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OOP? STORY!
방역 탓에 팝콘마저 판매 금지
4단계 맞은 성수기가 고비

국내 영화관 산업이 긴 암흑기를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19를 의식한 관객들은 발걸음을 끊은 지 오래고, 배급사들은 너나없이 개봉을 미룹니다. 흥행작이 감소하니 영화관을 찾는 관객은 더 줄었습니다. 영화관 안팎에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겁니다. 여기에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마저 4단계로 격상됐으니 “답이 없다”는 소리가 나올 만합니다. 침체하는 영화관을 더스쿠프(The SCOOP)가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성수기를 맞았음에도 영화관을 찾는 소비자들의 발걸음은 뜸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성수기를 맞았음에도 영화관을 찾는 소비자들의 발걸음은 뜸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관은 한국 영화산업의 근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영화산업 매출의 70~80%가 영화관 티켓값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화관이 코로나19에 시달린 지 벌써 1년 반이 지났습니다. 그사이 영화관 시장의 규모는 눈에 띄게 축소됐습니다. 지난해 국내 영화관 매출은 전년(1조9140억원) 대비 73.3% 감소한 5104억원을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영화진흥위원회).

수십명이 밀폐된 공간에서 장기간 머무는 영화관을 소비자들이 기피한 결과입니다. 이를 두고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는 “국내 영화관 시장 규모가 성장기였던 20 00년대 초반으로 돌아갔다”면서 “20년간의 성장 흐름을 코로나19가 꺾어버린 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CJ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다급해진 멀티플렉스 업체들은 영화관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온갖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프랑스 유명 작가와의 토크쇼를 열고(CJ CGV), 한국프로야구 경기를 생중계하고(롯데시네마), 심지어 멀티플렉스 업체의 최대 경쟁상대로 꼽히는 넷플릭스가 보유한 영화를 상영(메가박스)하는 등 갖가지 수를 동원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결국 지난해 멀티플렉스 3사는 모두 적자를 면치 못했습니다. 이들 3사의 영업손실액을 합하면 무려 6150억원(2020년 기준)에 달합니다.

올해는 상황이 더 나빠졌습니다. 1월부터 5월까지 국내 영화관 매출은 1393억원으로, 전년 동기(2410억원)보다 42.1%나 감소했습니다(영화진흥위원회).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흥행 실패를 우려해 영화 개봉이 미뤄지는 경우도 숱합니다. 관객이 영화관을 찾지 않으니, 개봉을 미루는 영화가 등장하고, 그러니 영화관에 ‘볼만한 게’ 사라지고, 다시 관객이 영화관을 찾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됐다는 겁니다.

국내에서 인기몰이를 한 마블 어벤저스의 시리즈물인 ‘블랙 위도우’가 지난 7일 개봉한 게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이니, 상황이 이만저만 심각한 게 아닙니다.[※참고: 개봉을 미루고 있는 영화 중 대표작은 ‘비상선언’입니다. 송강호·이병헌·전도연 등 쟁쟁한 배우가 출연하고 칸 영화제에 초청받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코로나19를 우려해 개봉 예정일을 확정 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자가 찾은 부천의 한 영화관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7월 9일 금요일 오후 9시에 찾은 롯데시네마 신중동점은 무척 한산했습니다. 영화관이 위치한 신중동역 부근은 롯데백화점과 홈플러스가 자리 잡은 ‘번화가’지만 요새는 발걸음이 뚝 끊겼습니다. 그 때문인지 그날 같은 ‘불금(불타는 금요일)’ 때 북적여야 할 영화관 로비에 사람이라곤 커플 몇 쌍이 전부였죠.[※참고: 부천은 서울 같은 대도시의 기능을 분담하기 위해 세워진 위성도시입니다. 따라서 유동인구가 많고, 그만큼 전염병 전파에도 취약합니다. 이런 이유로 방역수칙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어 그에 따른 도시의 변화를 관찰하기 용이합니다. 기자가 부천 영화관을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팝콘마저 못 먹는 영화관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8층 로비는 티케팅 구역을 제외하곤 어두컴컴했습니다. 기다리는 관객들을 위해 마련된 오락실·카페 등도 모두 불이 꺼져 있습니다. 팝콘·음료를 주문하는 카운터는 총 3개였지만 그곳에 보이는 점원은 한명뿐이었습니다.

