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화홍보원의 이상한 업무 처리
결재권 도용해 연장근로시간 조정
직원 1년 넘게 유급 대체휴가 지급
하지만 책임진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한 직원이 제대로 일하지 않고 연장근로를 하고, 1년 넘게 대체휴가를 신청한다. 기관장은 납득할 수 없다며 상급기관에 징계를 요청한다. 하지만 상급기관은 조사를 하지 않는다. 되레 기관장이 결재하지 않은 연장근로를 기관장 이름으로 처리하고 1년 넘는 유급휴가를 갈 수 있는 길을 터준다. 놀랍게도 이 일은 정부기관 ‘해외문화홍보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지난 5월 보도했던 ‘상하이문화원 사건’ 그 이후 600일의 기록을 정리했다. 

재외 한국문화원에서는 언제든지 주상하이한국문화원에서 일어났던 황당한 사건이 반복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재외 한국문화원에서는 언제든지 주상하이한국문화원에서 일어났던 황당한 사건이 반복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틀에 한번은 지각을 한다. 근무시간이 끝난 후엔 혼자 남아 야근을 한다. 야근이라지만 일은 하지 않는다. 친구를 불러와서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낸다. 심지어 밖에서 3~4시간 놀다 들어와선 퇴근 카드만 찍는다.

그렇게 쌓은 연장근로 시간이 수천 시간에 이르자 그 직원은 이를 근거로 1년이 넘는 유급 대체휴가를 사용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이런 연장근로를 인정할 수 없다며 징계를 요청한 상사에겐 ‘갑질 프레임’을 뒤집어씌워 직위해제를 당하게 만들었다.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지만 이는 지난 5월 더스쿠프(The SCOOP)가 ‘주상하이한국문화원 논란-이원화된 지배구조가 문제의 핵심’ ‘1년 넘게 쉬는 대체휴가가 어디 있는가’란 보도의 실제 내용이다. 

이 기사의 골자는 근태가 엉망이었던 주상하이한국문화원(이하 상하이문화원) 소속 직원 2명이 1년 이상의 유급 대체휴가를 받았는데, “연장근로 시간이 불합리하게 책정됐다”면서 대체휴가의 부당함과 함께 해당 직원의 징계를 요청한 상하이문화원장이 되레 직위해제된 사건이다. 

더스쿠프는 기사를 통해 상하이문화원의 상급기관인 해외문화홍보원의 상식적이지 않은 조치와 사건을 촉발한 인사권 이원화 등 구조적 문제점을 꼬집었다.[※참고: 전세계 27개국에 32개의 재외 한국문화원이 있다. 외국에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설치된 재외공관인데, 상하이문화원은 그중 하나다. 법률상 직제는 외교부 소속이며, 기관장도 외교부 소속 공무원이다. 하지만 재외 한국문화원의 상급기관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기관인 해외문화홍보원이고, 문체부 예산으로 운영된다. 직원은 해외문화홍보원 소속이며, 공무원이 아닌 일반인 신분이다.]

기사가 노출된 지 5개월여가 흐른 지금, 이 사건은 어떻게 됐을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 5월 기사를 복기해보자. 2020년 3월 상하이문화원 소속 직원 2명이 상급기관인 해외문화홍보원에 ‘김홍수 상하이문화원장이 갑질을 한다’고 신고했다. 이들이 말하는 갑질의 핵심은 ‘연장근로를 했는데, 원장이 연장근로를 인정해주지 않고 대체휴가 결재도 해주지 않는다’는 거였다. 

같은 시기 김홍수 원장은 해외문화홍보원 측에 직원 2명을 징계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 원장을 신고한 그 직원들이다. 언뜻 김 원장이 상급비관에 ‘갑질 의혹’을 신고한 직원을 쳐내기 위해 보복성 징계를 요청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김 원장은 해당 직원들의 근태가 엉망이었다고 주장했다. 시키지도 않은 연장근로를 맘대로 했을 뿐만 아니라 연장근로를 하면서 수시간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근태 기록과 CCTV 영상 등 객관적 근거도 제출했다. “두 직원의 연장근로와 그에 따른 대체휴가를 인정할 수 없으니 인사권을 가진 해외문화홍보원이 이 문제를 조사하고 두 직원을 징계해 달라”는 게 김홍수 원장의 주장이었다. 

정황과 맥락을 보면, 상급기관인 해외문화홍보원은 원장과 직원간 엇갈린 주장의 진위를 파악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하지만 해외문화홍보원은 그러지 않았다. 가장 기초적인 ‘연장근로를 인정해주는 게 타당한지’조차 조사하지 않았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연장근로의 타당성 여부를 조사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김 원장이 근태 기록과 CCTV 등을 근거자료로 내놨지만 이것만 갖고는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해외문화홍보원은 다른 행보를 띠었다. 연장근로나 대체휴가의 타당성 여부는 뒷방에 던져놓은 채, 대체휴가를 결재하지 않은 김 원장의 행동이 근로기준법에 어긋난다면서 대체휴가 결재만을 압박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해외문화홍보원 측은 상하이문화원 내부 전산망에 접속해 갑질 신고를 한 2명의 연장근로 시간을 임의로 조정했다. 김 원장을 대신해 연장근로 시간을 조정하고 결재했다는 얘기다.[※참고: 이 사건은 뒤에서 다시 짚었다.]

이후 해외문화홍보원은 외교부에 김 원장을 ‘갑질 신고’건으로 징계해 달라고 건의했다. 김 원장의 인사권은 외교부에 있어서다. 하지만 1차 조사는 해외문화홍보원의 의무다. 그럼에도 그들은 김 원장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징계부터 요청했다. 

