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손’이 베팅한 로블록스와 블리자드의 민낯
일시적 주가 등락만 볼 게 아냐
아직은 DAU 등 지표 중요해

짐 시몬스와 워런 버핏. 월가의 ‘큰손’인 투자자가 지난해 증권가 신흥 세력으로 꼽히는 로블록스와 블리자드의 주식을 각각 매입했습니다. 그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잘나가던 로블록스의 주가는 폭락했고, 각종 논란에 휩싸였던 블리자드의 주가는 ‘떡상’했습니다. 언뜻 시몬스가 틀리고, 버핏이 맞았다는 내용인 듯하지만, 그게 핵심이 아닙니다. IT 시대를 이끈 FAANG에서부터 신흥세력을 관통하는 ‘성장동력’이 무엇인지 살펴보자는 게 이 기사의 의도입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그 답을 찾아봤습니다.

워런 버핏과 짐 시몬스가 투자한 액티비전블리자드와 로블록스의 평가가 엇갈렸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워런 버핏과 짐 시몬스가 투자한 액티비전블리자드와 로블록스의 평가가 엇갈렸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증시에 관심이 많다면 한번쯤 FAANG이란 단어를 들어봤을 겁니다. 페이스북(현 메타)·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의 앞머리를 따서 만든 단어로, 지난 10년간 IT 업계를 이끌었던 5개 기업을 부를 때 쓰였죠. 증권가에서 미 증시의 흐름을 파악할 때 FAANG의 주가를 참고할 정도로 이들 기업이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그런데, 요즘 FAANG의 주가가 심상치 않습니다. 지난 1월 3일(현지시간) 338.54달러였던 메타의 주가는 현재 200.06달러(3월 4일)로 40.9% 하락했습니다. 메타뿐만이 아닙니다. 같은 기간 애플(-10.3%), 아마존(-14.5%), 넷플릭스(-39.4%), 구글(-9.0%)의 주가도 하락세를 맞았습니다. 최근 “FAA NG이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업계에선 이들 기업의 주가가 휘청거리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로 ‘성장 기대감의 부재’를 꼽습니다. 메타의 경우, 지난해 4분기 보고서를 통해 페이스북의 하루 활성 이용자 수(하루 동안 해당 서비스를 이용한 순수 이용자 수·DAU)가 19억2900만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같은해 3분기 이용자 수(19억3000만명)보다 100만명 줄어든 수치입니다.

전체 DAU와 비교하면 ‘감소치’가 새발의 피에 불과하지만, 투자자들은 이를 예민하게 바라본 듯합니다. 2월 3일 메타가 2021년 4분기 실적을 발표 직후 주가가 237.76달러를 기록하며 전일(323.00달러) 대비 26.3%나 하락했으니까요.

넷플릭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4분기 실적발표에서 신규 가입자 수가 828만명이라고 발표했는데, 이는 월가의 예상치(839만명)보다 11만명 적었습니다. 페북과 마찬가지로 11만명은 미미한 차이지만 주가는 508.25달러(1월 20일)에서 397.50달러(21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애플과 아마존, 구글은 아직까진 각자의 분야에서 성장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예전과 같은 기대감은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이렇듯 FAANG이 움츠러들자 투자자들은 이들 기업의 뒤를 잇는 ‘신흥세력’에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향후 고성장할 산업으로 꼽히는 ‘메타버스’와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Non Fungible Token), 온라인 게임에서 활약 중인 기업에 관심을 가집니다. 이들 기업의 주식이 FAANG과 같은 성장주가 될 거란 기대감을 갖고 있어서입니다.[※성장주는 현재의 실적이 아닌 미래의 성장 가능성에 투자하는 주식을 뜻합니다.]

실제로 월가의 ‘큰손’들도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이들 기업의 주식을 사들였습니다. 워런 버핏의 투자회사인 버크셔해서웨이는 지난해 말 액티비전 블리자드(이하 블리자드)의 주식을 1465만8121주나 매입했습니다. 짐 시몬스가 이끄는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는 조금 더 이른 시기인 지난해 8월 로블록스 코퍼레이션(이하 로블록스)의 주식 75만4200주를 사들였습니다.

희비 엇갈린 두 게임사

블리자드와 로블록스는 둘 다 온라인 게임 개발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워런 버핏과 짐 시몬스가 이들 기업의 주식을 매입할 당시 두 기업의 평가는 서로 달랐습니다.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디아블로·오버워치 등 세계적인 흥행작을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지난 몇년간 그 명성을 이어갈 차기작을 내놓지 못하면서 위기설을 겪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지난해 하반기 사내 성차별, 성추행 논란까지 겹쳐지면서 주가가 곤두박질쳤죠. 지난해 6월 14일 99.18달러로 고점을 찍은 후 12월 31일 기준 66.53달러까지 떨어졌습니다.

