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기관 출연금 줄인 오세훈 서울시장
‘정치적 의도 있다’ vs ‘재정자립 필요’
내년도 서울시 전체 출연금은 되레 증가

서울시가 2022년 예산안에서 특정 기관의 출연금을 대폭 삭감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오세훈 시장은 ‘오해’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정황을 보면 납득하기 힘든 부분도 적지 않다. 핵심은 특정 기관의 출연금을 대폭 줄인 반면 또다른 기관의 출연금은 크게 늘렸고, 그 바람에 전체 출연금 예산이 되레 증가했다는 점이다. 오세훈 시정市政의 출연금 정책엔 합리적인 기준이 있었던 걸까. 

오세훈 서울시장의 출연금 정책에 합리적인 기준이 있는지 의문이다.[사진=뉴시스]
오세훈 서울시장의 출연금 정책에 합리적인 기준이 있는지 의문이다.[사진=뉴시스]

“관행적ㆍ낭비적 재정지출을 과감히 구조조정하겠다.” 지난 11월 1일 서울시는 2022년도 예산안을 역대 최대(44조748억원)로 책정해 발표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재정지출을 확 늘려 적재적소에 돈을 투입하겠다는 취지였다.

동시에 서울시는 대규모의 출연금 삭감 계획도 내놨다. 지출을 늘리는 한편 강하게 통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참고: 출연금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연구개발사업이나 공익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기관에 반대급부 없이 지급하는 소요 경비다. 예산이나 기금 등에서 지출한다. 출연금은 보조금과는 다르게 사후정산을 하지 않기 때문에 보조금보다 더 엄격한 예산 수립과 관리가 요구된다.]

지방자치단체가 낭비되는 예산을 찾아 조정하겠다는 건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그럼에도 당시 서울시의 출연금 삭감 계획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적 성향과 상반되는 입장을 가진 기관의 출연금을 삭감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서울시가 서울시 소속기관 중 출연금을 가장 많이 줄인 기관은 미디어재단TBS(교통방송)였는데, 내년도 출연금은 253억원(억원 이하 반올림ㆍ아래 동일 기준)으로 책정됐다. 올해 375억원에서 122억원(-32.6%)을 깎았다. TBS 라디오 진행자인  김어준씨의 ‘친여 성향’ 때문에 출연금을 대폭 삭감했다는 의혹이 일만 했다. 

서울시가 TBS 출연금을 대폭 줄인 것을 두고 진영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시가 TBS 출연금을 대폭 줄인 것을 두고 진영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오 시장은 이런 의혹을 일축했다. 그는 서울시의회의 시정 질의응답을 통해 “TBS는 편향적이라 생각하지만, 그 이유로 예산을 삭감한 건 아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TBS TV가 필요한지 되짚어봐야 한다. 사람들이 거의 보지 않는 TV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가. TBS 3개 방송(TVㆍFMㆍeFM) 가운데 TV 시청률은 0.052%다. 또한 최근 5년간 시 산하 출연기관 중 일부 재단을 제외하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관의 평균 재정자립률은 33〜53%인데, TBS는 지난 2년간 20.4%에 불과했다. 좀 더 (재정자립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게 맞다.”

낭비 줄인다더니 출연금 되레 증가

서울시는 출연금 이외에도 사회적경제 민간위탁 사업비나 보조금 등 시민단체 관련 예산을 1788억원에서 956억원으로 832억원(-46.5%)을 삭감했다. 당장 ‘박원순 시장 그림자 지우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오 시장은 “시민들의 자율적인 도움을 받아서 운영하는 게 시민단체의 본래 개념”이라고 반박했다. 쉽게 말해 기관이든 시민단체든 출연금이나 보조금에 의존하지 말고 자체 생존을 고민하라는 얘기다. 

일종의 충격요법을 내건 셈인데, 문제는 오 시장이 강조한 자립의 기준이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정 재단의 출연금을 큰 폭으로 삭감하면서도 일부 재단의 출연금은 큰 폭으로 늘렸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서울시 출연금이 TBS 다음으로 많이 줄어든 곳은 서울연구원이다. 출연금은 올해 325억원에서 내년 261억원으로 64억원(-19.76%) 삭감됐다. 서울기술연구원 출연금은 올해 198억원에서 내년 159억원으로 39억원(-19.96%) 줄었다. 서울관광재단과 서울문화재단 출연금은 각각 30억원(-5.9%), 24억원(-4.3%) 삭감됐다. 

반면 일부 기관의 출연금은 가파르게 늘었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의 출연금은 119억원에서 574억원으로 455억원(384.0%) 증액됐다. 지역상생발전기금 출연금은 올해보다 266억원(13.9%) 늘어난 2178억원, 서울시복지재단은 127억원(30.4%) 증가한 546억원으로 책정됐다. 세종문화회관(399억원)과 서울디자인재단(247억원)의 출연금 역시 전년 대비 각각 54억원(15.5%), 45억원(21.9%) 증가했다.

이밖에 서울산업진흥원(546억원ㆍ전년 대비 7.5% 증가), 한국지방세연구원(50억원ㆍ147.8% 증가), 서울디지털재단(88억원ㆍ41.3% 증가)도 출연금 증가기관에 이름을 올렸다.[※참고: 지역상생발전기금 출연금은 지자체 기금관리기본법에 따라 수도권 3개 광역자치단체(서울ㆍ경기ㆍ인천)가 지방소비세 총액 기준으로 특정 비율에 따라 출연한다. 따라서 이 기사에서 지역상생발전기금 출연금은 다루지 않았다.] 

눈여겨볼 점은 출연금이 늘어난 곳 중에 수익을 내는 기관이 상당수 포함됐다는 거다. ‘수익을 내는 기관으로서의 재정자립률’을 운운하면서 출연금을 건드린 오 시장의 주장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더구나 서울시 전체 출연금 예산을 보면 올해 6751억원에서 내년 7574억원으로 823억원(12.2%)이나 더 늘었다. 2022년 서울시 전체 세출 증가율 9.8%를 2.4%포인트나 웃돈다. 오 시장의 ‘관행적ㆍ낭비적 재정지출 구조조정’ 진정성이 공격을 받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앞서 언급했듯 출연금은 공공의 목적을 수행하는 기관이나 단체에 반대급부 없이 지급하는 돈이다. 국가(혹은 지자체)가 해야 할 사업이지만, 여건상 직접 수행하기 어렵거나 민간이 대행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될 때 해당 업무를 특정 기관이나 단체에 맡긴 후에 재정적 원조를 해주는 거다. 물론 정부나 지자체의 집행부가 달라지면 출연금 액수가 달라질 수 있다. 

상식적인 증감 기준 있어야

중요한 건 보조금과 달리 사후정산을 하지 않기 때문에 출연금을 어떤 곳에 지급할지, 얼마를 책정할지 신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출연금 예산을 증액하거나 감액하려 할 때 상식적으로 납득할 만한 기준이 필요한 건 이 때문이다. 오세훈 시정市政의 출연금 정책은 과연 신중한 결정이었을까.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rsmtax@gmail.com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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