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들 분할과 상장 이슈몰이로 떠들썩
특별한 이슈 없던 삼성SDI만 1분기 호실적
활기 없는 국내 ESS 산업은 여전히 숙제

지난 1년간 배터리 제조업계는 기업분할과 상장 이슈로 떠들썩했다. 지난해 LG화학에서 물적분할한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월 상장과 동시에 코스피 2위로 등극했다. SK이노베이션 역시 배터리 부문인 SK온을 물적분할했다. 시기 조율만 남았을 뿐 이 회사의 상장 역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분할도 상장도 수십년 전에 끝낸 삼성SDI는 비교적 조용했다. 그런데 지난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웃은 건 삼성SDI뿐이었다. 

삼성SDI의 올해 1분기 매출은 분기 기준 최대치였다.[사진=뉴시스]
삼성SDI의 올해 1분기 매출은 분기 기준 최대치였다.[사진=뉴시스]

매출 4조494억원, 영업이익 3223억원. 지난 4월 28일 삼성SDI가 발표한 올해 1분기 실적(잠정)이다. 이 발표대로라면 삼성SDI의 매출은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 영업이익은 역대 1분기 기준 최대치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조862억원(36.7%), 영업이익은 1891억원(142.0%) 늘었다.

눈여겨볼 점은 배터리 제조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 포함) 가운데 전년 동기 대비 실적이 개선된 곳이 삼성SDI뿐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LG화학에서 분사해 올해 초 주식시장에 상장한 LG엔솔의 올해 1분기 매출은 4조2541억원, 영업이익은 3412억원이다. 매출은 지난해 1분기(4조3423억원)보다 2.1% 늘었지만, 영업이익(2589억원)은 24.1% 줄었다. 매출 대비 이익률이 줄었다는 얘기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에서 분사한 SK온의 실적도 마찬가지다. SK온의 올해 1분기 매출은 1조2599억원인데, 영업손실이 1766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1분기보다 매출(5263억원)은 7336억원(139.4%) 증가했지만, 영업손실이 967억원(54.7%) 더 늘었다. 두 회사 모두 분사 이슈로 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게 없었던 셈이다. 

삼성SDI의 호실적이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성SDI의 호실적을 이끈 건 에너지솔루션(배터리) 부문이다. 올해 1분기 에너지솔루션 부문 매출은 3조3190억원, 영업이익은 165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9320억원(39.0%), 영업이익은 1181억원(251.8%) 늘었다. 

우선 중대형 배터리의 매출이 늘고 수익성도 개선됐다. 삼성SDI가 지난해 9월에 출시한 각형 전기차 배터리 ‘젠5(Gen.5)’의 판매량이 늘어서다.[※참고: 삼성SDI의 전기차 배터리 ‘젠5’는 니켈 함량이 88% 이상인 하이니켈 배터리다. 니켈 비중이 높으면 배터리 용량이 커지는 반면, 출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삼성SDI는 기존의 니켈·코발트·망간(NCM) 양극재 대신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양극재를 사용하고, 특수코팅 기술을 이용해 단점을 메웠다. 덕분에 에너지밀도는 높이고, 재료비는 20% 이상 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젠5’는 BMW에 공급 중이다.] 

‘전기차 배터리의 브랜드화’와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중점을 둔 삼성SDI의 전략이 시장에 먹힌 셈이다. 여기에 ‘젠5’를 통해 제품 판매가격까지 올라가면서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리스크도 줄었다. 

박강호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고부가 제품의 비중이 늘면서 주요 원자재 가격 상승과 자동차 업체의 생산 차질분을 상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중대형 외 배터리는 희비가 엇갈렸지만 결과적으론 실적을 떠받쳤다. 

중대형 배터리 실적 견인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는 ESS 산업이 비수기인 탓에 산업용 매출이 감소했다. 반면, 가정용 ESS 배터리와 무정전전원장치(UPS·정전 시 전원공급장치)용 ESS 배터리는 판매 비중이 늘어나 실적이 증가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소형 배터리의 매출도 늘었다. 원통형 배터리는 전기차용 판매량 증가, 고출력 배터리를 채용한 전동공구 제품 출시 등 호재를 등에 업고 매출이 증가했다. 파우치형 배터리는 신규 플래그십 스마트폰 출시와 함께 공급량이 늘었다.

실적이 좋은 건 에너지솔루션 부문만이 아니다. 전자재료 부문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7304억원, 1573억원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542억원(26.8%), 영업이익은 710억원(82.3%) 증가했다. OLED 소재 판매량은 줄었지만, 반도체 소재 판매량이 적정선을 유지하고, 프리미엄 TV용 고부가 편광필름 공급이 늘어난 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향후 전망은 어떨까. 시장에선 “당분간 실적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에너지솔루션 부문의 매출 성장세가 예상돼서다. 우선 삼성SDI는 ‘젠5’보다 성능이 더 뛰어난 ‘젠6’를 개발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조만간 ‘젠6’의 수주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젠5’를 통해 제품의 성능을 개선했던 것처럼 원통형 배터리의 성능을 끌어올릴 계획인데, 이미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의 시제품을 완성했다. 테슬라가 2023년부터 적용하기로 한 4680 원통형 배터리와 비슷한 형태다. 기존 원통형 배터리보다 에너지밀도가 높고 생산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완성차 업체인 스텔란티스와의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JV) 설립도 조만간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북미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건데, 그러면 전기차 배터리 매출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SDI는 그동안 경쟁사보다 수주와 투자에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면서 “따라서 투자가 곧바로 매출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삼성SDI 앞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재료 가격 추가 상승, 주요 부품 수급 진통으로 완성차 업체의 생산 차질,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조치 장기화, 반도체 공급 부족 문제 등 대외 환경 리스크가 존재하고 있어서다. 

리스크 여전히 많은 국내 ESS

대외 리스크뿐만이 아니다. 국내 ESS 산업이 여전히 침체기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특히 지난 5월 2일 ‘제3차 ESS 화재원인 조사단’은 2020~2021년 사이에 일어난 ESS 화재사고 4건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화재사고의 원인을 ‘배터리 내부 이상’으로 결론지었다. 

배터리 제조사의 과실 여부를 판단하지는 않았지만, 수차례의 ESS 화재사고 원인 조사 결과가 대부분 ‘배터리 문제’로 귀결된 셈이다.[※참고: 4건의 화재사고는 전남 해남(2020년 5월), 충북 음성(2020년 9월), 경북 영천(2021년 3월), 충남 홍성(2021년 4월)에서 발생했다.] 

이는 배터리 제조사로선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결과다. 이렇게 호재와 악재가 얽히고설킨 상황에서 삼성SDI는 또 다른 전진을 꾀할 수 있을까. 한가지 분명한 건 시끌벅적한 배터리 경쟁사들과는 달리 삼성SDI는 ‘소리 없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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