무를 지시한 고용주를 사실상 한사람으로 봐야 하고, 근무지도 멀지 않아 사업장을 구분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 그는 걱정도 함께 내비쳤다.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고용주가 한사람인 줄 알았던 최씨의 사례를 행정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하면 노동자의 권익이 심각하게 침해받을 가능성이 높다. 최씨의 근로계약서를 왜 허위로 작성했는지부터 엄중하게 다뤄야 한다.”

힘없는 노동자 가슴에 피멍

이성당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빵집이자 대전 성심당, 안동 맘모스 빵집과 더불어 전국 3대 빵집으로 꼽힌다. 매출액은 196억8400만원(2020년 기준), 임직원은 68명에 이른다. 전국에 9곳(군산 본점·군산 신관·이성당카페 잠실점·이성당 잠실점·천안점·서초구 햇쌀마루·용인 수지점·롯데백화점 김포공항점·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에 매장이 있다.

이 정도 기업이 힘없는 노동자의 산재 책임을 피하기 위해 표준근로계약서까지 허위로 작성했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뇌출혈로 쓰러졌던 최씨는 8일 만에 깨어나 조금씩 건강을 되찾고 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배신감과 실망감에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놨다. 이성당과 항도장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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