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먹거리 찾아나서는 종합상사
망고부터 렌터카까지 사업 다양해
안정적 실적 내기까진 갈 길 멀어

렌터카ㆍ망고농장ㆍ팜오일ㆍ풍력발전…. 유사성을 찾기 힘든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수출 역군’이란 화려한 명예를 내던진 종합상사들이 선택한 새 먹거리라는 점이다. 냉혹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환골탈태를 선언한 이들은 과연 부활할 수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종합상사 신사업의 중간 성적표를 살펴봤다.

제조사들이 직수출에 나서면서 종합상사들의 입지가 위축됐다.[사진=연합뉴스]
제조사들이 직수출에 나서면서 종합상사들의 입지가 위축됐다.[사진=연합뉴스]

한때 수출 역군으로서 한국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종합상사’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건 오래전 일이다. 상사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직접 수출하는 제조사가 늘어나자 상사의 역할이 축소됐다.

급기야 2009년엔 수출 장려를 위해 도입했던 종합무역상사 제도마저 폐지되면서 2000년 815억 달러에 달했던 7대 종합상사의 수출 실적은 10년 만에 267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종합상사가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선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참고: 7대 종합상사는 현재 사명 기준으로 포스코인터내셔널, 삼성물산, SK네트웍스, 현대코퍼레이션, LX인터내셔널, 효성티앤씨, GS글로벌을 말한다. 5대 종합상사는 효성티앤씨와 GS글로벌을 제외한 나머지 5개 기업을 뜻한다.]

종합상사들은 그사이 팔색조 변신을 꾀했다. 단순 ‘트레이딩’ 비중을 줄이는 대신 그 자리를 새로운 사업들로 채웠다. 예컨대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천연가스 개발ㆍ생산에 나섰고, SK네트웍스는 차량ㆍ가전 렌털 시장에 뛰어들었다. 팜(palm) 사업에 손을 뻗은 LX인터내셔널도 있다. 그렇다면 환골탈태를 선언한 종합상사들은 신사업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을까.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철강ㆍ에너지ㆍ식량을 3대 핵심 육성 사업으로 선택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는 건 에너지사업 부문의 ‘미얀마 가스전’이다. 2000년 미얀마와 손을 잡고 가스전 개발사업에 뛰어든 포스코인터내셔널(당시 대우인터내셔널)은 2004년 가스전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사업의 성과가 가시화한 건 그로부터 9년이 흐른 2013년부터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그해 7월 미얀마 가스전에서 추출한 가스의 판매를 시작했고, 2017년과 2019년 각각 2ㆍ3단계 개발에 돌입했다. 

실적도 제법 쏠쏠하다. 가스 판매를 시작한 2013년 1546억원에 불과했던 에너지사업 부문의 매출은 지난해 1조4125억원으로 9배가량 증가했다. 심지어 지난해 2157억원의 순이익(법인세 차감 전)을 거뒀는데, 포스코인터내셔널에서 에너지사업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6.6%지만 순이익 비중은 무려 65.9%에 달했다. 

아울러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식량사업에서도 성과를 내기 위해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11년 9월 인도네시아 팜농장, 2017년 1월 미얀마 미곡종합처리장을 인수했고, 2019년 12월엔 우크라이나에 곡물수출터미널을 지었다. 그 결과, 지난해 식량소재사업(식량 외 자동차부품ㆍ비철소재 포함)에서 매출 7조2792억원, 영업이익 230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포스코인터내셔널 측은 “안정적인 식량 취급량이 확대되면 수익성이 향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물산은 신재생 에너지를 신사업으로 꼽았다. 캐나다 온타리오에 풍력ㆍ태양광 발전단지를 조성한 건 대표적 행보다. 여기에 6조원가량의 사업비를 쏟아부었다. 2010년 온타리오 주정부와 계약을 맺고 2014년부터 2018년까지 1369㎿ 규모(풍력 1069㎿ㆍ태양광 300㎿)의 발전단지를 차례로 완공했다. 삼성물산이 올 상반기 에너지사업으로 올린 매출은 1470억원이다. 같은 기간 삼성물산 상사 부문의 전체 매출이 8조원가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에너지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다. 

