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한옥의 단상

60년이 넘게 하늘을 덮고 있던 기와를 벗겨내자 생명의 뿌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자리의 한옥은 사라지지만 또 다른 건물이 이 땅에 태어날 것이다. [사진=박용준 건축가]
60년이 넘게 하늘을 덮고 있던 기와를 벗겨내자 생명의 뿌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자리의 한옥은 사라지지만 또 다른 건물이 이 땅에 태어날 것이다. [사진=박용준 건축가]

우리는 언제부터 한옥을 한옥이라 불렀을까. 서양문화가 들어오기 전까지 모든 집은 기와집, 초가집 등등이었을 텐데 말이다. 기록을 찾아보니, 1907년 대한제국 시절의 한 문헌에서 한옥이란 단어가 처음 나온다.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등재된 건 1975년의 일이다. 한옥이란 말을 사용한 게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 한옥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숱한 지자체가 한옥체험관을 만들었거나 조성하고 있는 걸 보니, 언젠가 한옥이 없어질 것 같다는 걱정도 든다. 얼마 전 난 그런 한옥 한채를 철거하고 왔다. 묘한 감정이 스쳤다. 

건물 위에서 바라본 창신동 일대. 높은 곳에서 보면 한옥의 구조인 'ㄷ'자 형태와 'ㅁ'자 형태가 잘 드러난다. [사진=오상민 작가]
건물 위에서 바라본 창신동 일대. 높은 곳에서 보면 한옥의 구조인 'ㄷ'자 형태와 'ㅁ'자 형태가 잘 드러난다. [사진=오상민 작가]

■일의 시작 = ‘부웅~.’ 휴대전화 진동이 울린다. 얼마 전 알게 된 같은 동네에서 일하는 건축가분의 전화다. 단독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던 한옥을 철거하기 위해 ‘철거공사감리자’를 구하고 있다고 한다. 바쁘게 하던 일이 있긴 했지만 사무실에서 가까운 위치인 데다 단층건물이라서 감리를 하기로 하고 자료를 받는다.

먼저 건축물대장으로 해체할 건물의 현황을 확인한다. 건물을 처음 지었을 때의 기록은 없다. 1959년 소유권 이전이란 기록만 남아있다. 최소 60년 이상 나이 먹은 오랜 건물이다. 한옥이니 당연히 목조주택이고, 연면적 42㎡(약 13평) 정도의 작은 건물이다.

이번에는 현장답사 전 포털사이트 지도로 위치를 확인한다. 동대문역에서 직선거리 130m로 종로에 가깝다. 로드뷰로 건물을 확인하려 하니 골목이 좁아 골목 안에서 건물을 정면으로 본 사진은 없다. 창신동 골목은 산 아래도 좁고 복잡하다. 골목 입구에서 골목 안쪽이 보이는 사진 속에서 현장 건물이 살짝 보인다. 이번에는 로드뷰로 골목 주변을 확인해본다. 곱창골목, 동네 산책하며 몇번 지나갔던 골목 중 한곳이다.

밖에서 문이 잠겨있다. 이곳에 더는 사람이 살지 않나 보다. 언젠가 이 한옥도 사라질 것이다. 대문에 저 아름다운 문양들은 누가 새겨놓은 것일까? 한옥의 대문은 단순한 출입의 목적을 넘어선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자리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밖에서 문이 잠겨있다. 이곳에 더는 사람이 살지 않나 보다. 언젠가 이 한옥도 사라질 것이다. 대문에 저 아름다운 문양들은 누가 새겨놓은 것일까? 한옥의 대문은 단순한 출입의 목적을 넘어선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자리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현장 가는 길 = 저녁 식사 시간쯤, 현장 조사도 하고 식사도 할 겸 사무실을 나선다. 간단하게 식당에서 밥을 먹고 현장으로 향한다. 한여름이라 그런지 저녁밥을 다 먹었는데도 밝다. 창신길을 내려가다 곱창골목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선다. 돼지곱창의 꾸덕꾸덕한 냄새, 빨간 양념 향기가 20대 초반 재수·삼수하던 노량진 곱창집을 떠올리게 한다.

곱창을 볶고 있는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친다. 가게로 들어올 손님인지 아닌지 날 훑어보는 느낌이다. 나도 아주머니를 쳐다본다. 코로나19와 뜨거운 여름 날씨 속 불판 앞에서 연장을 든 모습이 삶의 전쟁에 임하는 전사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은 불판 앞에서 요리하며 가족을 지키고 키워냈을 것이다. 

