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이후 부처별 재정사업 자율평가
‘미흡’ 등급 나와도 지출구조조정 뒷짐
효율성 떨어지는 사업 정리 제대로 안 돼

예산 투입 대비 성과가 좋지 않은 사업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평가를 해서 예산을 줄이든 사업을 축소하든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 일반 기업 같으면 대체로 사업을 축소할 거다. 그런데 정부 각 부처 공무원들은 웬만해선 사업 예산을 줄이지 않는다. 평가를 통해 ‘미흡’ 등급을 받은 사업조차 마찬가지다. 더스쿠프(The SCOOP)와 나라살림연구소가 ‘재정사업자율평가’의 허와 실을 분석했다.

정부 부처들은 재정사업자율평가를 통해 ‘미흡’ 등급을 받은 사업의 예산조차 줄이지 않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 부처들은 재정사업자율평가를 통해 ‘미흡’ 등급을 받은 사업의 예산조차 줄이지 않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 부처가 추진하는 재정사업(예산 투입사업)들은 대부분 평가 과정을 거친다. 평가 결과가 좋으면 예산을 더 투입해 사업을 확장하기도 하고, 결과가 시원찮으면 개선을 하거나 축소하기도 한다. 이렇게 재정사업을 평가하는 건 국가 재정을 투명하고 건전하게 운영하는 것은 물론, 적재적소에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관련법(국가재정법)도 만들어 놨다. 

특히 재정사업 중 연구ㆍ개발(R&D)이나 재난ㆍ안전에 투입되는 사업들을 제외하고, 상대평가를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재정사업들은 매년 카테고리별로 묶어서 ‘재정사업자율평가’를 실시한다.

정부 부처별로 진행하는 사업들을 각 부처가 자체적으로 평가한다는 거다.[※참고: 2017년까지는 기획재정부가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잡아주는 ‘통합재정사업평가’를 함께 진행해 그 평가 결과에 따라 낮은 등급을 받는 사업의 10%는 기계적으로 예산을 줄였다. 하지만 사업에 따라 각각 다른 사정을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로 2018년부터는 자율평가로 바뀌었다.] 

자체 평가 후에는 사업별로 ‘우수’ ‘보통’ ‘미흡’의 등급을 매긴다. ‘미흡’ 등급을 받은 사업의 경우엔 향후 재정운영 계획에 반영해 조치를 취하는데,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사업 성과가 좋지 않은 원인을 파악해 개선할 수 있도록 ‘성과관리계획’을 짜거나, 예산을 줄여 사업을 축소하는 ‘지출구조조정계획’을 짜는 거다. 

예를 들어보자. 10개 지역에 도로정비를 하려고 했다가 5개 지역밖에 못했다고 가정해보자. 도로정비의 필요성이 있음에도 지역 주민의 오해로 인한 반발 때문에 사업을 진행하지 못했다면 충분히 소통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그럼 성과관리계획을 짜면 된다.

그런데 도로정비의 필요성이 사라져 사업을 접어야 한다면 그때는 지출구조조정계획을 짜야 한다. 지출구조조정계획에 포함되면 평가를 받은 연도의 2년 후에 얼마의 예산을 줄일지 밝히고, 계획대로 예산을 줄여야 한다.

문제는 정부 부처들이 ‘미흡’ 등급을 받은 사업들을 대부분 예산을 줄이는 지출구조조정계획보다는 성과관리계획에 몰아넣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지출구조조정계획에 포함됐다 해도 그 계획대로 실행하지도 않는다. 

나라살림연구소가 행정안전부의 ‘열린재정’에 공개된 2018년부터 2020년까지의 재정사업자율평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8년에 재정사업자율평가를 받은 사업은 총 1174개였다. 이 가운데 ‘미흡’ 등급을 받은 사업은 189개(16.1%)였다. ‘재정사업자율평가’ 관련 규정에는 평가 자체가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미흡’ 등급을 15%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잘 지켜지는 셈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지출구조조정계획에 포함된 사업은 31개(16.4%)에 불과하다. 성과관리계획에는 160개(84.7%)의 사업이 포함됐다.[※참고: 성과관리계획과 지출구조조정계획을 모두 수립한 사업들이 있어서 성과관리계획과 지출구조조정계획의 총합은 ‘미흡’ 등급을 받은 사업의 수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미흡 등급에 걸맞게 조치했나

2019년에는 총 1169개 사업 중 187개(16.0%)가 ‘미흡’ 등급을 받았는데, 29개(15.5%)만이 지출구조조정계획에 포함됐다. 성과관리계획 사업은 160개(85.6%)였다. ‘미흡’ 등급을 받은 사업 10개 가운데 8~9개 사업의 예산은 그대로 두고, 고작 1~2개 사업만 예산을 줄이기로 했다는 얘기다. ‘재정사업자율평가’ 결과가 재정운영 계획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0년에 종료되는 양곡수급관리 사업을 2020년 지출구조조정계획에 포함했다.[사진=뉴시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0년에 종료되는 양곡수급관리 사업을 2020년 지출구조조정계획에 포함했다.[사진=뉴시스]

물론 정부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을 듯하다. 지출구조조정계획에 포함한 사업 대부분은 예산을 삭감했기 때문이다. 2018년 지출구조조정계획에 포함된 31개 사업 중 2020년에 예산을 줄인 사업의 수는 29개였다. 2019년에도 29개 중 26개 사업의 예산을 삭감했다. 

하지만 지출구조조정계획에 포함된 사업들의 예산을 줄였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아있다. 이들 중에는 예산을 편성할 당시 사업이 종료되거나 변경될 예정인 사업도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19년에 ‘미흡’ 등급을 받은 농림축산식품부의 양곡수급관리 사업은 2020년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 사업은 원래 2020년에 종료되는 사업이었다.

또한 같은 해 ‘미흡’ 등급을 받은 교육부의 학술연구국제교류강화 사업은 2020년부터 인문사회기초연구 사업에 통합될 예정이었는데도 지출구조조정계획안에 포함했다. 변경이나 종료가 예상돼 예산이 줄거나 사라질 게 뻔한 사업들을 ‘미흡’ 등급에 포함하고, 지출구조조정계획까지 세웠다는 거다.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이다. 

이처럼 ‘재정사업자율평가’ 결과는 부처별 예산 편성 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재정사업자율평가’가 그저 ‘평가’로 끝나지 않도록 사업 개선계획의 수행 여부를 모니터링할 필요성이 있다. 정부 부처 공무원들이 ‘밥그릇 지키기’를 하느라 혈세를 허투루 쓴다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말이다. 

정지연 나라살림연구소 객원연구원
sweney@hanmail.net

정리 =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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