이런 문제로 올해 3월 김 원장은 외교부에 소환됐고, 직위해제됐다. 갑질 신고를 했던 두 직원은 지난해 3월부터 1년이 넘는 기간 유급 대체휴가를 사용했다. 그러자 김 원장이 법정 대응을 시작했다. “직위해제가 부당하다”면서 외교부를 상대로 징계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고 행정소송도 냈다. 

시계추를 다시 현시점으로 돌려보자. 이 사건은 어떻게 진행 중일까. 일단 지난 9월 징계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은 받아들여져 김 원장은 상하이문화원장에 복직했다. 1년이 넘는 대체휴가를 즐겼던 두 직원은 이보다 한달 전 해고됐다.

해외문화홍보원 측은 “갑질 신고를 했던 두 직원의 근태가 불량했다는 게 드러났고, 대체휴가 사용 방법도 부적절했다고 판단했다”면서 “이에 따라 지난 5월 징계위원회를 열었고, 해고했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의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진 셈이다. 이쯤 되면 상하이문화원 사건이 상식 선에서 마무리되는 듯하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결재권 도용하고 세금도 낭비 

가장 중요한 쟁점 2개만 짚어보자. 먼저 해외문화홍보원 측이 지난해 4월 상하이문화원 내부 전산망에 접속해 연장근로 시간을 임의 조정한 사건이다. 김 원장은 “연장근로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체휴가를 결재할 수 없다”면서 해외문화홍보원 측에 “문제의 직원을 징계해 달라”고 요청했다.

해외문화홍보원은 김홍수 주상하이한국문화원장 이름으로 김 원장이 모르는 결재를 진행하기도 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해외문화홍보원은 김홍수 주상하이한국문화원장 이름으로 김 원장이 모르는 결재를 진행하기도 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하지만 해외문화홍보원 측은 상하이문화원 전산망에 접속해 ‘김홍수’ 원장의 이름으로 두 직원의 연장근로 시간을 조정했다. 김 원장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미뤄온 ‘연장근로 결재’를 해외문화홍보원 측이 대신 했던 거다. 명백한 ‘결재권 도용’이다. 

해외문화홍보원 관계자는 “2019년에 원장이 결재한 연장근로 시간을 2020년으로 이월한 것일 뿐”이라면서 이렇게 반박했다. “해외문화홍보원은 임의로 연장근로 시간을 이월할 수 있다. 다만 전산시스템 상 결재권자가 원장으로만 한정돼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거다. 김 원장이 서운할 수는 있겠지만, 결재권 도용은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다. 해외문화홍보원에 상하이문화원 직원들의 연장근로시간을 이월할 권한이 있다면, 그 담당자의 이름을 걸고 결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상하이문화원 기관장인 김 원장에게 관련 사실을 통보하는 건 상식적인 절차다.

하지만 두건 모두 이상한 과정을 밟았다. 무엇보다 해외문화홍보원 담당자가 아닌 김홍수 원장이 결재권자로 돼 있었고, 김 원장은 결재 사실을 통보받지도 않았다. 

그러자 해외문화홍보원 측은 다음과 같은 반론을 내놨다. “갑질 신고를 했던 두 직원이 연장근로를 인정해 대체휴가를 달라고 하는 상황에서 김 원장은 결재를 거부하고 있었다. 김 원장은 해외문화홍보원의 지시를 따라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 게 맞느냐.” 

이는 더 황당한 주장이다. 해외문화홍보원 측은 “연장근로가 타당한지 조사해 달라”는 김 원장의 주장을 외면하고 어떤 조사도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김 원장이 손을 놓고 있다’는 이유로 남의 김 원장의 결재권을 행사했다.

그러는 사이 김 원장을 갑질 신고했던 두 직원은 터무니없는 연장근로를 인정받아 1년이 넘는 유급 대체휴가를 사용했다. 지난해 3월부터 징계위에 회부된 올해 5월까지 1년 2개월이나 놀고먹으면서 월급을 받았다는 얘기다. 해외문화홍보원과 상하이한국문화원의 운영비는 모두 문체부 예산이다. 국민의 돈이 일도 하지 않은 직원에게 들어갔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김 원장의 징계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은 받아들여졌다. 행정소송은 진행 중이지만 법원이 공무원의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걸 감안하면 김 원장은 행정소송에서도 승소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사태 재발 막을 수 있나

그렇다면 ‘결재권 도용’ 논란을 일으키고 국민의 돈까지 날린 해외문화홍보원 측은 문제점 개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대리 결재를 주도한 관계자에게 책임을 묻고, 혈세 낭비를 불러온 시스템을 개선했을까. 그렇지 않다. 해외문화홍보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외문화홍보원 관계자는 “당시 우리의 조치가 미흡했던 점이 있을 수는 있지만, 책임을 질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며 맞서고 있다. 더구나 상하이문화원 사태의 수습을 담당했던 해외문화홍보원 관계자들은 대부분 문체부로 복귀했다. 

문제만 남겨 놓고 책임져야 할 이들은 원래 부처로 복귀했다는 건데, 이게 옳은 건지 의문이다. 법무법인 한일의 김정수 변호사는 “절차적인 문제가 없었다면 업무상 실수라고 할 수도 있고, 면책도 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해외문화홍보원 측의 행태를 보면 공문으로 일처리를 하지 않거나 결재권을 맘대로 도용하는 등 절차적 위법 사례가 숱해 실수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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