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 중국에 1위 다시 뺏겨
컨테이너선 수주 휩쓴 중국 조선
고부가 초대형 컨테이너선도 위태

지난해 한국 조선이 중국 조선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줬다. 그동안 LNG운반선을 앞세워 벌려놨던 격차가 줄어든 원인은 ‘컨테이너선’에 있다. 해운호황에 힘입어 부쩍 늘어난 컨테이너선 발주를 중국이 쓸어 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우리가 강점을 보였던 컨테이너선 시장을 왜 놓쳤느냐는 거다. 

중국 조선이 컨테이너선 수주실적을 앞세워 세계 1위 자리를 탈환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국 조선이 컨테이너선 수주실적을 앞세워 세계 1위 자리를 탈환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던 조선업계에 ‘뜻밖의 햇살’이 밀려든 건 2021년이었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계는 지난해 세계 시장에서 1744만 CGT 규모의 선박을 수주했다. 전년(870만 CGT) 대비 두배 이상 많은 수주량이었다. 1845만 CGT를 수주했던 2013년 이후 8년 만의 최대 실적이기도 했다.

[※참고: 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는 선박의 무게 단위인 GT에 선박의 부가가치와 작업 난이도 등을 고려해 산출한 단위다. 서로 부가가치가 다른 선종을 비교하기가 쉽다.]

국내 주요 조선업체들도 오랜만에 수주 목표량을 초과 달성했다. 현대3사(현대중공업ㆍ현대삼호중공업ㆍ현대미포조선)는 당초 목표치였던 149억 달러(약 17조7608억원)보다 53.0% 많은 228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따냈고, 대우조선해양은 목표수주액(77억 달러)을 40.3% 웃돈 108억 달러 실적을 올렸다. 삼성중공업도 122억 달러의 수주실적을 기록하며, 수주목표(91억 달러)를 34.1% 넘겼다.

하지만 햇살이 빛났던 만큼 그림자도 짙었다. 국내 조선업계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음에도 중국 조선에 세계 1위(수주량 기준) 자리를 내줬다. 한국의 성과도 괄목할 만했지만 중국은 더 알찬 실적을 냈다는 거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해 세계 조선시장에서 발주된 4664만 CGT 규모 선박 중 2286만 CGT를 수주하며 49.0%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2위를 기록한 한국 조선(37.4%)과의 점유율 차이는 10%포인트를 훌쩍 넘어섰다.

[※참고: 최근 몇년간 한국 조선은 중국 조선과의 순위 싸움에서 우위를 보였다. 2018년과 2020년엔 1위 자리를 꿰찼다. 2019년엔 아깝게 2위에 머물렀지만 중국과의 시장점유율 차이는 단 0.1%포인트에 불과했다. 이를 감안했을 때 지난해 한국과 중국의 점유율 격차가 크게 벌어진 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중국과 한국의 점유율은 어디에서 차이가 났던 걸까. 답은 ‘컨테이너선’에서 찾을 수 있다. 컨테이너선은 화물창과 갑판에 컨테이너 화물을 선적해 운송하도록 설계한 배다. 지난해 해운업계가 호황을 맞은 덕분에 조선시장에선 전년 대비 3배 이상 많은 컨테이너선 발주가 쏟아졌다. 중국은 그 가운데 55%를 쓸어 담았고, 한국 조선은 34%가량 수주하는 데 그쳤다(영국 해운시장 분석기관 베셀즈밸류 2021년 12월 15일 기준). 

컨테이너선 수주 경쟁에서 중국이 한국을 압도한 게 1위 자리를 바꿔놨다는 건데, 이는 가볍게 여길 만한 문제가 아니다. 당초 컨테이너선은 한국 조선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선종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중국 해운산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자국 발주량이 부쩍 늘어난 덕분 아니냐”는 분석을 내놨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중국이 발주한 컨테이너선 물량 중 중국 조선소에서 수주를 따낸 비율은 2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중소형 컨테이너선이 국내 조선업체의 핵심 제품은 아니다. 우리가 경쟁 우위를 갖고 있는 건 LNG운반선을 비롯해 초대형 유조선(VLCC),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건조 기술 난이도가 높은 고부가가치 선박이다. 문제는 고부가가치 선박마저 ‘안전지대’가 아니란 점이다. 중국 조선이 초대형 컨테이너선에서도 한국 조선과 비등비등한 수주실적을 기록하고 있어서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1만2000TEU급(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 이상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총 195척(1158만 CGT) 발주됐는데, 그중 한국 조선과 중국 조선이 수주한 선박이 각각 95척(549만 CGT), 90척(535만 CGT)이었다. 지난해뿐만이 아니다. 한국 조선과 중국 조선은 2020년에 각각 24척, 20척을 수주했고, 2019년엔 14척씩 수주량이 같았다.

 

이런 실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조선업계가 세계 1위 자리를 놓친 이유가 컨테이너선에 있는데, 강점이 있는 고부가 컨테이너선까지 중국에 넘어가면 위기가 심각해질 수 있어서다. 우리가 왜 중국에 컨테이너선 시장을 잠식당했는지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의 말을 들어보자. “통상 컨테이너선은 한번에 대량으로 발주되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자금력도 수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자금 조달 능력이 충분한 선주들은 가격이 비싼 대신 기술력이 있는 국내 조선소를 선택하지만 그렇지 않은 선주들은 중국 선박금융의 지원을 받아 중국 조선소에 발주를 넣는다. 품질 리스크 우려도 있지만 대형 컨테이너선을 수주하는 곳들은 중국 내에서도 상위권에 있는 일부 조선소들이다. 더구나 중국 업체에 건조를 맡긴 선주들은 값싸게 배를 만드는 대신 품질관리를 철저히 해서 리스크를 해소한다. 실제로 중국에서 건조한 배들은 현재 문제없이 운항되고 있다. 우리의 기술력이 아무리 월등하더라도 중국의 기세를 꺾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거다.” 

한국이 중국에 내준 조선 1위 자리를 탈환한 게 2018년이다. 그 뒤 3년여간 굳건하게 쌓아올린 아성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중국이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컨테이너선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되짚어봐야 하는 이유다. 한국 조선은 다시 1위 자리에 올라갈 수 있을까.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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