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M&A 둘러싼 우려들

‘탈통신’을 선언한 KT의 광폭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비통신 부문 강화를 위해 투자와 인수·합병(M&A)에 더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지난 9월엔 대표 직속의 M&A 전담 조직까지 신설했다. 이 때문인지 구현모 KT 대표가 ‘본업’ 통신에 지나치게 소홀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결국 10월 25일 문제가 또 터졌다.

구현모 대표 취임 이후 디지코(Digico) 전환을 선언한 KT가 다양한 M&A를 추진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구현모 대표 취임 이후 디지코(Digico) 전환을 선언한 KT가 다양한 M&A를 추진하고 있다.[사진=뉴시스]

“KT를 통신기업 ‘텔코(Telco)’에서 디지털플랫폼 기업 ‘디지코(Digico)’로 변화시키겠다.” 2020년 10월 28일 KT 디지털-X 서밋 2020의 현장. 단상에 오르는 구현모 대표의 표정은 비장했다. 구 대표가 KT 수장에 오른 후 갖는 첫 기자간담회였다. 게다가 이날은 KT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자리였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서 구 대표는 뜻밖에도 ‘탈통신’을 선언했다. 구 대표가 디지코를 이끌 사업으로 제시한 것은 ▲미디어 ▲금융 ▲인공지능(AI)·빅데이터(Big data)·클라우드(Cloud) 기반의 B2B 사업이었다. 이를 통해 그는 “2025년 매출 20조원 중 절반을 비통신 부문에서 올리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면서 비통신 부문의 경쟁력은 인수·합병(M&A)과 투자를 통해 쌓겠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우려의 시선을 보냈지만 구 대표는 자신만만했다. “다른 분야와 거래가 충분히 있을 것이다. 회사에서 M&A 전문가로 컸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되는지 다 알고 있다. 준비를 많이 했다. 2021년에 몇가지 볼 수 있을 것이다.”

구 대표의 말처럼 KT는 지난해 6월 현대로보틱스의 지분 500억원을 사들인 것을 시작으로 활발한 M&A와 투자에 나서고 있다. 구 대표 취임 이후 M&A와 투자에 쏟아부은 돈만 8500억원에 이른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KT는 계열사 KT스카이라이프를 통해 현대HCN을 인수했다. 현대HCN의 자회사인 현대미디어는 KT의 미디어·콘텐츠 계열사 KT스튜디오지니가 품었다.

올해 4월엔 핀테크 업체 뱅크샐러드에 250억원의 지분 투자를 단행했고, 디지털방송용 소프트웨어 개발사 알티캐스트를 인수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6월 핀테크 업체 웹케시의 지분 236억원어치를 사들였고, 9월엔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를 464억원에 인수했다.

해외 기업과의 M&A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9월 말레이시아 쿠옥 그룹의 데이터 전문기업 엡실론을 1700억원에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KT는 엡실론을 인수해 2025년까지 1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이는 글로벌 데이터 시장에서 경쟁력을 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KT의 M&A 전략은 더 가속할 전망이다. 지난 9월 구 대표가 M&A 전담 조직 ‘그룹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을 신설하면서 자신의 직속으로 전진배치했기 때문이다. 이 조직은 KT의 국내외 투자전략을 수립할 뿐만 아니라 주요 계열사의 기업공개(IPO) 추진, 투자 유치 등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는 역할을 꾀할 전망이다. 구 대표는 ‘그룹 트랜스 포메이션’을 신설한 직후인 9월 15일 “새로운 M&A 기업을 찾아보고 있다”는 말로 시장의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시장에선 ‘그룹 트랜스 포메이션’이 추진할 KT의 다음 M&A 대상이 종합유선방송사 딜라이브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KT 측은 “유료방송사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딜라이브 인수를 검토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구 대표가 밀어붙이고 있는 M&A의 성적표는 어떨까.

