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우드가구·더포렛의 따로 또 같이 경영
대기업·의사의 길 내려놓은 父子
회사가 아닌 업을 잇는 가업

아버지의 부름에 아들은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와 가업家業을 이어받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을 다닌 지 1년 반 되던 때였다. 그 아들의 아들은 의사가 되겠다던 목표를 접고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회사를 만들겠다며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1대 율림가구, 2대 쉐우드가구, 3대 더포렛…. 한 집안이 3대째 가구업業을 이어가고 있다. 명함에 새겨진 회사명은 다르지만 가업을 잇는다는 사명감과 책임감만은 꼭 닮은 이희경(63·쉐우드가구 대표)·이민석(33·더포렛 대표) 부자父子를 더스쿠프(The SCOOP)가 만났다.

이희경·이민석 대표에게 서로는 꿈이자, 버팀목이다.[사진=천막사진관]
이희경·이민석 대표에게 서로는 꿈이자, 버팀목이다.[사진=천막사진관]

보루네오, 파로마, 라자가구…. 한번은 들어봤을 법한 국산 가구업체다. 그렇다면 쉐우드가구는 어떤가. 업력業歷이 50여년에 이르지만 소비자들에겐 낯설다. 정작 그들을 향해 ‘가구 잘 만드는 업체’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워주는 건 업계 사람들이다. 왜일까. 그동안 자체 브랜드(쉐우드가구)를 내세우기보다 보루네오·파로마·라자가구 등의 협력업체로 OEM을 주로 해왔기 때문이다.

쉐우드가구의 모태는 율림가구다. 1974년 이형수 대표(2018년 작고)가 설립한 율림가구는 식탁 등 철제 기반의 주방가구를 만들었다. 그의 아들인 이희경 대표(쉐우드가구)는 아버지의 업業을 이어받아 1990년 제성산업을 설립해 소파를 비롯한 거실가구로 사업을 확장했다. ‘로빈 후드처럼 정직하고 정의롭게 가구를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아 ‘쉐우드가구’라는 새 브랜드를 론칭했다. 아버지가 세운 율림가구를 잇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서보겠다는 의지에서였다. 


창업 후 몇년간 회사는 기대 이상으로 잘 나갔다. 쉐우드가구 제품을 취급하는 오프라인 매장이 전국 곳곳에 180여개까지 늘어났다. 현대백화점 등 백화점에도 물건을 납품했다. 내로라하는 가구업체들의 OEM도 맡았다. 한창 땐 연 매출 60억~70억원도 어렵지 않게 올렸다.

그러던 중, 1997년 외환위기가 불어닥쳤다. 힘들게 쌓아올린 회사가 무너지는 덴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98년 회사는 문을 닫았고,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이 대표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 떠나는 직원들 밀린 급여와 퇴직금을 챙겨줬다.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죄책감을 그렇게라도 떨쳐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진 걸 다 내주고 나니 정작 두 아들을 키울 여력이 없었다. 이 대표는 미국에 사는 지인에게 “2~3년만 키워달라”며 두 아들을 맡겼다. 모든 걸 떠나보낸 그는 작은 방에서 아내와 재기를 꿈꿨다. 바닥에서 다시 시작했다. 다만 쉐우드란 이름은 지키기로 했다. “정직하고 정의롭게 가구를 만들겠다”는 그의 의지까지 버릴 순 없었다.

그렇게 이 대표는 2000년 브랜드였던 ‘쉐우드가구’를 법인명으로 내세워 다시 일어섰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지금, 미국 지인의 손에 맡겨졌던 두 아들 중 첫째가 장성해 이 대표가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의 업을 잇고 있다.

✚ 가업家業을 이어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이민석 대표 : “원랜 의사가 되려고 했어요. 학교를 모두 미국에서 다녔지만 의사는 한국에서 하고 싶었죠.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왜 의사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더라고요.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막연한 목표였나 봐요.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공부를 접었고, 입대를 했어요. 제대 후엔 취업할 생각이었고요.”

