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2009년 밝힌 세가지 구상
2021년 어떻게 실현됐을까

오너 3세 정용진(53) 신세계그룹 부회장. 그는 한국 유통업계의 이단아로 불린다. 신세계그룹을 자신이 꿈꾸는 ‘정용진식 신세계’로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대중과 소통하고 변화와 도전을 즐긴다. 신세계그룹의 사실상 총수로 일해온 지도 어느덧 12년. 그동안 그는 자신의 꿈을 얼마만큼 이뤄냈을까.

정용진 부회장은 자기 색깔이 뚜렷한 오너 기업인이다.[사진=뉴시스]
정용진 부회장은 자기 색깔이 뚜렷한 오너 기업인이다.[사진=뉴시스]

12년 전인 2009년 12월, 41세의 오너 3세 정용진은 신세계 총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발령받았다. 사실상 그룹 총수 발령이었다. 신세계그룹이 오랜 전문경영인 체제를 마감하고 오너 책임경영시대를 연다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당시 언론은 새로 출항한 정용진 신세계호號의 키워드로 ‘오너 책임경영’과 ‘글로벌 유통 톱10’을 꼽았다.

그때를 대비해 정 부회장은 14년(1996~ 2009년)에 걸쳐 소위 경영 승계 수업이란 걸 받았다. 오너 2세인 어머니 이명희 회장과 구학서 부회장 등 쟁쟁한 전문경영인 밑에서였다. 경영권을 승계한 후 그는 12년 동안 ‘정용진식 신세계’를 향해 격랑을 헤쳐가며 숨가쁘게 배를 몰았고, 어느덧 5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2009년 12월 총괄 대표이사 부회장 발령 즈음 그는 공·사석에서 그룹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 3가지로 압축해서 표현하곤 했다. “백화점과 이마트를 함께하는 복합쇼핑몰 도입, 이마트의 글로벌화, 미래형 신성장 업태業態 개발” 등이었다. 2010년 신년사에서 “온라인 사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말도 했다. ‘정용진식 신세계’의 항행航行 목표가 대부분 이때 제시된 셈이다. 

복합쇼핑몰 사업부터 살펴보자. “유통업의 경쟁 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 “유통업의 미래는 업체 간 시장점유율(market share)이 아닌, 고객의 일상을 점유하는 라이프 셰어(life share)에 달려 있다”…. 2016년 9월 정용진의 첫 야심작 ‘스타필드 하남’이 세상을 들썩이게 하며 공식 개장했을 즈음에 그는 이런 말을 세간에 널리 유포했다. 

그가 구상한 지 10여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스타필드 하남’은 ‘정용진식 신세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됐다. 총 1조원 상당이 투자됐던 대규모 쇼핑 테마파크 ‘스타필드 하남’은 신세계그룹의 유통사업 역량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란 평을 들었다. 그가 규모나 스타일 면에서 “세상에 둘도 없는 복합쇼핑몰”이라며 자랑할 만도 했다. 여세를 몰아 이듬해인 2017년 8월, 2호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고양’도 개장했다. 

그에 비해 그가 꿈꿨던 ‘이마트의 글로벌화’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중국 이마트의 사업 전개가 여의치 않자 2017년 5월 기자들 앞에서 “이마트는 중국에서 나옵니다. 완전히 철수할 계획입니다”고 밝혀 충격을 줬다. 착수 20년 만에 중국 이마트 사업 실패를 자인한 셈이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동남아 여타지역(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등) 진출 의사를 내비쳤으나 큰 성공을 거뒀다는 얘기는 그동안 들리지 않았다.

그럼 미래형 신성장 업태業態는 개발하는 데 성공했을까. 앞서 언급했듯 선장 자리에 앉은 후 7~8년 만에 복합쇼핑몰이란 새로운 유통채널 구축에는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오프라인 매장이란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건 숙제였다. 유통 환경이 급변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의 성장성은 날로 둔화됐다. 심지어 뒷걸음질치기까지 했다. 

이런 추세는 코로나19 위기가 몰아닥친 2020년부터 더욱 심화했다. 매장에 가고 싶어도 가기가 힘들었다. 그럴수록 비대면 온라인(인터넷) 거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쪼그라들던 오프라인 시장이 급속도로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으로 넘어갔다. 위기를 맞은 ‘선장 정용진’은 주저하지 않고 신세계호의 항로를 급수정하고 나섰다. 그게 바로 이베이코리아 인수다. 

지난 6월 24일 신세계그룹 이마트는 이커머스 시장의 강자인 이베이코리아 지분 80% (3조4400억원)의 인수자로 결정됐다. 나머지 지분 20%는 이베이 미국 본사가 그대로 갖지만 주인은 이마트가 된다. 인수가격도 엄청나다. 오프라인 복합쇼핑몰 3~4곳을 지을 만한 금액이다. 후속 투자도 불가피해 일부에선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신세계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도전과 모험을 선택했다. 그래서인지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두고 신세계그룹 제2창업에 해당한다는 말까지 흘러나온다. 이마트 측은 “미래 유통에선 온라인 강자만 살아남는다”며 “단순히 기업을 사는 게 아니라 시간과 기회를 사는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정 부회장도 “얼마가 아니라 얼마짜리로 만들 수 있느냐가 의사결정의 기준”이라며 배수진을 쳤다.

업계는 이베이코리아 인수로 신세계가 국내 이커머스 업계 1위인 네이버(시장점유율 약 17%)에 이어 단숨에 업계 2위로 부상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SSG닷컴(쓱닷컴·신세계 온라인 사업 부문) 거래액은 3조9200억원 정도. 업계는 신세계가 3위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면 연간 거래액이 24조원 상당으로 늘고 시장점유율도 15% 정도로 높아져 2위인 쿠팡(점유율 13% 선)을 제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베이 인수로 정용진이 신성장 업태라 여겨왔던 온라인 사업 비중이 신세계 전체에서 약 50%로 높아지게 됐다. 이마트 관계자들은 “이마트는 이미 온·오프라인 사업 경계가 무너진 복합유통채널로 변했는데, 이번 일로 사업 중심축이 온라인 쪽으로 빠르게 이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 1월 26일 이마트를 통해 인천 연고의 야구단 SK 와이번스를 1352억8000만원에 인수해 프로야구에도 발을 들여놨다(3월 30일 SSG랜더스 창단). 툭하면 “유통업의 경쟁 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이라고 말해왔던 그였다. 테마파크는 2곳의 복합쇼핑몰을 통해, 야구장은 SSG랜더스를 통해 그 말을 증명해 보였다.

올 4월 SSG랜더스의 첫 경기를 보고 있는 정 부회장.[사진=뉴시스]
올 4월 SSG랜더스의 첫 경기를 보고 있는 정 부회장.[사진=뉴시스]

정 부회장은 한국 재계에서 자기 색깔이 뚜렷한 특이한 캐릭터의 오너 기업인이다. 50대 중반인데도 2030 못지않게 SNS를 통해 대중과 격의 없이 소통한다. 한국 재계 11위의 재벌 오너 3세지만 때론 ‘용진이 형’이란 이웃 아저씨로 돌변한다. 

인문학 신봉자이기도 한 그는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젊은 MZ세대들과 소소한 일상을 공유한다. 재미보다는 사업을 위해 이런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도 코로나19 위기가 계속된 가운데 재계에서 이래저래 정 부회장만큼 화제를 몰고 온 기업인도 드물다. 향후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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