앱으로 예매해 둔 티켓을 보여주고 들어가려는데 입구에 있던 점원이 제지했습니다. 편의점에서 미리 사 온 과자가 문제였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수칙에 따라 음식물을 영화관에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게 이유였죠. 영화관 내 매점에서 음식물을 판매하고 있긴 하지만 마찬가지 이유로 물과 음료 외엔 상영관에 갖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입장 전에 먹거나 매점에 보관해야 합니다.

이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음식물을 통해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한 조치입니다만, 영화관 입장에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매점에서 음식을 판매해 올리는 매출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령,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 CJ CGV의 매출(1조9422억원) 중 매점 매출은 3213억원으로 전체의 16.5%를 차지했습니다. 더구나 팝콘·음료 같은 상품의 수익성이 상당히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매점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습니다. 이 사업이 막혔으니 멀티플렉스 업체들이 휘청거릴 만합니다.


과자를 매점에 맡기고 상영관에 들어섰습니다. 예상했듯 상영관 내 객석도 썰렁하기 그지없습니다. 온라인으로 예매했을 때는 객석이 10분의 1가량 차 있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2자리마다 빈 좌석을 배치하다 보니 실제론 그보다 훨씬 더 적어 보였습니다.

기자가 예매한 영화는 ‘콰이어트 플레이스2’. 6월 16일 개봉해 현재까지 누적 관객수 84만명(7월 14일 기준)을 기록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호평을 받았던 전작의 흡입력 있는 전개를 그대로 이어받아 흥행 요소를 충분히 갖췄지만, 상영한 지 한달이 지났음에도 관객 수가 100만명을 넘지 못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코로나19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을 영화”라는 평가가 적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개봉할 영화들의 상황이 이보다 훨씬 더 나빠질 것이란 점입니다. 최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1000명(6일 기준 1212명)을 돌파한 탓에 수도권의 거리두기 단계가 최고 수준인 4단계로 상향됐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12일부터 25일까지 18시 이후론 3명 이상의 사적인 모임을 가질 수 없고, 영화관을 비롯한 각종 시설의 운영시간도 22시로 제한됩니다. 7~8월이 성수기인 멀티플렉스 업체들로선 이번 4단계 상향은 치명타일 수밖에 없습니다.

멀티플렉스 업체의 한 관계자는 “영화관뿐만 아니라 국내 영화산업에도 타격이 적지 않을 듯하다”면서 “국내 영화 기대작 상당수가 7~8월에 개봉할 예정이기 때문이다”고 말했습니다. 14일 개봉한 ‘랑종’이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누적 관객 687만명을 모았던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제작한 영화로 입소문을 탔지만, 거리두기 4단계 상향시기와 개봉일이 맞물리면서 직접적인 피해를 면하기 어려워졌습니다.


28일엔 지난해부터 ‘화제작’으로 손꼽혔던 ‘모가디슈(김윤석·조인성 주연)’가 상영될 예정입니다. 다행히 수도권의 거리두기 4단계 유지기간(12일~25일)을 비껴갔지만 안심하기는 이릅니다. 완화 조건(일 신규 확진자 1000명 미만)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4단계 방역수칙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4단계 맞은 7월이 고비

경기영상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사태의 심각성을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개봉 시기를 미루던 대형작품들이 성수기인 7~8월을 개봉일로 잡았다. 이쯤 되면 코로나19가 잦아들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했고, 이들 영화의 흥행 성적에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올해 영화관 산업은 전년보다 힘든 한 해를 겪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나왔습니다. 영화 결말을 두고 토론을 벌이는 소리로 가득했던 로비엔 적막이 가득합니다. 텅 빈 엘리베이터는 한국 영화관 산업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합니다. 코로나19의 그림자 속에서 영화관 산업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아직은 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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