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밖의 해외문화홍보원
희한한 조직 전세계 32곳

해외에 있는 기관의 ‘장’이 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한다. 그런데 직원이 말을 듣지 않는다. 맘대로 출근하고 휴가도 보고 없이 간다. 그런데도 기관장은 직원을 맘대로 징계할 수 없다. 인사권이 없어서다. 모든 일은 인사권을 갖고 있는 상급기관에서 진행한다. 하지만 그 상급기관은 한국에 있어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몇몇 직원은 기관장을 ‘패싱’하고 인사권이 있는 상급기관에 SOS를 친다. 이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발생한 사건이다. 스쿠프(The SCOOP)가 주상하이한국문화원에서 생긴 일을 취재했다. 주목할 건 주상하이한국문화원 같은 구조를 갖고 있는 재외 한국문화원이 30개가 넘는다는 점이다. 

주상하이한국문화원 논란은 이원화된 이상한 관할 구조에서 비롯됐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주상하이한국문화원 논란은 이원화된 이상한 관할 구조에서 비롯됐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여기 이상한 재외在外 정부기관이 있다. ‘한국문화원’이라는 곳이다. 명칭대로 한국 문화를 외국에 알리는 게 주요 업무다. 이런 한국문화원은 27개국에 32개가 있다. 주목할 건 한국문화원의 지배구조다. 법률상 직제로 보면 한국문화원은 외교부 소속이다. 기관장은 공무원이고, 기관장의 인사권은 외교부에 있다.

반면 한국문화원 직원들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해외문화홍보원 소속으로 공무원이 아니다. 직원 인사권은 해외문화홍보원에 있고, 외교부 소속 공무원인 기관장에겐 권한이 없다. 일반적인 정부기관에선 볼 수 없는 이상한 구조다.[※참고: 재외 한국문화원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급격히 늘었다. 2009년 12개였던 재외 한국문화원은 2016년까지 31개로 급증했다. 한국문화원의 운영 예산은 해외문화홍보원(국민 세금)으로부터 나온다.] 

이런 이유로 한국문화원은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인사권이 없는 원장의 말을 직원들이 따를 필요가 없다. 원장은 직원의 인사 문제를 문체부 산하 해외문화홍보원에 ‘건의’할 수 있을 뿐이다. 해외문화홍보원이 원장 위에서 직원의 인사권을 쥐락펴락하는 게 가능하단 얘기다.

원장 역시 마찬가지다. 원장의 인사권은 외교부가 쥐고 있다. 이 때문에 문체부 산하 해외문화홍보원의 지시를 받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인사권이 없어 직무에 신경을 쓰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원장 따로 직원 따로’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는 거다. 최근 한국문화원 중 한곳인 ‘주상하이한국문화원’에서 벌어진 황당한 사건이 언론 보도를 탔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재외 한국문화원은 급격히 늘었다. 사진은 주홍콩한국문화원.[사진=해외문화홍보원 제공]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재외 한국문화원은 급격히 늘었다. 사진은 주홍콩한국문화원.[사진=해외문화홍보원 제공]

사건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지난해 3월 김홍수 전 주상하이한국문화원 원장(현재 직위해제)은 해외문화홍보원에 직원 H씨와 K씨에 관한 징계를 건의했다. 징계 사유는 근태가 불량한 두 직원이 불법적으로 연장근로를 했고, 이를 통해 근거 없는 대체휴가(100% 유급) 사유를 만들었으며, 사전 논의도 없이 대체휴가를 사용해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거였다.[※참고: 김 전 원장은 둘 중 한명은 채용공고가 나지 않은 시기에 입사했고, 이력서도 나중에 전달됐다는 걸 근거로 ‘불법채용 관련 조사도 해달라’는 주문도 했다.]

반면 H씨와 K씨는 김 전 원장이 자신들에게 갑질을 했다면서 해외문화홍보원에 신고했다. 갑질 사유의 주요 내용은 김 전 원장이 연장근로기준법에 허용된 대체휴가를 결재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폭언 등을 했다는 거다. 두 직원의 갑질 신고에는 부수적인 내용들도 포함돼 있지만, 쟁점은 ‘대체휴가’였다.[※참고: 더스쿠프가 입수한 주상하이한국문화원 내부자료에 따르면 두 직원의 ‘불량한 근태’는 출퇴근 기록과 영상자료로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 영상자료에는 두 직원이 연장근로를 한다면서 밤새 외출을 하고 들어오거나 친구를 불러 노는 등의 행태가 담겨 있다.]

해외문화홍보원의 이상한 조치들

언론 보도 이후 많은 이들이 이를 ‘내부갈등의 결과물’로 해석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원장과 두 직원의 갈등은 앞서 언급한 한국문화원의 이상한 구조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옳다. 인사권이 없는 원장은 두 직원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고, 인사권을 갖고 있는 해외문화홍보원의 결정을 기다려야만 했다. 두 직원 역시 인사권이 없는 원장의 지시를 따르기보단 해외문화홍보원의 힘을 빌리려 했다.