화분에 뿌리 내린 담쟁이가 벽을 타고 올라간다. 생명의 푸르름이 처마의 초록과 동색이다. 골목에서 마주한 오래된 한옥은 세련되지 않아도 생명이 깃든 모습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화분에 뿌리 내린 담쟁이가 벽을 타고 올라간다. 생명의 푸르름이 처마의 초록과 동색이다. 골목에서 마주한 오래된 한옥은 세련되지 않아도 생명이 깃든 모습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현장 = 곱창골목을 지나 우측 골목길로 들어선다. 골목 중간쯤 로드뷰에서 봤던 철거될 한옥이 보인다. 건물 앞에 선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집을 훑어본다. 커다란 방수천으로 덮은 한옥 지붕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도로 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벽은 수십 년간 보수를 한 듯 시멘트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반대편 벽에는 자판기가 박제돼 있다. 파란색 철문 위 건물 안쪽을 들여다본다. 건물 내부는 온통 쓰레기가 가득하고, 일부는 벌써 무너질 듯 기울어 있다. 생각보다 열악한 현장에 ‘괜히 하기로 했나’란 생각이 잠시 스친다. 

사무실에 돌아와 현장조사 기록을 남긴다. 그러다 문득 동네에 오래도록 있던 한옥이 사라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집이란 것이 원래 지어지고 사라지는 것이지만, 한옥이 사라지는 속도는 유독 빠른 듯하다. 

해체를 앞둔 한옥의 모습. [사진=박용준 건축가]
해체를 앞둔 한옥의 모습. [사진=박용준 건축가]

■한옥 이야기 = 한옥을 정의한다면 한민족이 우리 땅에서 오래도록 짓고 살았던 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땅에 한옥만 있을 때는 재료에 따라 기와집·초가집·너와집 등으로 불렸다. 그러다 다른 형태의 집인 서양 형식의 집(건물), 이를테면 양옥이 우리 땅에 지어지며 ‘한옥’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을 것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한옥이란 단어가 처음 발견된 건 1907년 대한제국 시기였다고 한다. 다만, 일제강점기에도 한옥이란 단어는 잘 쓰이지 않았고 조선주택·조선집·한식집이라는 단어가 오래도록 혼용돼 쓰였던 것 같다. 그러다 한국전쟁 이후 1960년, 1970년대를 지나며 현대적인 형태의 건물이 한옥을 대체하게 되면서 국어사전에 ‘한옥’이 등재됐다(1975년).

생각해보니, 해체될 한옥의 나이는 60살 이상이다. 이 집을 지을 때만 해도 한옥이라 불릴 필요도 없는 평범한 집이었을 게 분명하다. 주변 건물도 대부분 비슷한 모양의 집이었을 것이다. 가장 평범했던 집이었는데, 시간이 흘러 주변의 건물들이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면서 도시한옥이라 불리게 됐다는 얘기다. 

도심 속 한옥은 영화에서나 보는 것처럼 으리으리한 모습이 아니라 삶의 공간이다. 복잡한 전깃줄, 기와 사이로 보이는 시멘트의 모습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옥의 단면을 보여준다. [사진=오상민 작가]
도심 속 한옥은 영화에서나 보는 것처럼 으리으리한 모습이 아니라 삶의 공간이다. 복잡한 전깃줄, 기와 사이로 보이는 시멘트의 모습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옥의 단면을 보여준다. [사진=오상민 작가]
도심 속에서 한옥을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창신동에는 아직 동네 곳곳에 한옥들이 남아있지만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도심 속에서 한옥을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창신동에는 아직 동네 곳곳에 한옥들이 남아있지만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철거 = 현장을 탐방한 지 며칠 후, 철거공사를 시작했고 단 이틀 만에 철거가 끝났다. 70년이 넘는 집의 역사와 이 집에 살았던 가족들의 기억의 무게를 생각하면 소멸의 시간은 찰나 같다. 이제 이 건물의 흔적은 집주인 가족들의 추억과 몇장의 사진뿐이다. 

그렇게 또 한채의 한옥이 사라졌다. 오늘도 어디선가 또다른 한옥이 사라지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사람이 사는 한옥이 없어질 날이 오는 건 아닐까. 근래 한옥체험관 같은 곳이 지자체 주도로 세워지고 조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체험관이 생긴다는 의미는 한옥이 점점 없어져서 평소에는 경험할 수 없다는 이야기 같아 서글픈 느낌이 든다. 

해체 공사 중인 한옥에 앙상한 기둥만 남았다. 긴 세월 이 집에선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오갔을까. [사진=박용준 건축가]
해체 공사 중인 한옥에 앙상한 기둥만 남았다. 긴 세월 이 집에선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오갔을까. [사진=박용준 건축가]
지난 60년 넘게 자리를 지켰던 한옥은 단 며칠 만에 사라졌다. 빈자리는 다시 무엇으로 채워질까. [사진=오상민 작가]
지난 60년 넘게 자리를 지켰던 한옥은 단 며칠 만에 사라졌다. 빈자리는 다시 무엇으로 채워질까. [사진=오상민 작가]

이곳 창신동에는 아직 골목골목마다 한옥이 많다. 문화재적 가치는 없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진짜 집으로서의 한옥이다. 다음부터 골목길을 걷다 한옥을 만나면 조금 더 주의 깊게 관찰하고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언젠간 이 골목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테니까…. 

글 = 박용준 보통사람건축사사무소 건축사 
opa.lab.02064@gmail.com 

사진 = 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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