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사 이름에서 상사 사라져
돈 되는 사업에 손 뻗는 종합상사
개척자 종합상사 역할 중요해져

세계 경제는 지금 변곡점에 서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친환경ㆍ스마트화를 중심으로 산업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중국시장 리스크가 커지면서 이머징마켓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변곡점에서 종합상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공산이 크다. 신사업ㆍ신시장을 개척하는 종합상사의 능력이 빛을 발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인지 최근 국내 종합상사들이 ‘상사’ 간판을 떼고 한판 승부를 벼르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상사 뗀 종합상사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종합상사들이 단순 트레이딩 사업 비중을 줄이고 고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신사업 발굴에 나서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종합상사들이 단순 트레이딩 사업 비중을 줄이고 고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신사업 발굴에 나서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라면에서 미사일까지, 이쑤시개에서 인공위성까지’. 종합상사를 설명할 때 늘 회자되던 슬로건이다. 일본 종합상사의 캐치프레이즈에서 유래된 말인데, 사업 영역에 제한을 두지 않고 돈 되는 건 무엇이든 한다는 뜻이다. 뒤집어 말하면, 종합상사의 영업능력과 통찰력, 행동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말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종합상사가 주목을 받은 건 1970년대부터다. 1975년 정부가 수출을 장려할 목적으로 종합무역상사 제도를 도입하면서 본격적인 ‘상사商社 시대’가 열렸다. 종합상사는 제조업체를 대신해 수출 첨병 역할을 톡톡히 했고, 트레이딩 전문업체로 발돋움했다. 한때 종합상사들의 수출 실적이 우리나라 총 수출액의 절반을 웃돌 정도로 그 위상은 대단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종합상사는 엄밀히 말해 ‘돈 되는 건 무엇이든 하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이들의 업무는 대부분 ‘중개무역’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해외 영업망을 갖추고 직수출을 하는 제조업체가 늘자 종합상사의 수출 비중이 뚝 떨어진 건 그 때문이다. 2009년엔 종합무역상사 제도도 폐지됐다. 종합상사의 역할은 점차 축소됐고, 종합상사 무용론과 사양론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이런 위기의 순간 종합상사에 필요한 건 변화였다. 살아남기 위해선 단순히 수출입을 중개하는 ‘거간꾼’이 아닌 새로운 사업 기회와 시장을 발굴하는 ‘개척자’가 돼야 했다. 종합상사들은 신사업을 찾아 나섰고 환골탈태를 택했다.

무엇보다 수출 대행 수준에 그쳤던 트레이딩을 줄였다. 대신 ‘오거나이징(Organizing)’ 사업을 강화했다. 오거나이징은 발전소ㆍ플랜트 등의 프로젝트를 기획ㆍ발굴하는 걸 말한다. 이 과정에서 종합상사는 적합한 사업 파트너를 찾고, 자금을 조달하며, 때론 완공된 발전소ㆍ플랜트를 직접 운영하는 등 프로젝트 전반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오거나이징 사업은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고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지만 그만큼 정보수집ㆍ금융조달ㆍ네트워크ㆍ창의력 등에서 높은 역량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는 사이 국내 종합상사들의 사업 아이템도 달라졌다. 광물ㆍ에너지 자원부터 식량, 자동차 부품, 렌털 서비스까지 다양하다. 예컨대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미얀마 가스전을 개발해 천연가스 생산에 나섰고, 삼성물산은 캐나다에 풍력ㆍ태양광 발전단지를 세웠다.

LX인터내셔널은 팜오일을 만들기 위해 인도네시아에서 팜농장을 운영 중이다. 현대코퍼레이션은 LNG와 망고사업(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 운영)에 뛰어들었고, SK네트웍스는 철강 트레이딩 사업의 종료를 선언하고 차량ㆍ가전 렌털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최근엔 사업 영역을 더욱 넓히고 있다. LX인터내셔널은 2차전지 소재로 쓰이는 니켈ㆍ리튬을 신사업으로 꼽았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전기차 부품인 구동모터코어의 판매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밖에 헬스케어, 폐기물ㆍ폐배터리 처리 등 다양한 신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택했다. 

국내 종합상사들이 ‘돈이 될 만한 사업’을 찾기 시작했다는 얘기인데, 최근 들어 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종합상사라는 ‘탈’을 아예 벗어던진 것이다. 국내에 ‘상사’ 이름을 건 종합상사가 1곳도 남지 않은 건 단적인 예다. 현대종합상사와 LG상사가 마지막까지 상사 간판을 내걸고 있었지만 지난 3월과 7월 각각 현대코퍼레이션과 LX인터내셔널로 사명을 바꿨다.[※참고: 현재 남아있는 국내 종합상사는 포스코인터내셔널, 삼성물산, SK네트웍스, 현대코퍼레이션, LX인터내셔널, GS글로벌, 효성티앤씨 등 7곳이다. 이들 중엔 종합사업회사를 자처하는 곳도 있다.]

사공목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종합상사의 기능이 중개무역을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됐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자원개발 등 해외의 장기ㆍ대형 프로젝트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일반 기업이 하기 힘들다. 종합상사는 일반 기업이 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오거나이징 능력을 발휘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 없다가도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드는 게 종합상사의 일이다. 종합상사가 수출 대행이나 한다는 건 옛날 얘기다.”

 

혹자는 “종합상사의 역할이 더 이상 필요없다”며 무용론을 얘기한다. 하지만 되레 종합상사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ㆍ중국 등 주요 시장의 리스크가 커지고, 친환경ㆍ스마트화 등 산업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는 변곡점에선 신사업ㆍ신시장을 발굴해내는 종합상사의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기회가 왔을 때 그걸 잡을 능력을 갖출 수 있느냐는 점이다.

사공목 연구위원은 “종합상사의 기능은 여전히 중요하다”면서 “불확실성의 시대, 새로운 자원의 시대에서 종합상사의 역할은 무한하지만, 종합상사의 기능이 약해져 있다면 기회가 와도 잡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국내에 종합상사다운 종합상사가 얼마나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일본의 종합상사는 자원개발, 프로젝트 파이낸싱, 미래사업 개발 등에 투자를 많이 하는데, 우리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도록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어쨌거나 국내 종합상사들은 ‘팔색조 변신’을 시작했다. 이들은 또다시 상사의 시대를 열어젖힐 수 있을까.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