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서채환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장
BIAF 수상작, 아카데미상 수상
국내 애니메이션 위상도 상승 중
시장 성장하려면 정부 지원 필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스타는 단연 윤여정이었다. 그녀는 톡톡 튀는 말로 전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빛난 K-콘텐츠는 또 있다.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 애미메이션상을 받은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해’가 BIAF를 통해 자동 추천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도, 대중도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해’의 한 장면.[사진=애니메이션 캡쳐]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해’의 한 장면.[사진=애니메이션 캡쳐]

지난 4월 26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시상식)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해(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라는 작품이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교내 총기사고로 딸을 잃은 부모의 심경과 그 부모를 바라보는 죽은 딸의 심경을 대사 없이 애니메이션과 음악만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미국의 총기사고 문제를 잔잔하면서도 강렬하게 풀어낸 것으로 평가받는다.[※참고: 이 작품은 현재 넷플릭스에서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이라는 제목으로 상영 중이다. 윌 맥코맥과 마이클 고비에가 감독을 맡았고, 노영란 애니메이터가 애니메이션 작업을 맡았다.]

주목할 점은 이 작품이 지난해 열린 제22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에서 EBS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거다. 서채환(53)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회장(가톨릭대학교 미디어기술콘텐츠학과 교수ㆍBIAF 조직위원장)은 “BIAF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건데, 그에 걸맞은 관심을 못 받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고 설명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서 회장의 얘기를 좀 더 들어봤다. 

✚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해’라는 작품이 어떻게 아카데미상을 받은 건가요?
“그 얘기를 하려면 현재의 BIAF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네요.”

✚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릴게요. 
“BIAF는 1999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제로 출발했습니다. 신진 애니메이션 작가를 발굴하는 등용문이었죠. 그러다 2015년 학생들만의 행사가 아닌 장편과 단편, TV시리즈까지 아우르는 일반 애니메이션 영화제로 탈바꿈했어요. 이후 2017년 미국 영화예술 아카데미협회의 인증(Academy qualifying)을 받았죠. 중요한 변곡점이었습니다.”

✚ 아카데미협회의 인증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요?
“그렇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아카데미협회의 인증을 받으면 BIAF 수상작이 자동으로 아카데미상 후보가 됩니다. 2018년부터 BIAF 수상작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이죠.”

✚ 이번에 아카데미상을 받은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해’의 발판이 BIAF였군요. 
“네 그렇습니다.” 

✚ BIAF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갈 작품을 추려내는 역할을 하는 거군요. 
“맞습니다. BIAF가 일반 영화제로 전환한 이후 해외에서 BIAF에 1500여편의 애니메이션이 출품됐는데, 아카데미협회 인증을 받은 후로는 114개국에서 2800편 이상의 애니메이션이 출품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10월 22일부터 26일까지 5일간 열릴 예정입니다. 여기서 상을 받은 작품은 곧바로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됩니다.” 

✚ 그만큼 위상이 높아졌다고 봐야겠네요.
“그렇습니다.”

✚ 최근의 한류 열풍도 이번 수상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요?
“연관성이 없지 않을 겁니다. 영화 ‘기생충’을 만든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상(감독상ㆍ작품상ㆍ각본상ㆍ장편영화상) 수상, 영화 ‘미나리’에서 열연한 배우 윤여정씨의 여우조연상 수상 등이 영향을 줬을 거라고 봅니다.”

✚ 국내에 BIAF처럼 아카데미협회 인증을 받은 영화제가 또 있나요?
“아시아권에서는 BIAF가 유일합니다. 아카데미협회 인증을 받은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는 현재 안시(프랑스), 히로시마(일본), 오타와(캐나다), 자그레브(크로아티아), 아니마문디(브라질), 브뤼셀(벨기에), 애니마요(스페인), 애니모스트(루마이나), 애니메이터(폴란드)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히로시마 측이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이후로 영화제를 중단하기로 하면서 BIAF가 아시아 유일의 아카데미협회 인증을 받은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가 됐죠.”

부쩍 커진 BIAF의 위상

✚ 그럼 해외에서 BIAF에 출품하는 작품이 더 늘어날 것이고, BIAF 수상작이 아카데미상을 받을 가능성도 더 높아지겠네요. 
“그렇겠죠.”

✚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듯합니다. 
“물론입니다. BIAF가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을 위해 추진 중인 것도 있습니다.”

✚ 그게 뭔가요? 
“아카데미협회 측에 BIAF의 수상작 중 최소 1편은 ‘국내 애니메이션으로 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놓은 상태예요. 말씀드렸듯 BIAF 수상작이 모두 아카데미의 후보작이 되기 때문에 ‘기준’을 바꾸는 것도 협의가 필요해요. 아카데미협회 측에서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국내 애니메이션 중 최소 1편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가 되는 셈입니다.” 

✚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요. 
“글쎄요, 지켜보고 있습니다. 현재 심사를 진행 중인데 올해 안에 결과가 나올 듯합니다.” 

✚ BIAF의 요청이 받아들여진다면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이 활기를 띨 것 같네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을 일으킬 수는 없겠죠. 해결할 과제가 적지 않습니다.”

✚ 그게 뭔가요. 
“아무래도 단편이 많이 나와 줘야 장편도 나옵니다. 이런 맥락에서 다양한 차원의 정부 지원이 필요한데, 그게 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아시아 유일의 미국 영화예술 아카데미협회 인증 영화제다. 왼쪽이 서채환 학회장.[사진=뉴시스]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아시아 유일의 미국 영화예술 아카데미협회 인증 영화제다. 왼쪽이 서채환 학회장.[사진=뉴시스]

✚ 정부 지원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근거는 뭔가요. 
“일례로 정부는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해 다양한 영화산업 지원사업을 펼칩니다. 반면 애니메이션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을 통해 지원하는 사업이 전부입니다. 문제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애니메이션만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들이 추진하는 사업은 한두개가 아닌데, 애니메이션 지원사업은 그중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전문지원조직이 없다는 것만 봐도 정부가 애니메이션 산업을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죠.”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게임ㆍ만화ㆍ애니메이션ㆍ캐릭터ㆍ음악ㆍ패션ㆍ방송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 분야의 ▲진흥 환경조성 ▲산업 육성 ▲기술 지원 ▲유통환경 조성 ▲제작 지원 사업들을 펼치고 있다. 애니메이션 전문육성기관이 아니라는 얘기다. 2021년 기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사업 예산은 4841억9000만원이다. 이 가운데 애니메이션 지원사업 예산은 134억5500만원(2.8%)에 불과하다.

애니메이션 산업, 정부 지원 절실

✚ 애니메이션 산업의 규모가 작아서 지원액도 적은 건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애니메이션 산업 규모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예컨대 영화 어벤저스에서 실사로 촬영된 부분이 얼마나 될까요. 20~30%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는 대부분 컴퓨터그래픽(CG)으로 처리합니다. 모두 애니메이션의 영역입니다. 게임산업에서도 애니메이션이 반드시 필요하죠. 영상 관련 산업에서 애니메이션의 역할이 그만큼 광범위해졌다는 겁니다.” 

✚ 정부가 애니메이션 산업을 육성할 이유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죠. 적극적이고 집중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국내 애니메이션의 질도 매우 높아질 겁니다. 여기에 BIAF가 매년 1개 수상작품을 국내 애니메이션으로 선정할 수 있다면, 국내 애니메이션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겁니다.”

✚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위상을 높이는 게 BIAF의 궁극적인 목표인 듯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위상이 단단해지면 ‘성장의 선순환’이 시작될 겁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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