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관념의 재구성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2019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만 1000만명 이상이 본 영화다. 그런데 일부 관람객은 영화를 보고 나서 불쾌감을 느꼈다고 개인 소셜미디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서울에서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다. 사진은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사진=더스쿠프 포토] 
서울에서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다. 사진은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기생충’에선 고급 주택가의 2층 단독주택에 사는 IT기업 CEO 박 사장 가족과 반지하 집에 사는 김기택 가족의 집이 선명하게 대비되는데, 관객 중 일부가 한동안 살았던 반지하 집에서의 좋지 못한 경험을 떠올렸다.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각 커뮤니티에는 반지하 거주 경험을 얘기하는 이들이 나왔다.

그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영화의 배경인 서울의 반지하에 살까.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8년 전국 가구 수는 1983만인데, 이중 서울에 378만 가구가 살고 있다. 전국의 반지하 주택 거주 가구는 36만이고, 서울에 22만 가구가 있다.

서울 전체 가구의 5.8%가 지금 반지하에 살고 있다는 얘기다. 가구당 평균 세대원은 2.35명이므로 서울에서 반지하에 거주하는 인구는 86만명가량으로 추정된다. 서울시의 전·월세 거주기간은 2년이 안 되니, 지난 10년간 반지하 집에서 살았던 사람은 중복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860만명이다.

1인가구의 재테크를 말하기에 앞서 집 얘기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재테크의 첫 목표는 내집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첫 집을 어떻게 굴리는가에 따라 평생의 재테크가 결정됐다. 

현재 집테크는 다른 모든 재테크 수단의 수익률을 압도한다. 마포구에서 지은 지 10년이 넘은 아파트를 최근의 폭등기가 막 시작되던 2015년에만 샀더라도, 수익률은 약 150%에 달한다. 혹시라도 청약이나 분양권, 입주권을 샀더라면 최소 200% 수익률이다.

 

마포구 공덕동에서 둥지를 틀고 있는 공덕 파크자이 113m² 평형(약 34평형)은 당시 입주권이 분양가 이하인 6억원대에 거래됐지만, 지금은 18억원에 실거래되고 있다. 적금·예금·펀드·금은 말할 것도 없고, 말 많고 탈 많은 브라질·베네수엘라 채권을 4년 동안 최고의 리스크를 떠안고 투자하더라도 절대 이룰 수 없는 수익률이다.

1인 가구 재테크의 1원칙이 소비의 재구성이었다면, 실전편은 2000년대 이후 세번에 걸쳐 있었던 부동산 급등장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집은 사는 곳이고, 노년에 주택연금으로 활용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1인가구의 행복도는 상당히 올라갈 수 있다.

덴마크 관련 정보 포털 ‘네이키드 덴마크(NAKED DENMARK)’는 “행복해지고 싶다면 연봉보다 주거 만족도를 올려라”고 조언한다. 이 포털은 2018년에 영국 유통업체 킹피셔(King fisher)가 덴마크 행복연구소에 의뢰해 집과 행복도의 관계를 분석한 자료를 모은 ‘좋은 집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 10년 서울 반지하에 산 860만명


덴마크 행복연구소가 2018년 영국·프랑스·덴마크 등 유럽 10개국에서 1만3489명(국가당 최소 1000명 이상)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전문가 78명을 인터뷰한 결과, “집에 만족한다”는 응답자 중 73.0%는 “자신의 인생에도 만족한다”고 밝혔다. 

전체 행복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집이 차지하는 비중은 15.0%였다. 이는 정신 건강(17.0%)에 육박하고, 신체 건강(14.0%)보다 더 높으며, 소득(6.0%)보다도 두배 이상 높은 비중이다. 다만 덴마크 행복연구소 연구진은 ‘좋은 집’이 자가와 임대 여부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마찬가지로 집 크기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집의 관념을 바꾸면 1인 가구의 행복도는 상당히 올라갈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집의 관념을 바꾸면 1인 가구의 행복도는 상당히 올라갈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집에 만족하는 덴 집 크기보다 거주자가 충분한 공간이라고 느끼는지가 3배 이상 중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다른 사람을 집에 초대해서 공간을 공유하고, 월세나 자가에 무관하게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공간으로 만들면 만족도가 더 커질 것이라고도 조언했다.

하지만 ‘집이 자산의 대부분’인 한국에서 월세나 자가에 무관해지기란 쉽지 않다. 집을 사는 데 빚을 많이 졌기 때문이다. 2018년 가구당 평균 금융자산은 1억512만원이었고, 가구당 평균 부채가 7531만원이었다. 부채를 정리하면 가구당 평균 가용현금은 3000만원이 안 된다. 혹시 실직이라도 하면 산술적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이 너무 짧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2019년 4월 조사한 조기 은퇴자의 재취업 구직 및 재직기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된 일자리를 그만둔 후 1차 구직에는 5.8개월, 2차 구직엔 4.7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재취업 재직 기간은 19개월에 불과했다. 정규직 비율은 이전 직장 평균 89.2%에서 40%대(재취업 직장)로 반토막 났고, 평균 월 소득도 426만원에서 1차 재취업 269만원, 2차 재취업 244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덴마크에선 그 전에 얼마 동안 일했는지 상관없이 최대 2년간 주정부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네이키드 덴마크’에 따르면 1990년대에 도입한 다그펭에(Dagpenge: unemployment benefits)는 ‘일일 생활비’란 뜻의 덴마크어로 정부가 실업자에게 제공하는 돈을 뜻한다.

매월 실직 전 3개월 평균 임금 대비 75~90%를 받는다. 월세와 자가를 굳이 따지지 않고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친구와 이웃을 집으로 초청만 해도 행복할 수 있으려면 이 정도의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한 셈이다.

집이 재테크가 되면 인생은 어디로 가나

다시 영화 ‘기생충’으로 돌아가 보자. 지하방·옥탑방·고시원을 ‘지옥고’라고 부른다. ‘반지하’에서 거주하는 김기택 가족과는 달리 지하방을 포함한 지옥고에 사는 사람들은 1인가구가 많다. 

학술지 「보건사회연구」에 2019년 10월 실린 ‘청년가구의 주거빈곤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만 19~34세 가구주 233명 중 8.9%가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한 곳에서 살았고, 24.7%는 주거비가 월 소득의 20%를 초과하는 주거비 과부담이었다. 최저 주거기준에도 못 미치는데도 주거비가 과부담인 가구는 33.1%에 달했다. [※참고: 국토교통부는 13.9㎡(약 4.2평)짜리 집에 부엌을 포함해 방이 1개 이상인지를 최저 주거기준으로 삼고 있다.]

최근 4년 내 생애 첫 주택을 구입한 사람의 평균 연령은 40세가 넘는다. 2018년 43.3세였고, 2019년 42.8세였다. 집을 재테크로 생각하면 그 전의 모든 경제활동은 종잣돈 모으기 정도에 불과하다. 집을 사기에 앞서 살았던 많은 집에서의 추억이 불쾌감이어서는 곤란하다. 그건 인생을 부정하는 일이다. 집은 살아가는 곳이다. 

한정연 경제칼럼니스트  
jayhan090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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