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자판기 추억편_01

창신동 마을 속 한옥 해체공사 현장, 벽에 박제된 듯 박혀있는 ‘커피자판기’를 발견했다. 마지막으로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셨던 게 언제였는지 생각해본다. 아마도 꽤 오랜 시간 자판기 커피를 잊고 살아온 것 같다. 반가운 마음에 자판기와 그 주변을 살펴본다. 길걷수다, 길에서 만난 커피자판기 첫번째 편이다.

언제부터 이 자리에 있었을까? 벽과 하나가 된듯한 터줏대감 자판기는 한옥 철거와 함께 사라졌다. [사진=박용준 건축가]
언제부터 이 자리에 있었을까? 벽과 하나가 된듯한 터줏대감 자판기는 한옥 철거와 함께 사라졌다. [사진=박용준 건축가]

길에서 만난 커피자판기. 자판기 하나 들어갈 벽과 벽 사이에 기가 막히게 자리를 잡고 있다. 옆의 문과 대칭돼 하나의 세트인 양 자연스럽다. 한옥의 돌벽, 붉은 벽돌, 목재와 배수홈통, 시멘트 바닥과 자판기까지…. 재료와 크기, 색과 용도는 모두 다르지만, 이 조합의 이질감을 느끼기 힘들다. 오랜 시간 그 벽과 주변이 하나 된 듯하다. 

시간은 서로 다른 것을 비슷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10년도 넘게 이 자리를 지킨 듯한 낡고 망가진 커피자판기. 머리 위엔 ‘금성 냉·온 겸용 자판기’라는 자기소개서가 붙어 있다. 그  아래 투명한 아크릴 케이스는 흉측하게 깨져있다.

밀크, 설탕, 블랙커피란 ‘제품’이 쓰여 있는 낡은 버튼은 거칠고 뿌옇다. 동전 넣는 부분은 어디론가 떨어져 나갔다. 군데군데 부식된 몸체는 모진 세월과 풍파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수백개의 스티커와 테이프가 붙었다 떨어진 자국은 온몸이 아픈 할아버지의 등에 새겨진 파스 자국 같다. 여기서 그치면 좋으련만 낡은 커피자판기의 수난 아닌 수난은 이뿐만이 아니다. 음료 반출구는 노란 박스테이프로 꼼꼼하게 막아놨다. 거스름돈 나오는 곳은 구멍이 뻥 뚫려 바람이 드나드는 듯하다.

완전히 망가진 커피자판기. 지금 모습은 남루하기 짝이 없지만 어렸을 적 내 기억 속 커피자판기를 추억하기엔 충분하다. 건물해체 공사 이후 사라진 커피자판기를 생각하며 나와 커피의 추억을 떠올려본다. 

고속도로 졸음 쉼터에서 오랜만에 만난 커피 자판기가 반갑다. [사진=오상민 작가]
고속도로 졸음 쉼터에서 오랜만에 만난 커피 자판기가 반갑다. [사진=오상민 작가]

■ 커피3+프림3+설탕3 = 커피와 나의 첫 기억은 ‘커피 셋, 프림 셋, 설탕 셋’이다. 이른바 ‘삼삼삼’이다. 그때 그 시절을 살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커피계의 오래된 줄임말이다. 그땐 ‘아아(아이스아메리카노)’가 없었다. 

때는 1980년 후반, 내가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이었다. 부모님 친구들이 집에 오면, 가벼운 커피를 내놓는 게 유행 같던 시절이었다. 손님이 오시면 엄마는 자연스럽게 주방에서 물을 끓였다.

그다음 얇고 날렵한 커피잔과 받침을 꺼내 작은 선반에 올린 뒤 조그만 티스푼과 함께 커피를 대접했다. 손님 취향에 맞춰 커피·프림·설탕의 비율, 이른바 ‘삼삼삼’ ‘삼삼둘’을 타서 내기도 하고, 설탕과 프림을 통째로 내놔 기호에 맞게 셀프로 타 마시도록 하기도 했다. 

어른들이 하는 건 모조리 따라 하고 싶었던 나는 그런 커피를 타고 싶었다. 손님 사이에 껴서 혹은 엄마 옆에서 손님들 커피를 타며 나와 커피는 처음 만났다. 물론 그때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커피는 어른들만 마실 수 있는 음료였다. 그러다 처음 커피숍에 간 건 내가 중학생이 됐을 때였다. 

