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노동자 최○○씨

호텔 항도(항도장)의 61세 노동자 최○○씨. 그는 표준근로계약서를 본 적도, 쓴 적도 없었다. 그를 고용한 사람으로부터 근무시간을 듣긴 했지만 조건을 따진 적도 없다. 하지만 최씨는 뇌출혈로 쓰러진 다음 황당한 말을 들었다. 자신이 근로계약서를 썼다는 거였다. 뒤늦게 두 눈으로 확인한 근로계약서엔 거짓 서명이 기재돼 있었다. 더스쿠프가 최씨의 말을 들어봤다.

노동자 최씨는 항도장에서 일하면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노동자 최씨는 항도장에서 일하면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이성당 안집에선 언제부터 가사도우미로 일했나.
“지난해 10월 15일 이성당 대표 A씨의 면접을 봤다. 다음날 16일부터 시간당 1만원을 받고 일했다. 11월부터는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주 5일에서 6일을 일했다.”


✚ 가사도우미로 일하면서 받은 급여는 얼마인가.
“11월 근무시간이 늘어났을 때부터는 하루 10만원씩 주급으로 급여를 받았다. 호텔 항도(이하 항도장)에서 일을 시작한 2021년 2월 1일부터는 가사도우미 100만원, 항도장 80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 월급은 어떻게 지급됐나.
“가사도우미 월급 100만원은 이성당 대표 A씨가 입금했다. 항도장은 사업체명으로 80만원을 넣었다.”

✚ 항도장에서 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1월 중순께 항도장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갑자기 일을 그만뒀다. 그러자 항도장을 실제로 관리하는 이성당 대표 A씨의 지시를 받아 항도장에서도 일하게 됐다.”

✚ 업무 지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받았나.
“어차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성당 안집에서 일하니, 오전에는 항도장에서 객실 청소 등을 하고 오후에는 이성당 안집에서 가사도우미 업무를 보라고 했다.”

✚ 항도장에선 어떤 업무를 했는가.
“주로 객실과 객실 화장실 청소를 했다. 다른 업무도 있었다. 객실이 아닌 창고, 화장실 청소를 했고, 항도장이 함께 운영하는 대중목욕탕의 세탁실도 청소했다.”


✚ 어떻게 근무를 했는지 말해 달라.
“항도장 퇴실 시간은 오전 11시다. 그래서 오전 9시 전에 이성당 안집으로 출근해 전날 나온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이성당 안집 일이 적으면 오전 9시20~30분께, 일이 많으면 늦어도 오전 10시까지 항도장으로 자리를 옮겨 오후 1시께까지 일했다. 점심 식사 후 이성당 안집으로 이동해 저녁 6시까지 가사도우미 일을 했다.”

✚ 이성당 안집과 항도장 업무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었나.
“그렇지 않다. 이성당 안집과 항도장의 거리가 멀지 않은 탓에 항도장에서 일하다가도 급한 업무가 있으면 수시로 이성당 안집에 가서 일했다. 그리곤 다시 항도장으로 돌아와 남은 업무를 했다.”

✚ 가사도우미와 항도장에서 일할 때 근로계약서를 체결했는가.
“근로계약서는 체결하지 않았고, 근로계약서를 써야 하는지도 몰랐다.”

✚ 항도장에서 근로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나.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 이성당 대표 A씨의 지시로 항도장에서 일하게 된 탓에 항도장에서의 일은 가사도우미의 보조업무 정도로만 생각했다.”

✚ 항도장에서 근로복지공단(군산지사)에 최씨의 서명이 담긴 근로계약서를 제출했다는 건 언제 알았는가.
“산재처리 조사과정에서 알게 됐다.”


✚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지난 4월 20일 근로복지공단 담당자가 근로계약서를 보여줘서 알게 됐다. 이후 항도장에 연락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근로계약서가 있으면 노동자에게도 한부 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고, 그날 항도장을 방문해 계약서를 받았다. 하지만 그 근로계약서는 내가 작성한 게 아니었다. 확인해보니 항도장을 관리하는 여자 계장이 작성했다는 말을 들었다.”

노동자 최씨는 항도장에서 일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졌다. 하지만 항도장 측은 “최씨의 뇌출혈을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노동자 최씨는 항도장에서 일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졌다. 하지만 항도장 측은 “최씨의 뇌출혈을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 근로계약서에 서명이 있던데, 그건 어떻게 된 건가.
“난 지금까지 한문 최崔로 서명을 해왔다. 하지만 항도장에서 준 근로계약서의 서명은 ‘한글 최’였다.”


✚ 항도장이 근로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했다고 들었다.
“그렇다. 계약서엔 주 5일 근무, 월요일 휴무라고 돼 있지만 휴일은 고사하고 연차 휴가도 없었다. 이성당 안집과 항도장에서 일주일 내내 일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 3월 둘째주부턴 일요일엔 항도장에서만 일하라는 이성당 대표 A씨의 지시를 받고, 매주 일요일 이성당 안집 일을 쉬었다.”

✚ 항도장에서 최씨의 근무시간을 줄이기 위해 함께 일한 동료 정○○씨의 진술까지 조작했다는 의혹이 있다.
“내가 쓰러진 다음날 남편이 동료 정씨에게 근무시간을 물어봤다. 정씨는 ‘하루 3시간가량’ 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항도장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자료의 내용은 달랐다.”

✚ 어떻게 달랐나.
“정씨 진술서에는 ‘하루 평균 2시간 일했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 어떻게 된 일인가.
“정씨는 이렇게 말했다. ‘4월 19일 몸이 아파 집에서 쉬고 있는데 항도장 여자 계장이 찾아왔다. 그 계장이 산재처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진술서를 써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항도장 여자 계장이 불러주는 내용을 (그대로) 써서 줬다.’”

✚ 동료 정씨가 항도장이 제출한 진술서를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정씨에게 항도장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의견서를 보여주면서 산재처리를 안 해 주려고 한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근로복지공단에 함께 가서 ‘항도장이 제출한 진술서는 사실이 아니다’는 확인서를 다시 써줬다.”

✚ 지난 3월 29일 뇌출혈로 쓰러졌다. 지병이 있거나 건강상에 문제가 있었나.
“혈압도 정상이고 당뇨도 없다.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 이성당 안집 일과 항도장 업무를 병행했던 게 뇌출혈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성당 안집의 크기는 330.5㎡(약 100평)로 화장실만 5개나 된다. 항도장에서 청소해야 했던 객실도 적지 않았다. 일주일 내내 일하면서 피로가 누적된 것 같다.”

✚ 항도장으로부터 해명이나 설명을 들은 것이 있는가.
“없다. 4월 14일 항도장 관계자에게 연락이 왔을 때 산재처리가 불투명하다는 얘길 들은 게 끝이다. 근로계약서 허위작성 등에 관해서는 아무런 해명이나 설명을 듣지 못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난 그저 열심히 일했을 뿐이다. 이성당 사람들이 왜 근로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동료의 진술을 조작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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