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인센티브 사라져 신규 발주 감소
ESS 업계 화재사고 트라우마 여전
법 개정과 보조서비스 시장 개설 논의
하지만 변화 더뎌 시장 성장세 발 못 맞춰

2017년 8월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첫 화재사고가 났다. 2018년에는 화재사고가 급격히 늘었다. ESS 시장은 위축됐다. 정부와 배터리 업계는 부랴부랴 안전성 강화 방안을 내놨지만, ESS 업계엔 활력이 전달되지 않았다. 이를테면 화재사고가 ESS 시장의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거다. 글로벌 ESS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에겐 반전 카드가 있을까. 

ESS 업계는 여전히 화재사고 후유증을 앓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SS 업계는 여전히 화재사고 후유증을 앓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글로벌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 규모가 2019년 11.1GWh에서 2025년 94.2GWh로 커질 것이다.” 배터리 전문 시장조사업체인 SNE리서치가 2021년 3월 발표한 보고서 내용의 일부다. 골자는 ESS 시장이 연평균 42.8% 커질 거라는 얘기다.

같은해 11월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인 블룸버그NEF는 “글로벌 ESS 시장 규모가 2030년에 358GWh 수준으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발점을 2019년으로 보면 연평균 37.1%의 성장세다. 

전망치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ESS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란 예상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세계 각국 정부의 환경 규제가 ESS 시장과 맞물려 있어서다. 

ESS는 말 그대로 에너지를 저장하는 장치다. 에너지를 저장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에너지를 전기로 바꿔서 저장하는 게 일반적이다. 에너지를 저장하기도 쉽고, 꺼내 쓰기도 편해서다.

특히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자연환경에 따라 전력생산량이 달라지는 만큼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서는 ESS와의 연계가 필수적이다. 시장조사업체들이 ESS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의 분위기와는 달리 국내 ESS 시장은 미지근하다. 2018년 들어 급격하게 늘어난 ESS 화재사고가 시장을 냉각시켰다. 2018년 5.6GWh였던 신규 ‘ESS 연계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이하 ESS 설비)’ 규모는 2019년 3.7GWh로 줄었고(현대경제연구원), 신규 설치 사업장도 2018년 975개에서 2019년 479개로 감소했다(한국전기안전공사). 안전성 논란으로 신규 ESS 설비 발주도 줄어든 셈이다. 

ESS 설비에 한시적으로 적용하던 인센티브도 사라졌다. ESS 설비를 갖춘 사업자들이 생산한 전력을 자체 소비할 경우 전기요금을 할인해주는 ESS 특례할인제도가 2020년 말 일몰된 탓이다. 아울러 실제 생산한 전력량보다 공급인증서(REC)의 가격을 더 얹어주던 REC 가중치도 신규 ESS 설비에는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참고: 종전에는 ESS 설비에 꽤 높은 REC 가중치(4.0 이상ㆍ실제 전력생산량의 4배를 인정)를 부여해왔다. 하지만 ESS 발전사업자들이 수익 극대화를 위해 과도하게 충ㆍ방전을 거듭해 안전문제를 야기한 끝에 화재사건이 줄줄이 터졌다. 또한 전력사용량이 적은 시간대에 전기 방출이 집중돼 전력 부하를 줄이는 데에도 기여하지 못했다. ESS 설비에 부여되던 인센티브가 중단된 이유다. 결국 화재사고가 인센티브에도 영향을 미친 셈이다.]

업계 관계자 A씨는 “화재사고로 인한 안전성 우려, 그로 인한 충ㆍ방전 제한과 수익성 하락, ESS 설비에 대한 인센티브 종료 등 다양한 악재로 공공부문을 제외하면 민간에서의 신규 ESS 발주는 제로에 가깝다”면서 “글로벌 ESS 시장과 국내 ESS 시장의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ESS 시장 활력 찾을 수 있을까 

중요한 건 ESS 시장이 반전될 여지가 있느냐다. 시장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없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정부는 ESS의 안전성 우려를 불식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ESS 안전 확보를 위해 2019년(6월)과 2020년(2월) 두차례의 안전대책을 내놨다. 대책에는 ▲ESS 제조ㆍ설치ㆍ운영 단계별 안전관리 강화 ▲화재 대응능력 제고 ▲신규 설비의 충전율 제한 의무화(기존 설비는 충전율 하향 권고)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와 함께 산자부는 ESS 화재안전성 검증센터를 짓고, 2022년 상반기엔 추가 안전대책도 내놓을 예정이다. 배터리 제조사들도 화재사고 이후 배터리 자체의 안전성을 강화하거나 화재 위험이 없는 배터리 개발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식어버린 ESS 시장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SS 업계는 여전히 화재사고의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어서다. 2021년 10월 태양광 전문매체가 신재생에너지 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내 태양광 ESS 시장전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태양광 ESS 활성화를 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ESS 화재사고 예방 솔루션 부족(28.6%)’을 꼽았다.

그렇다고 ESS 시장의 문제가 화재에만 있다는 건 아니다. ESS 시장의 침체를 불러온 건 화재사고였지만, 그 여파가 충ㆍ방전 제한으로 이어졌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럼 해법은 없을까.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분산에너지활성화 특별법’이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참고: ‘분산에너지’란 각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해당 지역에서 소비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분산에너지활성화 특별법’을 근거로 사라진 ESS 관련 인센티브를 다른 방법으로 받을 수 있는 지원방안을 마련할 수 있어서다.

가령, 분산에너지가 현실화되면 송ㆍ배전망 투자가 줄어들기 때문에 거기서 남는 비용을 ESS의 인센티브로 활용할 수 있지 않느냐는 거다. 물론 분산에너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ESS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요소다. 

‘보조서비스 시장’을 개설하는 방안도 ESS 시장의 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력거래소가 발전소의 출력을 조절해 수요와 공급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소는 환경변화에 따라 전력생산량이 달라져 출력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 ESS는 인위적인 충ㆍ방전을 통해 전력량을 조절할 수 있다. 이렇게 전력량을 조절하는 것을 전력계통에서는 ‘보조서비스’라고 한다.

정부와 배터리 제조 업체가 안전성 강화 방안들을 내놨지만 ESS 시장은 아직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부와 배터리 제조 업체가 안전성 강화 방안들을 내놨지만 ESS 시장은 아직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에 따라 보조서비스 시장을 개설하면 전력이 모자라는 피크시간대(가격 상승대)에 ESS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어 전력계통에도 이롭고, 사업자들도 가격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도 ‘보조서비스 시장’ 개설을 준비하고 있다.

ESS 활성화 관련 법 계류 중 

이태의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보조서비스 시장은 국내에선 생소하지만 전력시스템이 선진화한 국가에서는 이미 정착돼 있다”면서 “에너지 수급을 맞춰줄 수 있는 보조서비스 시장이 들어서면 다양한 ESS 설비가 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갈 길이 아직 멀다. ‘보조서비스 시장’은 일러야 2023~2024년 개설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분산에너지활성화 특별법’은 소관위원회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는데다, ESS 업계의 기대대로 인센티브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과연 ESS는 언제쯤 화재의 후유증을 떨어낼 수 있을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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