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펀드 이대로 괜찮나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규제에 나섰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진 사모펀드 사태 때문이다. 말 많고 탈 많은 사모펀드를 규제하는 건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그 불똥이 애먼 공모펀드로 튀고 있다는 점이다. 공모펀드 시장의 침체가 ‘퇴직연금’ 수익률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거다. 투자업계 안팎에서 ‘사모펀드란 빈대를 잡으려다 펀드시장 전체를 태워버릴지 모르겠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내 공모펀드 시장 규모는 지난 11년간  연평균 1.7% 성장하는 데 그쳤다.[사진=뉴시스]
국내 공모펀드 시장 규모는 지난 11년간  연평균 1.7% 성장하는 데 그쳤다.[사진=뉴시스]

2019년 하반기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진 사모펀드 사태가 발생한 지 2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라임펀드·옵티머스·디스커버리 등 논란이 된 펀드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피해 규모도 적지 않다. 사모펀드 사태가 터지고 1년이 지난 지난해 7월 금융감독원에 민원이 접수된 환매중단 사모펀드는 22개, 금액은 5조6000억원에 달했다.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사모펀드의 민낯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펀드가 방만하게 운영된 것은 기본이고 폰지사기 등 범죄 혐의까지 드러난 펀드도 있었다. 사모펀드의 끈이 정권과 맞닿아 있다는 의혹까지 일면서 사모펀드 사태는 정치적 공방으로까지 이어졌다.


사실 사모펀드 사태는 규제를 풀고 안일하게 관리했던 금융당국과 수익에 눈이 멀어 소비자를 우롱한 자산운용사가 함께 일으킨 사건이다. 사모펀드 사태에서 금융당국이 비판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사모펀드 사태 이후 금융당국은 규제의 ‘칼’을 빼들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4월 ‘사모펀드 제도개산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3월 24일에는 사모펀드 투자자 보호와 관리·감독 강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번에 통과한 법안의 골자를 살펴보면, 우선 49인 이하라는 사모펀드 투자자 수 제한 규제를 피하기 위해 펀드를 모母펀드와 자子펀드로 구분해 투자자를 모집하던 판매 행태에 제동을 걸었다.

여러 자펀드가 모펀드에 투자한 합合의 비중이 30% 이상인 경우 투자자 수를 합산해 관리하도록 했다. 사모펀드 모니터링을 강화하기 위해 6개월마다 제출하던 영업보고서의 제출 주기를 3개월(분기)로 단축했다. 여기엔 펀드구조·유동성 리스크·자전거래 현황 등을 기재해야 한다.
 

문제는 사모펀드 규제의 불똥이 애먼 곳으로 튀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정책이 사모펀드 사태의 재발방지책에만 집중된 탓에 국내 투자시장을 선진화하기 위한 방안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러는 사이 공모펀드 시장을 향한 투자자의 관심은 더 줄어들었다.

이는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으로 불리는 개인투자자의 증가세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최근엔 해외주식투자, 가상화폐투자 등에 나선 투자자도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당장이야 괜찮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미국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가능성 증가, 시장금리 인상 등 투자시장의 변동성을 높이는 요인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시장이 출렁이면 갑작스럽게 늘어난 직접투자 열풍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사모펀드 규제 나선 금융당국

사모펀드 규제로 공모펀드 시장까지 무너지면서 국내 자본시장을 떠나는 외국계 금융회사도 증가하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한국 법인인 블랙자산운용은 지난 3월 공모펀드 부문을 국내 금융사인 DGB자산운용에 매각했다고 밝혔다. 4월 21일에는 주주총회에서 종합 공모 집합투자업 라이선스를 반납하는 방안이 통과됐다고 공시했다. 2008년 국내 시장에 진출한 지 13년 만에 철수를 선언한 셈이다.

1997년 국내 시장에 최초로 진출한 외국계 운용사인 프랭클린템플턴투자신탁운용도 지난 5월 12일 공모펀드 투자업에서 철수했다. 탬플턴운용이 보유하고 있던 공모펀드 22개(운용자산 2200억원)는 우리자산운용에 흡수 합병될 예정이다.

이보다 앞선 지난 4월 16일에는 호주계 자산운용사인 맥쿼리투신운용사가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인 파인만인베스트를 새 주인으로 맞았다. 맥쿼리로선 사실상 국내 시장에서 철수한 셈이다. 이렇게 올해에만 국내 공모펀드 시장을 떠난 외국계 자산운용사는 3곳이나 된다. 직접 투자자의 증가세와 공모펀드 시장 침체의 영향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사모펀드 규제의 영향이다. 가뜩이나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공모펀드로선 이중고를 만난 셈이다.[※참고: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머니마켓펀드(MMF)를 제외한 국내 공모펀드 시장은 연평균 1.7% 성장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사모펀드와 파생결합 증권의 시장 규모가 각각 연평균 29%씩 증가했다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대조적이다.]

필자는 이 책임이 금융당국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모펀드와 공모펀드를 구분하지 않은 규제가 시장 전체를 죽이고 있어서다. 사모펀드는 규제가 필요한 시장임에 틀림없다. 공모펀드 시장은 다르다.

일례로 공모펀드는 투자자 모집이나 운용 관련 규제가 엄격하다. 소수의 사람이 아닌 일반 투자자에게 판매하기 때문에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장치도 꽤 많다. 펀드 시장을 규제하면서 공모펀드 시장을 살리려는 정책이 빠진 것이 뼈아픈 이유다. 사모펀드라는 빈대를 잡으려다 펀드시장이라는 초가삼간을 태운 꼴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모펀드의 침체는 은퇴자의 노후를 책임지는 퇴직연금의 수익률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퇴직연금에서 운용하는 상품의 상당수가 공모펀드로 구성돼 있어서다.

구분 없는 규제에 공모펀드 침체

특히 매년 낮은 수익률로 지탄을 받는 확정기여(DC·Defined Contribution)형과 개인퇴직연금(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의 수익률을 결정하는 것이 공모펀드라는 걸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퇴직연금 수익률을 올리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다른 한편에선 공모펀드 시장을 죽이는 금융당국의 정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공모펀드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더불어 투자자에게 펀드시장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금융교육도 이뤄져야 한다. 사모펀드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자산운용사와 판매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금융소비자도 숱하니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모펀드 시장은 퇴직연금의 구색을 갖추기 위한 상품쯤으로 전락할 수 있다. 공모펀드를 활성화하는 것이 간접투자 시장을 발전시키고, 퇴직연금 시장을 키우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글 = 조경만 금융컨설턴트(엉클조 대표)
iunclejo@naver.com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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