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부의 K-스마트 등대공장 지원사업
명분은 거창, 사후평가시스템도 없어
스마트공장 보급 사업과 사실상 중복

중소벤처기업부가 곧 K-스마트 등대공장 지원사업을 시작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의 등대공장을 벤치마킹한 건데, 국내 중소ㆍ중견기업의 공장을 ‘스마트공장’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K-스마트 등대공장과 WEF의 등대공장은 전제도, 혜택도, 평가방식도 다르다. 똑같은 등대인데, 등대가 아니란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K-스마트 등대공장의 허와 실을 취재했다.

등대공장은 업계에 방향성을 제시할 만큼 선도적인 스마트공장을 의미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등대공장은 업계에 방향성을 제시할 만큼 선도적인 스마트공장을 의미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올해부터 중소벤처기업부가 중소ㆍ중견기업을 대상으로 ‘K-스마트 등대공장’을 선정해 지원하는 사업을 펼친다. ‘등대공장(Lighthouse Factory)’이란 불빛으로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등대처럼 세계 제조업의 미래를 혁신적으로 이끄는 공장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최첨단 스마트공장을 갖춰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공장인 셈이다. 

이런 등대공장은 2018년부터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하고 있다. 올해 3월말 기준 69곳이 됐다. BMW, 보쉬, 지멘스, P&G 등 유명 글로벌 기업의 공장들이 포함돼 있고, 국내 기업 중엔 포스코(2019년)가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 ‘K-스마트 등대공장’은 이런 WEF의 등대공장을 벤치마킹한 거다. 

이를 위해 중기부는 올해 1월부터 지난 4월까지 이 지원사업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중소ㆍ중견기업들의 신청을 받았고, 약 10개사를 선정해 조만간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2025년까지 총 100개사를 지원한다는 게 중기부의 목표다. 

언뜻 꽤 그럴듯한 지원사업인 것 같다. 바람직한 견본을 제시해 더 많은 중소ㆍ중견기업이 최첨단 스마트공장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치열한 세계 제조업 시장에서 국내 중소ㆍ중견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뜻을 담고 있어서다. 

하지만 이 지원사업을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이상한 점이 많다. 우선 WEF를 벤치마킹했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WEF의 등대기업은 금전적 혜택이 없다. 각 기업이 이를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을 뿐이다. ‘선도적인 스마트공장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명예를 주는 게 혜택의 전부란 거다.

실제로 WEF의 등대공장은 ‘스마트공장을 구축해 놓은 기업 중에서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의 철저한 심사(WEF가 의뢰)를 통과한 곳’ 중에서 발굴한다. 명예가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K-스마트 등대공장의 핵심은 ‘금전적 혜택’이다. 이 지원사업에 선정되면 업체당 3년간 최대 12억원(연간 4억원 이내)을 지원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WEF처럼 이미 스마트공장을 구축해 놓은 곳에서 발굴하는 것도 아니다.

‘K-스마트 등대공장 지원사업’ 대상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제조공정을 분석하고 실시간 제어까지 가능한 고도화된 스마트공장 구축을 목표로 하는 중소ㆍ중견기업’이다. 쉽게 말해 아직 등대공장과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지 않지만, 그럴 의지가 있고, 가능성이 엿보이는 곳을 선정하겠다는 거다. 

이처럼 출발점이 다르다 보니 평가 방식도 다르다. 언급했듯 WEF는 이미 만들어진 등대공장을 평가해서 선정한다. 자신들이 선정하는 등대공장이 동종업계에 어떤 시사점을 주고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둔다. 이 때문에 평가도 천편일률적이기보다는 개별 기업의 업종과 특성까지 고려해서 이뤄진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그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맥킨지에 속한 전문가가 직접 현장을 방문하는데, 단순히 매출이나 생산성 등을 평가하는 게 아니다. 예컨대 제조업의 경우 다품종 대량생산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뤄지는지를 따져 볼 수도 있고, 물류기업의 경우 물류 선별 시스템이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인 배송을 지원하는지를 따져 볼 수도 있다. 개별 기업의 특성에 따라 다른 평가 기준을 적용한다는 거다.”