✚ 그럼, 아버지 회사로 취업을 하신 건가요?
이민석 대표 : “그때까지만 해도 어떤 걸 해야겠단 계획이 없었어요. 그냥 취업이 목표였어요. 그런 절 보며 아버지께서 ‘막연하게 준비만 하지 말고, 아버지 밑에서 일하면서 취업준비를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말년 휴가 때 아버지 회사에서 잠깐 아르바이트를 한 거죠.”


✚ 시작은 아르바이트였다?
이민석 대표: “네. 맞아요. 그런데 그게 생각했던 것보다 재밌더라고요. 전역하자마자 바로 출근해서 일할 정도였으니까요. ‘왜 진즉에 이 일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어서 아버지와 본격적으로 함께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부터 일했으니까 저도 꽤 됐네요.”


✚ 아들이 의사의 꿈을 접는다고 했을 때 말리진 않으셨나요?
이희경 대표 : “오히려 반가웠습니다. 사실 저는 아들이 의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 많은 사람이 꿈꾸는 직업인데 의외입니다.
이희경 대표 : “평소에 자녀들에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요. 하고 싶은 걸 할 때 가장 행복한 법이니까요. 아마 제 눈엔 의사가 되겠다는 아들이 행복해보이지 않았나 봐요.”


이민석 대표 : “생각해보면 의사 이전엔 건축가나 디자이너를 꿈꾸기도 했어요. 어릴 때부터 간접적으로 가구를 많이 접해서 그랬던 거 같아요. 미국에서 생활할 때 가구 하나를 사더라도 유심히 봤던 것 역시 ‘우리 집안은 가구를 하는 집안’이라는 생각이 늘 깔려있었기 때문일 거고요. 그러다보니 금방 일에 적응해서 스며들 수 있었습니다.”

가업을 잇기 전 이희경 대표는 대기업에 다녔다. 1년 반쯤 경력을 쌓았을 때, 아버지(이형수 대표)가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주저 없이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거였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흐른 지금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인 이민석 대표가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

쉐우드가구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믿을 수 있는 가구를 만든다.[사진=쉐우드가구 제공]
쉐우드가구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믿을 수 있는 가구를 만든다.[사진=쉐우드가구 제공]

✚ 쉐우드가구에 와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이민석 대표 : “그냥 말단사원이었어요(웃음).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우리 회사 제품은 뭐가 있나, 다른 곳에선 뭘 만드나…. 이런 걸 보는 게 일이었습니다.”

이희경 대표 : “그때가 한창 온라인사업을 고민하던 때였습니다. 온라인시장에 진입해야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했는데, 제가 컴퓨터에 익숙한 세대도 아니고, 사업장이 파주에 있다 보니 직원 구하기도 쉽지 않았거든요. 그러던 차에 아들이 합류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매출도 신장되고, 온라인사업 방향도 잘 잡아가고 있습니다.”


아들 이민석 대표는 입사 직후부터 쉐우드가구의 ‘온라인 사업’을 전담했다. 지난해 ‘더포렛’이란 별도 회사를 창업한 건 쉐우드가구에서 쌓은 온라인유통 노하우를 더 확장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한 끝에 얻은 결과다.

✚ 더포렛은 어떤 회사인가요?
이민석 대표 : “쉐우드가구가 거실가구 위주라면 더포렛은 침실가구 위주로 제조·유통하고 있습니다. 아직 완벽하게 분리된 건 아니에요. 저도 아직 쉐우드가구에서 부장이라는 직책을 유지하고 있고요. 공생관계라고 보면 될까요? 아직 먼 이야기지만, 더포렛은 가구뿐만 아니라 토털 인테리어를 하는 회사로 키울 생각입니다. 수출도 염두에 두고 있고요.”


이희경 대표 : “사실 더포렛 창업은 제가 옆에서 많이 부추겼습니다.”

✚ 창업을 권유하셨다고요?
이희경 대표 : “본인 의사가 있어서 가능했겠지만, 제안은 제가 먼저 했습니다.”