KT는 지난해 코로나19의 영향에도 안정적인 실적 성장세를 기록했다. 지난해 영업이익 1조1841억원, 당기순이익 7033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1%, 5.6% 성장했다. 실적 증가세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KT는 올 상반기 누적 기준 영업이익은 92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6.3% 증가했고, 당기순이익은 같은 기간 59.8% 증가한 6972억원을 기록했다.

디지코 전환에 8500억원 투자한 KT

실적 성장을 이끈 것은 흥미롭게도 M&A로 경쟁력을 강화한 ‘비통신 부문’이었다. 인공지능(AI)·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 부문의 매출은 137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1% 증가했다. 같은 기간 IPTV의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14.5% 늘어난 4666억원을 기록했다. 실적이 늘자 주가도 날았다. 구 대표 취임 당시 1만9700원(지난해 3월 30일)이었던 KT의 주가는 10월 27일 3만1300원으로 58.8% 상승했다.

10월 25일 KT의 네트워크 오류로 인한 인터넷 먹통 사태가 전국적으로 발생했다.[사진=뉴시스] 
10월 25일 KT의 네트워크 오류로 인한 인터넷 먹통 사태가 전국적으로 발생했다.[사진=뉴시스] 

하지만 KT의 M&A에 우려의 시선이 없는 건 아니다. 탈통신을 빌미로 문어발식 확장을 꾀하다 보면, 본업인 ‘통신’ 부문의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례로, KT는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사업목적에 ‘화물운송·화물운송주선업’과 ‘의료기기의 제작·판매업’을 추가했다.

이유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을 위한 사업영역 확장었는데, KT가 화물운송과 의료기기를 제작·판매하는 게 적절한가를 두고 논란을 빚기도 했다. 통신업계자는 “탈통신 과제는 이동통신사가 모두 고민하는 과제”라면서도 “하지만 KT가 플랫폼 기업의 무분별한 확장을 답습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안타깝지만 이런 우려는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다. KT의 통신서비스 품질 논란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어서다. 구 대표가 취임하기 전에 터진 KT 아현지사 화재 사건(2018년)은 논외로 치더라도 올해 두차례 발생한 통신서비스 품질 논란은 짚고 넘어갈 만하다. KT는 지난 4월 유튜버 ‘잇섭’이 폭로한 초고속인터넷 속도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이 때문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전수조사까지 받았다. KT는 “초고속인터넷 속도 문제는 현장 직원이 서비스를 잘못 설정한 탓에 발생한 실수”라고 밝혔지만 정부 조사 결과에선 ‘부실한 품질 관리’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구 대표가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고개를 숙인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0월 25일엔 KT 인터넷이 먹통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평일 점심시간에 인터넷이 40분가량 먹통된 탓에 곳곳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KT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자영업자는 물론 기업·증권사까지 곤욕을 치렀다. 서비스 장애로 인한 피해 보상 규모는 7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날 KT가 탈통신의 일환인 AI를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는 게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다.

끊이지 않는 통신서비스 품질 논란

시장에선 예견된 사태였다는 비판이 줄을 잇는다. KT가 M&A를 통해 탈통신에 힘을 쏟아부은 탓에 정작 본업인 통신설비 투자 규모는 가파르게 줄었다는 이유에서다. 2019년 3조2570억원이었던 KT의 시설투자액은 지난해 2조8720억원으로 감소했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8640억원에 불과하다.

KT 측은 “시설투자가 하반기에 몰려있기 때문”이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4분기에 이전과 비슷한 규모의 투자가 이뤄지더라도 올해 투자액이 2조원을 밑돌 가능성이 높아서다.

KT 새노조 관계자는 “2018년 아현지사 화재 사건이 터진 이후 KT는 통신설비 투자를 늘려 사태가 재발하는 걸 막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며 “3년간 통신설비 투자비를 계속 줄여온 탓에 지난해 투자액은 업계 3위 수준에도 못 미쳤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번 KT 인터넷 먹통 사태 때도 원인을 파악하는 데만 30분이 소요되는 등 초기대응이 미숙했다”면서 “본업인 통신업은 뒷전으로 밀어놓은 채 수익성만 따진 탓에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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