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쓰는 소비학

2015년 한 미국 신문의 서울지국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한 증권사 임원에게 ‘월급 200만원 이하인 직장 초년생을 위한 재테크’에 대해 외고를 써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답이 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보니 ‘무슨 주제든 확실히 마감하기’로 유명했던 이 임원의 난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월 200만원을 벌면, 재테크를 할 수가 없어요.” 그럼 어쩌란 말인가. 

구독서비스를 조금 줄이는 건 좋은 재테크 전략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구독서비스를 조금 줄이는 건 좋은 재테크 전략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15년 기준으로 1인가구의 중위소득은 156만원이었다. 중위소득은 100명 중 50번째 사람의 소득이다. 1인가구의 절반 이상은 재테크를 할 수 없었다. 6년이 흐른 2021년은 어떨까. 최저임금을 끌어올리긴 했지만, 여전히 200만원에 못 미치는 182만원이다. 

나는 평범한 1인가구의 경제라는 주제로 지난해 두권의 책을 냈다. 「혼자여서 완벽한 사람들」과 「혼자지만 아파트는 갖고 싶어」다. ‘오직 돈, 더 많은 돈’이라는 사회 분위기가 가히 절정에 이르던 때, ‘더 벌 생각 말고, 덜 쓸 생각을 하자’는 요지의 책을 내다보니, 항상 불안했었다. 

몇 곳의 매체, 재테크 유튜버들과 인터뷰를 할 때도 편치 않았다. 어떤 곳은 인터뷰가 끝날 때쯤에야 “그럼 이건 재테크라고 보기는 힘들겠네요?”라고 질문을 했고, 그 인터뷰는 사장됐다. 

그런데 1인가구의 경제를 2인·4인가구들과 한데 묶어서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다. 노력하고 운도 따라서 좋은 직장에 취업했다고 해도, 그 직장에서 돈과 힘을 더 갖기 위해 벌이는 레이스에서 승리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1인가구의 독특한 생애 지출 주기와 재테크를 하지 않음에서 오는 당당함이나 자유가 사회를, 직장을, 정치권력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 내 레이스에서 승리하는 데 필요한 자질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단어들이다. 

수입이 그대로라고 했을 때 소비의 재구성을 1인가구 경제의 핵심으로 제안하는 이유다. 법을 지키고, 사회 윤리를 지키고, 여기에 개인의 양심까지 지키는 데 관심이 있다면, 수입과 지출 두 기둥으로 움직이는 경제 시스템에서 수입은 일단 두고 지출을 건드려 보자.

통계청 산하 통계개발원이 2017년 발표한  ‘솔로 이코노미 분석’ 보고서는 소비의 측면에서 1인가구 증가를 분석했다. 결론적으로 보통의 1인가구는 소득이 적기 때문에 식비와 같은 필수 소비가 많아 저축하기 힘들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요지다.

“1인가구의 증가는 전체 소비 규모의 증가보다 소비 지출 형태의 변화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데,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60세 이상 고령층 1인가구의 평균 소비성향은 가장 높은 수준이나, 이들은 낮은 소득 수준 대비 필수 소비지출 비중이 높아 소득 대부분이 소비로 이어져 삶의 질이 낮다. 20대 및 50대 1인가구는 2인 이상 가구보다 평균 소비성향이 높은데, 이는 자아실현 욕구가 높은 20대와 충분한 경제력을 갖춘 50대 남성들이 자기 지향성이 강한 소비구조를 가지기 때문이다. 30대 및 40대 2인 이상 가구는 1인가구에 비해 평균 소비성향이 더 높고 변동성이 작은데, 이는 높은 교육비 지출에 기인한다.” 

비혼·미혼족(이하 비미족) 1인가구의 재테크는 돈이 가장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되는 교육비 지출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서 출발하는 게 좋다. 전문가들이 1인가구 재테크와 관련해서 해주는 조언들은 2인·4인가구를 위한 재테크 충고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조언은 연봉이 2000만원만 넘어도 은행에 10억원을 넣어두고 받는 1년간 이자와 같은 수준이니까 하여간 계속 일을 하라는 거다. 

그럼 종잣돈 격인 10억원이라는 자산, 이를테면 ‘나’는 언제까지 돈을 벌어다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직장인들이 주된 직장, 즉 그나마 가장 월급을 많이 주던 직장에서 퇴직하는 시기는 그리 멀지 않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2019년 4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나이가 50~60세인 직장인은 평균 54.5세에 주된 직장에서 퇴직했다. 2017년 3월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평균 퇴직 연령은 49.1세로 더 짧게 예측된다.

재테크 충고의 예로 나온 개인의 몸값 ‘10억원’도 그냥 나온 얘기는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직장인 10억원 모으기가 유행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한 부동산 재테크 서적에서는 “연 금리가 10%이던 시대에는 10억원이 부자의 기준이었다”고 설명한다. 정의는 없지만, 10억원이 여간해서 갖기 힘든 액수라는 건 사실이다.

조기은퇴 목표금액의 허구

KB국민은행이 발표하는 부동산 시세를 보면 2000년 당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140㎡(약 43평형) 가격이 5억7000만원이었다. 10억원은 이 아파트를 두채가량 소유할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2016년엔 한채에 20억원, 2020년에는 32억원으로 올랐다. 우연의 일치인지, 요즘에는 ‘직장인 30억원 모으기’란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2000년대 초반에 직장생활을 시작해 20년 만에 진짜 10억원을 모았다면, 이제는 30억원을 모아야 하니 돈 모아서 은퇴한다는 말은 그저 신화 같은 얘기다.  

상황이 이러하니 재테크를 하는 1인가구는 목표금액을 두지 않는 게 좋고, 하지 못하고 있다면 소비 절약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 게 좋다. 목표금액이 존재하는 한 비미족의 사회생활은 불안과 공포가 지배한다. 

1인가구가 재테크 전략을 짤 땐 덜 쓰는 쪽에 초점을 맞추는 게 좋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인가구가 재테크 전략을 짤 땐 덜 쓰는 쪽에 초점을 맞추는 게 좋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러니까 소비 항목을 잘 살펴보자. 가장 먼저 습관적인 지출항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온갖 구독서비스들이 다 있다. 식료품, 디지털 콘텐츠, 심지어 면도기·속옷 등 생활용품까지 떨어질 때쯤 자동으로 가져다주는 서비스들이다. 물론 돈도 자동으로 나간다. 최소한의 저항, 아주 작은 저항 정도는 해보면 어떨지. 자동이체를 10건 하다 보면 2~3건은 줄어들 수도 있다. 불편함의 힘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가장 큰 투자는 자기 자신을 위한 투자’라는 이상한 신화에 자주 노출되고 있다. 이 투자란 사실상 회사 내에서 쓰이는 직무능력을 위한 투자다. 30대는 한창 일이 재미있을 나이다. 직업을 통한 성취감은 때로 여러 가지를 희생하게 만든다. 직무능력을 가르치겠다는 고가의 학원들이 많다. 업무를 익히는 것까지 사교육에 맡길 필요는 없다. 나 자신을 위한 투자, 물론 필요하다.

그런데 과연 10년 후, 20년 후의 나에게 하는 투자인지 정도는 따져봤으면 좋겠다. 자신의 인생에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를 알면, 인생을 위한 투자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있다. 

한정연 경제칼럼니스트  
jayhan090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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