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역로~이화여대길 르포 

20대의 성지에서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메카로 끊임없이 변해온 이대 상권. 올해 들어선 그 모습까지 바뀌고 있다. 저층 상가가 둥지를 틀고 있던 자리에 높다란 오피스텔이 속속 준공되면서다. 상권이 죽자 건물주들이 대학생, 직장인의 ‘임차 수요’를 노린 결과다. 이대 골목길의 새로운 변화는 옳은 방향으로 진행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이대 상권을 걸어봤다.

이화여대 상권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소규모 상가 대신 오피스텔이 들어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화여대 상권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소규모 상가 대신 오피스텔이 들어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도시는 보통 돈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쇠락하는 상권도 마찬가지다. 이대 상권이 딱 그런 모양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브랜드 옷가게나 헤어숍ㆍ타로카페 등이 가득했던 거리는 어느 순간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늘면서 모습이 변해갔다.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대 골목길을 가득 채웠던 옷가게가 사라졌고, 그 자리를 중국어 간판이 걸린 상점이 채웠다. 중국어 안내문을 붙인 화장품 가게가 이대 정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뒤덮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분기점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논란’이 터진 2017년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중국 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우리나라와의 교류를 끊기 시작했고, 유커에 의존하던 상권은 직격탄을 맞았다. 이대 상권도 그중 하나였다. 빈 점포가 가파르게 늘어났고, 건물주들은 빈 상가를 대신할 뭔가를 찾았다. 그렇게 떠오른 새로운 선택지가 다름 아닌 ‘오피스텔’이다. 

사실 건물주들이 오피스텔을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대 상권은 일반상업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지역은 일반주거지역보다 건폐율ㆍ용적률이 높아 같은 면적의 땅이라도 더 넓고 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주거용ㆍ업무용 모두 임대가 가능한 오피스텔이 이대의 ‘대안’으로 떠오른 건 이 때문이다. 

물론 상가의 3배에 이르는 오피스텔 수익률도 변수로 작용했을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1분기 신촌ㆍ이대 상권의 소규모 상가 투자수익률(임대료 수익과 부동산 가치 상승으로 인한 수익의 총합)은 1.46%였다. 서울 전체 평균(1.55%)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같은 기간 서울 오피스텔(40㎡ 이하) 수익률은 4.5%였다. 

오피스텔 신축 ‘붐’

그렇다면 이대 상권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건축행정시스템 세움터가 제공하는 자료를 활용해 2011년부터 2021년 5월까지 이대 상권(이화여대길ㆍ신촌로ㆍ신촌역로와 접하는 서대문구 대현동 일대)에서 착공한 건축물을 정리해봤다. 세움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신축공사 현장은 92개였다. 이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 업무시설로 분류되는 오피스텔이었다. 전체의 45%가 넘는 43건이 오피스텔 신축공사였다. 

그럼 분위기는 어떨까. 신촌역로를 출발점으로 이화여대길까지 걸어봤다(지도 참조). 완만한 언덕으로 이어진 이 길은 이화여대 1ㆍ3ㆍ5ㆍ7길로 총 4개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각각 250m가량이다. 4개 길을 모두 걸으면 1㎞가 조금 넘는다. 이 1㎞ 남짓한 길에 2017~2021년 공급된 오피스텔이 집중돼 있다.

43건의 오피스텔 신축공사 중 이 기간에 준공된 오피스텔은 60%가 넘는 27개에 이른다. 연도별로 분류하면 2017년 4개, 2018년 8개, 2019년 8개, 2020년 5개, 2021년 현재까지 2개다. 

신촌역로에서 이화여대길로 가는 길은 낮에도 어두운 편이었다. 1~3층 낮은 상가들이 있던 자리에 9층 이상의 오피스텔 건물들이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일반상업지역에 만들어진 업무용 건물이다 보니 신축 오피스텔 간 간격도 좁았다. 

그렇다고 주거환경이 나빠진 건 아닌 듯했다. 이대 상권에 둥지를 틀고 있던 3~4층짜리 고시원 대부분이 ‘리빙텔’이란 간판을 떼버리고 오피스텔로 환골탈태했기 때문이다. 오피스텔 중 일부는 최저 주거기준인 14㎡보다 작은 곳도 있었지만 창문을 열기도 어려운 고시원과 비교하면 주거환경은 나아진 셈이었다. 

당연히 그만큼 가격은 올랐다. 매물로 나와 있는 신축 오피스텔의 시세를 확인하면 보증금 1000만원, 월 임대료 70만원 수준이다. 서울 서대문구 평균 오피스텔 시세(월 임대료 67만원ㆍ2021년 3월 기준ㆍ부동산앱 다방)와 비교하면 약간 높은 편이다. 인근 대학교의 학생들에겐 부담스러울 수 있는 가격이다. 

 

하지만 대학생이 선호하지 않더라도 입주할 임차인은 있다. 광화문이나 홍대ㆍ합정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다. 작은 상가를 버리고 오피스텔을 선택한 건물주들은 이런 대안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높다.

건물주의 생각이 맞아떨어진다면, 이대 상권은 부활의 날개를 펼 수도 있다. 이곳에 머무는 직장인들이 임대료를 낼 뿐만 아니라 이대 상권에서 지갑을 열 가능성이 충분해서다.

그래서인지 이곳 오피스텔 1~2층에 들어선 상가의 분위기는 헤어숍ㆍ패션숍 등이 빼곡하던 이전과 완전히 다르다. 관광객이나 대학생 수요가 아닌 오피스텔 거주민이 자주 갈 만한 필라테스 스튜디오ㆍ피트니스 센터 등이 자리를 잡았다. 


달라진 상가 분위기

그러나 장밋빛 미래만을 기대하긴 어렵다. 준공된 오피스텔 중엔 공실이 숱하다. 오피스텔 전월세의 실거래가도 전반적으로 하락세다. 2017~2021년에 준공된 오피스텔 27곳 중 10곳의 올해 실거래가(전월세ㆍ매매)가 2019년이나 2020년보다 더 내려갔다. 10곳의 월 임대료는 대부분 5만원 또는 그 이상 떨어졌고, 전세 보증금이 1000만원 이상 하락한 오피스텔도 다수 있었다. 

지금도 이대 상권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오피스텔은 8개동에 이른다. 공사 중인 건물이 많다 보니 오피스텔 신축 상가의 시너지 효과도 아직 기대하기 어렵다. 오피스텔 개발이 끝나면 이대 상권은 새로운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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