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제보 내용보단 제보자 공격에 혈안
내로남불식 논점 흐리기에 정책 묻혀
풀지 못한 문제서 기인한 사회적 비용 누가 책임지나

언뜻 봐도 김혜경씨 잘못인데,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며 방어한다. 누가 봐도 김건희씨 잘못인데, 국민의힘 사람들은 “정치공작”이란 말을 입에 담는다. 20대 대선이 지긋지긋한 ‘내로남불’에 빠졌다. 많은 이가 ‘국민’을 입에 물고 20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정책도, 공약도, 미래를 위한 플랜도 잘 보이지 않는다. 2836억원짜리 대선쇼란 비아냥을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제보의 본질보다 제보자에 더 집중했다. 사진은 윤석열(왼쪽) 후보와 이재명 후보.[사진=뉴시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제보의 본질보다 제보자에 더 집중했다. 사진은 윤석열(왼쪽) 후보와 이재명 후보.[사진=뉴시스]

# 영화 ‘내부자들’의 한 장면. 정치인과 기업, 언론, 공권력이 결탁한 거대한 카르텔에 기생하던 정치깡패가 자신의 뒤통수를 친 카르텔을 향해 복수의 부메랑을 날리려 한다. 카르텔의 핵심 내부 자료를 손에 거머쥔 깡패는 이를 언론에 공개한다. 깡패는 순진했고, 언론은 교활했다.

언론은 여론을 이렇게 몰아간다. ‘범죄를 저지른 정치깡패의 말을 누가 신뢰할 수 있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정치깡패의 공작이다.’ 논점을 흐리는 꼼수에 정치깡패는 또한번 뒤통수를 맞는다. 덕분에 국민을 ‘개나 돼지’로 여기는 카르텔의 핵심(언론사 주필)은 위기를 벗어난다. 

이게 영화에서만 벌어지는 일일까. 아니다. 20대 대선을 앞둔 정치판에서 이런 일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단적인 예 두가지만 보자. 

# 지난 1월 16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아내 김건희씨가 A매체 기자와 수개월 간 통화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보도를 통해 나온 녹취록 내용은 크든 작든 파장을 일으켰다. 법적 혹은 정치적 문제로 불거질 수 있는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어서였다.

녹취록이 공개되자 야권 인사들은 갖가지 뒷말을 늘어놨다. “알고 봤더니 기사를 쓰는 기자가 아니라 카메라 기자다” “카메라 기자가 거짓말을 해가면서 김건희씨에게 접근했다”는 식이었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하는 행태”라고 비난했다.

# 그로부터 약 2주 후인 1월 28일, 이번에는 경기도청 비서실에 근무한 공무원 B씨의 제보를 토대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아내 김혜경씨가 공무원을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B씨는 총무과 소속 C씨의 지시를 받은 텔레그램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 그러자 김혜경씨가 ‘황제 의전’을 받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은 느닷없이 B씨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현근택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이 한 방송 프로그램과 SNS를 통해 쏟아낸 말은 대표적 사례다. “공익제보자를 자처하는 분이 후원계좌를 만들었다. 결국 돈 때문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더구나 B씨는) 시험을 통해 채용된 일반직이 아닌 별정직이다. 단체장의 임기가 끝나면 그만둬야 한다. 당시 C씨의 지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만두면 됐을 거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만두지 않고 통화를 녹음하고 대화를 캡처한 건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전하람 국민의힘 전남공동선대위원장은 “해당 내용을 반박하지 못하니 메신저를 공격하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어떤가. 영화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더구나 현실의 제보자들은 정치깡패가 아닌 기자나 전직 공무원이다. 그럼에도 여야 모두 서로에게 던져진 제보를 입맛대로 취사선택하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을 전한 제보자는 여지없이 공격했다. 공교롭게도 방어에 나선 상대방을 반격하는 수법도 똑같다.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하는 건 안 된다.” 