고급스러운 커피잔과 받침에 ‘커피 셋, 프림 셋, 설탕 셋’, 이른바 ‘삼삼삼’ 커피를 마신 게 언제였던가. 일회용 컵, 텀블러, 머그잔 등 커피를 담는 용기도 달라졌다. [사진=오상민 작가]
고급스러운 커피잔과 받침에 ‘커피 셋, 프림 셋, 설탕 셋’, 이른바 ‘삼삼삼’ 커피를 마신 게 언제였던가. 일회용 컵, 텀블러, 머그잔 등 커피를 담는 용기도 달라졌다. [사진=오상민 작가]

■중고등학교 때 커피숍 = ‘사카, 니콜’. 그때 자주 가던 동네 커피숍의 이름이다. 중고등학교 때 성가대 활동을 했는데, 초등부 선생님(당시 대학생)이나 고등부 선배들이 가끔씩 커피숍을 데리고 갔다.

그때만 해도 중학생이 커피를 마시는 건 금기였기에 대신 아이스티
·레몬티·체리티를 마셨던 것 같다. 누군가가 아주 가끔 ‘파르페’라도 주문해주면,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파르페는 어린 나에게 사치스러운 별미였고, 파르페는 커피숍의 꽃 같은 메뉴였다.

커피숍 소파는 편안했다. 앉으면 온몸이 푹 꺼지며 폭신하게 나를 안아줬다. 테이블 위에는 전화기가 있었고, 달달한 음료와 친구가 있었다. 더운 여름엔 에어컨을 맘껏 쐴 수 있었고, 추운 날엔 히터 덕분에 몸을 녹일 수 있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오래도록 나누기에 이렇게 적당한 곳은 없었다. 게다가 여기 오면 어린 마음에 ‘내가 잘사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한번은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는 선배를 보며 나도 커피를 마셔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커피숍이니까 커피를 마셔야 되는 것 아닌가…’ 뭐 이 정도 생각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기본 커피는 비싸지도 않았다. 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내가 커피를 마셔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막상 커피를 주문해 마셔보니, 영 맛이 없다. 사람들은 왜 커피를 마시는 걸까. 그 이후 한참 동안 난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창신동에선 옛날 모습의 ‘커피숍’을 종종 만날 수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과는 매장 분위기나 소비층이 다르지만, 커피를 파는 본연의 기능은 똑같다. [사진=오상민 작가]
창신동에선 옛날 모습의 ‘커피숍’을 종종 만날 수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과는 매장 분위기나 소비층이 다르지만, 커피를 파는 본연의 기능은 똑같다. [사진=오상민 작가]

■자판기 커피의 시작 =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 기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동네 친구와 도서관을 함께 다니곤 했다. 하지만 막상 도서관에 도착하면 자리에 가방을 놓고 공부는 하는 둥 마는 둥이다. 좀 출출해지면 도서관 마당 옆 커피자판기로 가서 레몬차•율무차를 뽑아놓고 ‘토크 콘서트’를 연다. 

누가 뭘 하고, 누구는 누구를 좋아하고, 세상 잡일을 다 참견한다. 말이 콘서트지 실은 ‘수다 한마당’이다. 하하, 낄낄, 킥킥하다 보면 몇시간은 ‘순삭’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도서관 문 닫는 시간이 오고, 난 가방을 싸서 기어 나온다. 가는 시간, 노는 시간, 공부한 시간 비교하면, 상식적으로 집에서 공부하는 게 효율적이다. 

고급커피, 일반커피, 국산차까지 메뉴가 다양하다. 고급커피는 일반커피에 비해 무엇이 다를까. 오늘까지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고급커피, 일반커피, 국산차까지 메뉴가 다양하다. 고급커피는 일반커피에 비해 무엇이 다를까. 오늘까지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그러다 공부 잘하는 친구가 커피를 마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도 커피를 마시면 친구처럼 공부를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도서관 앞 자판기 커피를 마시게 됐고, 그 후로 10년이 넘도록 그 달콤하고 부드러운 자판기 밀크커피를 매일 음미했다. 물론 커피를 마셨다고 내 성적이 그 친구처럼 좋아지는 기적 따윈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글 = 박용준 보통사람건축사사무소 건축사 
opa.lab.02064@gmail.com 

사진 = 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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