그럼에도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 신사업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온타리오에 20년간 전력을 공급하기로 계약을 체결해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화학ㆍ철강 등과 달리 원자재 가격의 변동성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다.”


LX인터내셔널도 포스코인터내셔널과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에서 팜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2009년 팜 사업에 뛰어들어 3년 뒤인 2012년 10월 팜오일 생산 공장을 준공했다. 2018년 9월엔 팜농장 2곳을 추가로 인수했다. 

팜오일은 식품이면서 동시에 친환경 연료로도 쓰인다. 중국과 동남아를 중심으로 소비량이 증가하고 있고, 바이오디젤 혼합 의무화 정책을 펼치는 곳이 증가하고 있어 팜오일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팜오일 가격이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는 점도 LX인터내셔널엔 긍정적이다. 지난해 7월 톤(t)당 70만원가량이었던 팜오일 가격은 올해 들어 100만원을 훌쩍 넘겼다. 

여기에 원자재 가격 상승ㆍ물동량 증가라는 호재까지 맞물려 에너지ㆍ팜 사업의 올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0.6% 증가한 1조54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LX인터내셔널 전체 영업이익의 20.5% 수준인 490억원을 달성했다. 최근엔 2차전지 핵심 원료 중 하나인 니켈광 개발에 나서겠다는 뜻도 밝혔다. 

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는 2015년부터 캄보디아에서 망고농장을 운영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는 2015년부터 캄보디아에서 망고농장을 운영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현대코퍼레이션이 역점을 두고 있는 신사업은 식량과 에너지, 전기차 부품이다. 그중 식량 사업인 망고농장은 현대종합상사(현대코퍼레이션의 전신)의 신사업ㆍ브랜드사업이 인적분할해 설립된 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가 맡고 있다. 2015년부터 캄보디아에서 망고농장을 운영해왔는데, 2017년 2억원에 불과했던 첫 매출이 지난해 11억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순손실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에너지와 전기차 부품 사업에서도 아직 별다른 성과를 내진 못하고 있다. 에너지사업에선 야심차게 나선 예멘 LNG 가스전 개발 사업이 2015년 중단된 채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고, 전기차 부품 사업은 이제 막 발을 내디딘 단계다. 신사업에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SK네트웍스는 종합상사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변신을 꾀한 곳이다. 다른 4개 기업은 트레이딩 전문가로서 쌓은 역량과 노하우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사업을 새 먹거리로 삼았지만 SK네트웍스는 다르다. 트레이딩과 크게 관계없는 차량ㆍ가전 렌털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삼았다.

2009년 차량렌털 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SK네트웍스는 2014년 SK렌터카를 론칭했고, 2018년엔 렌터카시장 3위 사업자인 AJ렌터카를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2016년엔 동양매직(현 SK매직)을 사들이며 가전렌털 시장에 진출했다. 트레이딩 전문가에서 렌털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한 셈이었다. 

공격적인 투자에 힘입어 SK네트웍스의 신사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2013년 1794억원이었던 SK렌터카의 매출은 지난해 1조5617억원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시장점유율도 6.0%에서 20.0%로 치솟았다. SK매직의 매출도 2016년 455억원에서 지난해 1조923억원으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그사이 트레이딩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글로벌 사업부의 매출은 2013년 6조9551억원에서 지난해 2조4102억원으로 줄었다. 물론 긍정적인 성과만 있었던 건 아니다. SK네트웍스는 렌털사업 이전에 육성 중이었던 면세점사업과 패션사업에서 잇따라 실패의 쓴맛을 봤다.

이처럼 팔색조 변신을 꾀한 종합상사 중엔 성과를 내고 있는 곳도 있고, 쓴잔만 마시는 곳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초반전이다. 끝내 누가 웃고 누가 웃을진 알 수 없다. 그들의 여정은 지금부터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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