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선 이스트썬텍 대표
손안의 공기청정기 개발

휴대전화 엔지니어로 30년을 살았다.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지만 그건 전문분야일 때만 해당하는 얘기다. 퇴직 후 낯선 공기청정기 시장에 발을 들인 박재선(59) 이스트썬텍 대표는 모든 게 낯설다. 수많은 논문을 뒤적이고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하지만 창업 시장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고 있다는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박재선 대표의 목표는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사진=천막사진관]
박재선 대표의 목표는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사진=천막사진관]

✚ 첫 창업이신가요? 창업 전엔 어떤 일을 하셨어요?
“첫번째 창업입니다. 삼성전자에서 휴대전화 엔지니어로 오랫동안 일했습니다. 임원으로 퇴직 후엔 성균관대 산학협력 교수로 활동했고요. 그러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건강한 삶을 만드는 데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삼성전자 초창기부터 같이 일해온 동료와 후배들의 도움을 받아 현재의 이스트썬텍을 세웠습니다.”

✚ 창업 아이템으로 공기청정기를 정한 이유가 있나요? 줄곧 휴대전화 개발 업무를 해오셨잖아요.
“창업을 결심한 게 2018년인데, 그해 중국발 미세먼지가 극에 달했습니다. 과거에 중국 현지 공장 책임자로 있으면서 공기청정의 중요성은 일찌감치 깨달았는데, 사용하던 소형 공기청정기는 효과가 너무 미미했어요. 휴대전화를 개발하면서 배터리나 전력 최적화 이슈는 끊임없이 연구해왔던 터라 휴대용 제품은 자신 있었죠.”

✚ 휴대전화와 공기청정기는 비슷한 점이 있던가요?
“평생 개발 업무를 해왔지만 공기청정 방식은 새로운 분야였습니다. 창업 초기에는 관련 논문을 탐독하고 특허 찾아보는 것으로 하루를 다 보냈습니다. 이 분야 전문가의 글을 읽다가 궁금증이 생기면 수소문해서 자문도 했고요.”


✚ 그렇게 만든 제품은 만족스러웠나요?
“시제품은 ‘소형’이라는 점에 주안점을 뒀습니다. 공기순환을 위한 팬도 하나를 사용하는 등 크기가 작고 작동이 편한 것에 신경을 썼죠. 그랬더니 제품력에 한계가 생기더라고요.”


✚ 어떤 문제였죠?
“공기청정기는 공기순환이 생명인데, 팬이 작고 하나이다 보니 공기순환이 빠르지 않았습니다. 차 안에선 컵홀더에 놓고 써야 하는데 하단부의 공기 흡입구가 컵홀더에 들어가는 것도 문제였고요.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성능인데, 아차 싶었죠.”


✚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합니다.
“방법이 있나요. 비싼 돈 들여 개발한 첫번째 디자인을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공기순환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듀얼팬(Duel Fan)을 사용했어요. 컵홀더에 장착할 수 있도록 텀블러형으로 디자인해 공기가 위쪽에서 수평으로 흐를 수 있도록 재설계했습니다.”

새로운 디자인은 만족스럽나요?
“1차 디자인보다 크기는 조금 커졌지만 성능은 한결 좋아졌습니다. 배터리 사용시간도 길어서 방전 걱정은 안 해도 되고요.”


✚ 공기청정기는 필터도 중요합니다.
“맞습니다. 저희 ‘에어탑 공기청정기’는 H13 등급의 헤파필터로 미세먼지를 99.9%까지 거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냄새 제거도 가능합니다.”

✚ 냄새요? 공기청정기인데 탈취기능이 있다는 건가요?
“사실 공기청정기를 1년 365일 사용하지는 않잖아요.”

✚ 그렇긴 합니다.
“공기청정기 활용도를 높일 방법을 찾다가 탈취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 탈취요?
“냄새 제거에 탁월한 활성탄이란 물질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숯이죠. 집안이나 사무실에 숯 화분이 놓여있는 걸 생각하면 됩니다. 숯의 수많은 구멍으로 냄새 분자를 잡는 원리거든요.”


✚ 그게 공기청정기에 어떻게 적용이 되는 거죠?
“냄새도 결국 공기에 떠다니는 겁니다. 공기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냄새 잡기도 어렵다는 얘기죠. 거기에 착안해 공기를 순환해주면서 냄새도 제거할 수 있도록 활성탄을 이용해 필터를 개발한 겁니다.”

✚ 필터 하나에 두가지 기능이 있는 건가요?
“시중엔 일체형으로 된 필터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필터에 이것저것 넣으려다 보면 되레 이도 저도 아닌 성능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바꿔 쓸 수 있게 탈취 전용 필터를 만든 겁니다. 기술력 하나만은 어디 견줘도 자신 있습니다.”

✚ 공기청정기 시장이 예전만큼의 성장세가 아닙니다. 레드오션이란 얘기도 많고요.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제품을 개발해 한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 지난해 들어서야 현재의 버전을 출시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는 공기 질이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공기청정기 시장이 주춤해질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제품을 출시해놓고도 사실상 방치했습니다. 브랜드 인지도가 없으니 제품이 팔리지 않고, 마케팅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니 손 놓고 있었죠.”

✚ 힘든 시간을 보내셨군요.
“그렇다고 마냥 잠자코 있을 순 없잖아요. 코로나19로 개인위생과 소독 이슈가 떠오르며 전해수기(전기분해형 살균기)를 개발했는데, 또 다른 장애물이 등장하더라고요.”

✚ 하나씩 말씀해주시겠어요? 전해수기를 개발하셨다고요?
“코로나19 이슈가 발생하면서 알코올 기반의 소독제들이 많이 등장했잖아요. 알코올류 제품들이 소독 효과는 있지만 피부가 건조해진다는 단점이 있어요. 전해수기는 수돗물 등의 물을 전기 분해해 살균 효과가 있는 물질(차아염소산)로 변환시켰다가 다시 물로 환원해주는 원리여서 그럴 걱정이 없죠.”

✚ 그런데 장애물이 등장했다는 건 무슨 얘기인가요?
“올 초에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전해수기 성능이 광고 내용에 미치지 못한다’는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일부 업체들의 과대광고가 문제가 됐던 거죠. 우린 고가의 비용을 투입해 동물실험까지 통과했는데, 그 보도 이후 전해수기 시장 자체가 위축됐습니다.”

✚ 전환점을 찾으려 했는데, 그것마저 잘 안된 거네요.
“제품이 좀 팔려야 순환이 될 텐데, 그게 안 되니까 막막하네요. 그래도 좋은 제품 만들고 싶다는 꿈은 아직 놓지 않았습니다.”


✚ 공기청정기, 전해수기 말고 또 만들고 싶은 제품이 있나요?
“일상에서 불편하거나 유해한 환경에 놓였을 때 편리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실버케어 쪽에도 관심이 많고요. 그러려면 일단 지금 사업이 잘돼야 하는데, 뜻대로 잘 안 되는 걸 보면 저의 절실함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렇다고 조바심에 서두를 생각은 없습니다. 천천히 가더라도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다 보면, 소비자들도 결국엔 진심을 알아주지 않겠어요? 사명처럼 내일 또 동쪽에서 해는 떠오를 테니까요. 조금 더 버텨보겠습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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