문제는 두 직원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해외문화홍보원의 태도다. 이 기관은 두 직원의 입장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더스쿠프가 주상하이한국문화원에서 벌어진 문제를 기존 언론 보도와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이 질문을 먼저 풀어보자. 원장과 직원의 갈등이 불거졌다면, 해외문화홍보원이 해야 할 상식적인 조치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주상하이한국문화원에서 원장과 직원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는 거다. 원장의 징계 건의가 합당하다면 두 직원을 징계하면 되고, 두 직원의 말처럼 원장이 갑질을 했다면 적법 절차에 따라 후속 조치를 밟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해외문화홍보원은 이 문제를 비상식적으로 풀려고 했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 문제❶ 허술한 ‘징계 건의’ 조사 = 원장이 해외문화홍보원에 징계 건의를 한 이유는 분명하다. 근태가 불량한 두 직원의 자의적인 연장근로, 이를 토대로 사전보고도 하지 않은 채 사용한 대체휴가가 조직 분위기를 흐린다는 거였다. 원장은 연장근로 시간을 인정해줄 수 없는 근거자료(CCTV 자료 등)도 제출하면서 조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해외문화홍보원은 제대로 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해외문화홍보원 측은 징계 건의(3월 20일)가 이뤄진 이후 한달이 넘도록 원장에게 조사 관련 언급을 하지 않았다. 김 전 원장이 “왜 조사를 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참고: 문제는 김 전 원장이 소속돼 있던 외교부 역시 ‘강 건너 불구경’을 했다는 점이다. 주상하이한국문화원의 사정을 잘 아는 현지 총영사가 두 직원의 대체휴가가 불합리하다고 외교부에 공문을 보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이곳이 해외문화홍보원 산하기관이었기 때문이다. 주상하이한국문화원에서 벌어진 일을 간단하게 봐선 안 되는 이유다.] 

문제❷ 허술한 ‘갑질 신고’ 조사 = 그렇다고 해외문화홍보원이 두 직원의 ‘갑질 신고’를 제대로 조사한 것도 아니다. 갑질 신고의 사실관계를 파악하려면, 김 전 원장은 물론 나머지 직원들도 조사해야 한다. 하지만 김 전 원장은 해외문화홍보원에 갑질 신고가 접수됐다는 날로부터 보름이 넘도록 아무런 조사를 받지 않았다. 

더구나 ‘갑질 신고’의 핵심 내용은 연장근로에 따른 대체휴가를 인정해주지 않았다는 거다. 그렇다면 연장근로의 타당성을 함께 따져 봤어야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조사는 없었다. 해외문화홍보원 측은 “코로나19 때문에 현지조사가 어려워 전화조사만 했다”고 해명했다. 이는 정확한 조사를 절차대로 진행하지 않았다는 걸 시인한 셈인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에 있는 주상하이한국문화원 직원의 인사권을 한국에 있는 ‘해외문화홍보원’이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거다. 

문제❸ 옥상옥 해외문화홍보원 = 더 이상한 건 지금부터다. 징계 건의도, 갑질 신고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해외문화홍보원 측은 원장이 막아놓은 두 직원의 대체휴가엔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다. 김 전 원장이 징계를 건의한 날부터 해외문화홍보원은 “두 직원에게 연장근로에 따른 대체휴가부터 결재해 줄 것”을 종용했다. 김 전 원장이 이를 거부하자 해외문화홍보원 관계자는 4월 10일 주상하이한국문화원 내부 전산망에 김 전 원장 아이디로 접속해 두 직원의 대체휴가를 대리결재했다.

여기엔 ‘관련 내용 수정 금지’라는 문구까지 넣었다. 이 과정에서 두 직원의 연장근로 시간은 기존에 계산된 시간보다 배로 늘어났고, 다른 직원들의 연장근로 시간은 되레 줄었다. 해외문화홍보원 관계자는 대리결재와 연장근로 시간을 조정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내부 시스템 오류를 바로잡은 것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다. 

무엇보다 해외문화홍보원은 주상하이한국문화원의 수장을 ‘허수아비’ 취급했다. 원장 아이디를 해외문화홍보원 관계자가 도용해 대체휴가를 결재한 것도 모자라, ‘관련 내용 수정금지’란 문구까지 직접 썼다. 이는 해외문화홍보원 측이 ‘옥상옥’ 노릇을 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결정적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이 원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불법적 연장근무로 인한 대체휴가를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두 직원은 여전히 쉬고 있다. 더구나 이 휴가는 유급이다. 국민의 세금이 두 직원의 대체휴가에 쓰이고 있다는 얘기다.[※참고: 실질적으로는 지난해 3월부터니까 벌써 1년이 넘도록 국민 세금으로 공짜 월급을 받고 있는 셈이다.] 

다른 재외 한국문화원은 괜찮나

해외문화홍보원 4월 8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사안을 공정하게 처리하겠다”면서 “언제든지 문체부의 입장을 문의하면 성실하고 상세히 안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외문화홍보원의 행보는 의문스럽다. 해외문화홍보원 측에 ‘징계건의’ ‘갑질신고’ ‘시스템 문제’ 등을 꼼꼼히 물어봤지만 “아직 조사 중이기도 하고 바빠서 답변하기 힘들다”면서 말꼬리를 잘랐다. 언제 다시 통화가 가능하냐는 질문엔 아예 “통화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주상하이한국문화원같은 재외 한국문화원은 31개나 더 있다. 비슷한 성격을 가진 문화홍보관은 10개나 있다. 이들 역시 주상하이한국문화원처럼 이상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면, 비슷한 사건은 언제든 터질 수 있다. 재외 한국문화원 운영시스템을 이대로 놔둬선 안 되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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