반면 ‘K-스마트 등대공장 지원사업’은 ‘등대공장을 구축하려는 기업을 지원’하는 게 목적이다 보니 평가 방식도 뻔할 수밖에 없다. 중기부는 지원 대상을 선정할 때 평가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내용을 보면 ▲사업계획서와 현장의 대조 ▲도입기업의 역량 ▲스마트공장 고도화 필요성 ▲지속가능성을 위한 경영진의 의지 ▲운영관리의 구체성 ▲연차별 스마트공장 고도화 로드맵의 현실성 등이다. 대부분 ‘계획’과 그 계획의 ‘실천 가능성’에 관한 평가다. 

그렇다고 평가 기준을 명확하게 세워놓은 것도 아니다. 중기부는 ‘등대공장 구축을 목표로 하는 기업’을 지원한다고 했으니 3년 후 목표를 달성했는지 다시 한번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중기부는 기업이 당초 계획을 잘 이행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지, 3년 후에 등대공장을 구축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지 결정하지 않았다. 중기부 관계자는 “매출이나 생산성 등을 고려해 평가 기준을 만드는 중”이라고 해명했지만, 아직까지 사후 평가 기준을 세워놓지도 않았다는 건 문제가 있다. 

진짜 ‘등대공장’ 만들 생각 있나

평가 기준을 만들더라도 WEF와 같은 질적 평가가 아니라 천편일률적인 정량 평가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중기부는 ‘스마트공장 보급ㆍ확산 지원사업’을 펴고 있는데, 성공사례를 얘기할 때마다 매출이나 생산성 증대, 불량률 감소 등을 성과로 내세우는 것만 봐도 그렇다. 종합하면 정부가 막대한 지원을 하고도 실질적인 평가는 제대로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중복 사업 논란도 따져봐야 한다. 중기부는 2014년부터 ‘스마트공장 보급ㆍ확산 지원사업’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지금까지 이 사업을 통해 정부 지원을 받은 기업이 1만9799곳이고, 올해 책정된 예산만 4150억원에 달한다.

게다가 이 사업은 이미 스마트공장을 구축한 기업의 스마트공장 고도화를 위해 기업당 1억5000만원을 지원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K-스마트 등대공장 사업이 중복 혹은 추가 지원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등대기업을 구축할 기업을 지원하겠다지만, 지원 후에 평가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소벤처기업부는 등대기업을 구축할 기업을 지원하겠다지만, 지원 후에 평가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기부 관계자는 “‘스마트공장 보급ㆍ확산 지원사업’을 현재 받고 있는 기업은 ‘K-스마트 등대공장 지원사업’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K-스마트 등대공장 지원사업’은 ‘등대공장’ 수준의 최첨단 스마트공장의 구축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 ▲국내 중소ㆍ중견기업들의 스마트공장 수준은 공장 자동화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는 점(중소기업연구원 보고서 토대)을 감안할 때 ‘스마트공장 고도화 지원사업’의 혜택을 이미 받은 기업들이 ‘K-스마트 등대공장 지원사업’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스마트공장도 못 만들었는데…

그동안 정부는 ‘스마트공장 보급ㆍ확산 지원사업’을 무던히 펼쳐 왔지만, 평가는 그리 좋지 않다. 지난해 중소기업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ㆍ중견기업의 스마트공장은 80%가 기초단계(자동화)에 머물러 있다. 물론 스마트공장을 만들려면 자동화가 기본이 돼야 한다. 

중요한 건 ‘스마트공장’이라고 할 만한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등대공장’을 운운하면서 지원사업을 펼치고, 3년 만에 등대공장 수준에 도달했는지 평가한다는 게 이치에 맞느냐는 거다. 정부의 ‘K-스마트 등대공장 지원사업’을 놓고 혈세만 낭비하는 게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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