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문 닫은 명동 상가들
오히려 신축·리모델링 건수는 늘어
공실은 누군가에게는 기회

코로나19와 함께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붐비던 상권에 찬바람을 끌고 왔다. ‘명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명동을 휘감은 찬바람은 자영업자를 벼랑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건물주는 끄떡없었다. 침체를 버티지 못한 자영업자는 ‘명동’에서 쫓겨났지만 숱한 건물주는 치솟은 임대료를 인하하지 않았고, 되레 건물을 ‘단장(리모델링)’하면서 새 기회를 모색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텅 빈 명동의 두 얼굴을 취재했다.

코로나19에 ‘서울에서 가장 비싼 땅’인 명동 상가들도 버티지 못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코로나19에 ‘서울에서 가장 비싼 땅’인 명동 상가들도 버티지 못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자의 피해를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사진이 있다. 텅 빈 명동거리의 모습이다. 한때 외국 관광객으로 붐비던 명동 거리는 실제로 한산해진 지 오래다.

사라진 활력은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우리동네 상권분석 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중구 명동의 상존 인구(건물 1만㎡당)는 2019년 3분기 21만3861명에서 2020년 3분기 14만1374명으로 33.9% 감소했다. 상존 인구가 줄었으니 상권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자영업자가 문을 닫고 떠난 자리엔 공실만 덩그러니 남았다. 경제원리상 ‘임대료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고, 이는 코로나19에서 출발한 폭풍이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건물주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콧대 높은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정말 떨어뜨렸을까.

그렇지 않았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2019년 1분기 명동의 1층 임대료(3.3㎡ 기준)는 19만1617원, 2020년 22만9724원, 2021년에는 23만4919원으로 오히려 상승했다. 

주목할 점은 임대료만 상승한 게 아니란 점이다. 공교롭게도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신축건물 수와 리모델링 공사 건수도 늘어났다. [※참고: 이 통계는 건물주들이 벼랑에 몰린 자영업자와 달리 코로나19를 ‘기회’로 삼았다는 방증이다. 이 이야기는 후술한다.] 

건축행정정보서비스 ‘세움터’에 따르면 2019년 명동거리에서 발생한 건축인허가 신고는 총 21건이었다.[※참고: 서울시가 지정한 명동거리는 행정구역상 중구 을지로2가, 명동1ㆍ2가, 충무로1ㆍ2가에 걸쳐있다.] 그중 용도변경 등을 제외한 ‘신축’ ‘대수선’ 허가 신고는 총 12건이었다. 비중으로만 따지면 57.1%다.

코로나19가 발생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영업이 어려워진 2020년은 어땠을까. 19건의 건축물인허가 신고 중 ‘신축’ ‘대수선’ 허가 신고는 14건으로 전체의 73.7%를 차지했다. 비중으로만 따지면 오히려 신축ㆍ리모델링 공사가 늘어났다는 거다. 늘어난 공실, 오르는 임대료, 사라지는 사람들, 그 속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건물주들…. 이 통계를 머리에 넣고 직접 명동거리를 걸어보기로 했다.

8월 30일 오전 명동엔 ‘임대 문의’ 현수막이 붙은 건물이 수두룩했다. 기자는 인테리어가 모두 뜯겨 나가 원래 무엇이 있던 자리인지 추측하기 어려운 건물 앞에 우두커니 섰다. 출입문 위에 새겨진 글자 간판의 흔적을 보니, 유명 신발 브랜드가 이곳에 있었던 것 같다. 코로나19가 훑고 지나간 지 1년 반이 흘렀다. 그사이 매장은 명동을 빠져나갔고 남은 건 ‘흔적’뿐이었다.

건물 소유주는 임대료를 낮추는 대신 공실이 된 건물을 새로 만들거나 리모델링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건물 소유주는 임대료를 낮추는 대신 공실이 된 건물을 새로 만들거나 리모델링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몇몇 건물만 그런 건 아니었다. 주위는 온통 그런 건물들이었다. 쇼윈도로 꾸며졌던 유리 벽은 흰 종이로 감싸져 있거나 ‘임대 문의’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오전 시간대여서 한산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중심이 되는 ‘명동길’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회현사거리 부근부터 명동길을 따라 걸으니 ‘임대 문의’를 원하는 건물 여러 동이 나타났다. 자리를 이전했다는 안내문이 붙은 화장품 가게들은 나란히 문을 닫은 상태였다. 공사 펜스가 쳐진 건물들도 눈에 띄었다. 명동 특유의 ‘좁은 가로 폭’ 건물은 로드숍 화장품 브랜드가 둥지를 틀고 있던 곳이었지만 관광객이 줄면서 버티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명동엔 다른 모습도 있었다.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듯 리모델링이 한창인 건물도 숱했다. 명동길을 따라 조금 더 걸었다. 끄트머리에 있는 곳에서는 신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과 마사지숍이 있던 4층 건물 자리였다.

 

신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건물 옆에 서 있는 또 다른 건물도 음식점 간판만 남아 있을 뿐 불 켜진 곳은 없었다. 새롭게 임차인을 구하거나 옆 건물처럼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큰길에서 좁은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차 1대가 지날 수 있을 법한 폭의 도로 옆으로 해체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1층에 유명 신발 브랜드 매장이 있었던 건물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길 하나를 사이에 놓고 맞은편에 있던 카페 건물도 이미 반쯤 무너진 상태로 중장비가 올라가 있었다. 해체 공사가 끝나고 나면 새로운 건물을 만들 수 있는 땅이 또 생겨날 거다.

위축된 명동 속 갑의 위세

그 미래가 엿보이는 곳도 있었다. 고깃집과 술집으로 차 있던 명동 초입의 4층짜리 빌딩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식당이 한창 영업 중이었다. 하지만 2021년 8월 현재 빌딩은 사라지고 근린생활시설 신축 공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예정대로 2022년에 새 건물이 완공되면 이곳에는 11층짜리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이전에 있던 건물과 비교하면 층수만 2배 이상이다. 

의류 브랜드가 입점해있던 또 다른 근린생활시설 한 동도 2020년부터 철거와 신축을 거쳐 새로운 건물을 금방 올렸다. 명동 인근의 회사를 다니는 한 직장인은 “언젠가부터 명동에 리모델링 바람이 부는 것 같다”면서 “명동에서 짐을 싸는 상인이 많은데, 한편으론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빈 매장과 신축. 이는 명동에 스며든 ‘양극화’의 또다른 상징이다. 자영업자는 떠나고 있지만 오히려 신축, 리모델링 공사는 늘었다. 자영업자는 소득이 줄며 ‘일터’를 떠났지만 건물주는 소득이 나올 수 있는 ‘재산’을 정비하고 있다. 코로나19란 무시무시한 바이러스가 휘몰아친 국면에서도 건물을 가진 사람은 느긋하게 훗날을 계획할 수 있다는 얘기다. 더 높은 건물을 만들어 수익성을 더 키울 수도 있다. 위축된 명동이라기엔 건물주는 여전히 갑甲이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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