녹취록ㆍSNS 폭로전에 얼룩

이게 정상적인 상황일까. 그렇지 않다. 검증되지 않은 누군가와 ‘비밀스러운 거래’를 운운한 김건희씨나 남편의 직위를 이용했든 그렇지 않든 사실상 수혜를 입은 김혜경씨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거대 양당이 이런 문제점을 ‘내로남불식’으로 갈라친다는 점이다.

여기엔 정치권의 아귀다툼을 여과 없이 뉴스로 만들어주는 주류언론, 각 캠프에서 떡고물을 바라며 폭로전과 방어전을 일삼은 수준 낮은 정치인들이 도사리고 있다. 

문제는 녹취록ㆍSNS 등 폭로전이 내로남불식 주장과 섞이면서 대선후보들의 철학ㆍ정책ㆍ공약을 검증하는 장場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 때문인지 ‘수천억원짜리 대선쇼’란 비아냥이 섞인 지적까지 숱하게 제기된다.[※참고: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대 대선에 집행할 예산은 2836억2600만원이다. 19대 대선(2067억8000만원) 때보다 37.2%나 많다.] 

심각한 건 또 있다. 20대 대선을 기점으로 반드시 논의해야 할 사회문제마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거다. 무엇보다 ‘고용 이슈’가 사라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의 정규직 비율은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인 2017년 67.1%에서 2021년 61.6%로 줄었다.

같은 기간 비정규직 비율은 32.9%에서 38.4%로 되레 상승했다. ‘돌발변수’인 코로나19 탓이기도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고용 정책에 문제가 있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여야 대선 캠프에선 이 문제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하지 않는다. 

청년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할 곳이 부족하니 고용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양질의 일자리도 많지 않다. 꿈을 펼칠 공간도, 희망을 걸 만한 기회도 없다. 각 대선캠프는 ‘청년’을 앞세운 위원회 등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그뿐이다. 정책적 이슈를 두고 상호간에 의견을 나눈 적도, 더 좋은 플랜을 위해 머리를 맞댄 적도 없다. ‘청년들을 들러리로 세웠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거시경제 이슈도 내로남불에 묻힌 지 오래다. 고물가를 대체 어떻게 해소할 건지,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과 전셋값은 어떻게 잡을 건지 등 민생 현안을 해결할 만한 공론의 장은 이번 대선 국면에서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ㆍFed)가 올해 기준금리를 7차례나 끌어올릴 거라는데,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두고 머리를 맞대기는커녕 ‘천문학적인 추경’이나 요구하면서 제 주장만 펼친다. 

대선 정국에 국민 정서는 불안하다.[사진=뉴시스]
대선 정국에 국민 정서는 불안하다.[사진=뉴시스]

물론 각 캠프에선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쇼트폼 형식’으로 국민 개개인을 위한 공약을 내놓고 있는 건 20대 대선에서 나타난 나름의 변화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거기서 내세운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돈이 드는지, 그로 인해 수반되는 또다른 비용은 없는지 등의 논의를 찾아보기 힘든 건 매한가지다. 

여야 공방전, 민심은 뒤숭숭

각종 사회 문제들로 인해 민심이 뒤숭숭하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짓던 신규 아파트가 속절없이 무너진 사고는 국내 건설업계의 한심한 민낯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향후 지어질 아파트들이 괜찮을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CJ대한통운 택배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지 두달이 다 돼 가지만 이렇다 할 해법도 찾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비노조 택배기사들까지 나서 파업을 멈추라고 집회를 개최할 정도다.

지난해 대규모 환불 대란을 일으킨 머지포인트 사태는 현재 재판 중이지만 피해자들이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상황이 이런데도 20대 대선 국면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은 “김혜경, 김건희, 내로남불만 생각난다”며 한숨을 내쉰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빈틈이 생기고, 그 빈틈에선 피해자가 생긴다. 수많은 사상자와 피해자를 양산한 HDC현산 아파트 붕괴사고와 머지포인트 사태는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이런 빈틈을 메우고 거기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건 리더들의 몫이다. 지금 대선후보들은 그런 준비를 하고 있을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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