✚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희경 대표 : “쉐우드가구는 역사가 오래됐지만 다른 브랜드의 협력업체라는 이미지가 컸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브랜드인 ‘쉐우드가구’를 키우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동안 쌓인 이미지를 탈피하는 게 우리에겐 가장 큰 숙제였어요. 아예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까 고민도 했는데, 결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 회사를 창업하는 게 쉐우드가구를 키우는 거라니,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희경 대표 : “아버지, 저, 그리고 아들에 이어 우리 3대가 결국 해야 할 것 ‘쉐우드가구’라는 브랜드를 끌고 가는 겁니다.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서 우리 브랜드를 본격적으로 유통하고, 가구 영역도 확장해보자고 결론을 내린 거죠. 그래서 아들에게 ‘회사를 하나 만들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습니다.”

이희경·이민석 대표는 따로 또 같이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사진=쉐우드가구 제공]
이희경·이민석 대표는 따로 또 같이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사진=쉐우드가구 제공]

✚ 보통 가업을 잇는다고 하면 회사를 물려준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쉐우드가구를 물려주는 게 아니군요.
이희경 대표 : “절대 아닙니다. 쉐우드가구는 제가 은퇴하면 전문경영인 체제로 갈 겁니다. 아들은 아들대로 더포렛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야죠. 우리가 이어가야 할 건 가구업業이지 회사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결국엔 그게 급변하는 가구시장에 대응하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  가구시장의 변화는 많이 느끼시나요?
이희경 대표 : “외환위기 때 무너지면서 직감했습니다. 다시 일어선다 한들 오프라인 사업은 쉽지 않겠다고요. 홈쇼핑에 진출한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이후엔 소비의 축이 점점 온라인으로 기우는 것을 보고 온라인시장에 진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요.”

✚ 최근엔 목돈 들여서 가구를 사지 않고 렌털도 많이 합니다.
이희경 대표 : “가구는 가격대가 높기 때문에 언제든 선뜻 살 수 있는 품목이 아닙니다. 침대 매트리스 같은 경우엔 관리도 꾸준히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요. 이 두 가지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게 렌털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기할부가 가능한 데다 주기적으로 관리도 해주니까요. 앞으로 가구시장 자체가 렌털 쪽으로 흐를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희도 렌털시장에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이민석 대표 : “렌털사업은 계속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론칭 시점을 확정하진 못했는데, 일단 침대와 매트리스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 두가지 품목 다 직접 제작하나요?
이희경 대표 : “침대 프레임은 자체 제작이 가능합니다. 다만, 매트리스는 협력업체에 생산을 맡길 계획입니다.” 

✚ 3대째 가구업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가구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희경 대표 : “정직입니다. 가구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가령, 소파 밑이나 장롱 뒤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만들 때 자칫 소홀할 수 있습니다. 쉐우드가구는 그런 부분에도 좋은 재료를 썼다는 걸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가구를 만들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쓰다 보면 ‘아, 이런 게 좋은 거구나’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


✚ 보이지 않는 곳까지 자신 있게 만든다는 거군요.
이희경 대표 : “지난해부턴 국내에서 생산한 가죽으로, 국내 생산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국내 가죽 장인과 가구 장인이 만드는 가구라는 걸 알리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세계로 수출하는 K-가구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이민석 대표 : “저는 최근에 환경을 해치지 않고 가구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선보인 게 패브릭(fabric·섬유) 라인이죠. 한번에 확 바꿀 수는 없지만, 조금씩 바꿔나가 볼 생각입니다.”

✚ 부자지간이지만 같은 일을 하는 동료이기도 합니다. 어떤 장단점이 있나요?
이민석 대표 : “주위를 둘러보면 자식에게도 절대 뜻을 굽히지 않는 아버지들이 있더라고요. ‘아버지랑 일해서 힘들겠다’고 말하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겠죠? 힘든 부분이 아예 없진 않습니다. 아버지도 괜히 제 눈치를 보실 거고요. 하지만 저는 지금 이 순간도 아버지랑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축복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어디서 이런 귀한 걸 배우겠어요.”

이희경 대표 : “아들이 오기 전까진 우리 회사가 50년이나 돼 간다는 걸 전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합류한 후 3대가 이어가는 가업이라는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아들도 이 자부심을 갖고 잘 이끌어가길 바랄 뿐입니다.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도 늘 명심했으면 합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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