반면 로블록스는 게임 업계의 다크호스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메타버스 서비스를 도입한 게임 로블록스 속에서 이용자들은 직접 게임을 만들거나 아바타(게임 내 이용자의 분신) 의상을 만드는 등 다양한 즐길거리를 만끽할 수 있었죠. 로블록스는 10대 이용자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데 성공했고, 2020년 4분기 기준 DAU가 3713만명에 달할 정도로 급성장했습니다.

이 기세에 힘입어 로블록스는 지난해 3월 나스닥에 입성했는데, 당일 시가 총액이 383억 달러(47조132억원)를 기록해 업계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지난해 10월 기준 DAU가 4800만명을 돌파하며 꾸준한 성장세도 보였습니다.

흥미로운 건 워런 버핏과 짐 시몬스가 주식을 사들인 이후 두 게임사의 평가가 180도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로블록스부터 살펴볼까요? 지난 2월 16일 로블록스는 2021년 4분기 매출이 5억6800만 달러(6977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시장 예상치인 6억400만 달러(7429억원)에 미치지 못한 수치입니다. 이용자들의 로블록스 이용시간이 108억 시간으로 전 분기(112억 시간) 대비 3.6% 줄어든 게 이유였죠.

업계에선 로블록스에 갖는 이용자들의 흥미가 그만큼 줄었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발표 당일 주가도 전일 대비 26.5% 떨어진 53.87달러를 기록했죠.


이원주 키움증권 애널리스트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로블록스의 경우 미국에서 시작한 서비스이므로 미국 이용자와 관련된 통계가 선행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미국 관련 지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미 로블록스 이용시간 성장세가 사상 처음으로 줄어든 건 주가에 악재로 작용하기 쉽다. 투자자들의 머릿속에서 다른 나라에서도 로블록스의 성장이 곧 둔화할 거란 타임라인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로블록스의 주가가 지나치게 고평가돼 있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영진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영업이익 대비 시가총액이 고평가된 측면이 있다”면서 “주가가 비싼 걸 정당화하려면 회사가 무한히 성장하는 듯한 느낌을 시장에 줘야 하는데, 로블록스의 지난해 4분기 실적은 그렇지 못했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렇다고 로블록스 서비스의 성장성이 낮은 건 아닙니다. 사업을 확장할 여지가 아직은 충분합니다. 이를 두고 데이비드 바수츠키 로블록스 CEO는 “로블록스는 아직 광고사업조차 시작하지 않았다”면서 “수익을 창출할 기회가 아주 많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원주 애널리스트도 “로블록스는 현재 10대 위주의 콘텐츠만 제작하고 있다”면서 “향후 성인 관련 콘텐츠를 유통하면 20대가 될 지금의 소비자들을 붙잡아둘 수 있고, 신규 10대 소비자가 계속 유입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블리자드를 살펴볼까요? 워런 버핏이 투자한 이후 블리자드의 주가는 고공행진 중입니다. 지난 1월 18일 마이크로소프트(MS)가 블리자드를 인수·합병(M&A)하겠다고 발표하면서입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만 687억 달러(84조 6246억원)로, 이는 IT업계 M&A 사상 최고 금액입니다. 그러자 발표 직후 65.39달러(1월 14일)였던 블리자드 주가는 82.31달러(1월 18일)로 껑충 뛰었고, 현재까지도 80.55달러(3월 7일)를 기록하며 기세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두 기업의 M&A 직전 블리자드 주식을 대거 사들였던 워런 버핏에게도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업계에선 그가 적어도 2억 달러(2463억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시몬스 vs 버핏 누가 옳았나

그럼 짐 시몬스는 틀린 판단을 했고, 워런 버핏이 옳았다고 봐야 할까요? 아직은 단정짓기 이릅니다. 다시 블리자드 얘기로 돌아가보죠. 블리자드가 세계 굴지의 기업 MS에 편입되자 투자자들 사이에선 블리자드의 주가가 90달러대까지 회복할지 모른다는 낙관적인 전망이 나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섣부르게 판단해선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M&A가 불발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MS의 블리자드 인수 완료 시기는 내년 하반기로 예상이 되고 있는데, 이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기 위해선 먼저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반독점법 관련 규제를 통과해야 합니다.


반독점법은 특정 기업이 M&A나 가격 담합 등 불공정 행위를 통해 시장을 독점하는 걸 금지해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입니다. 게임 콘솔인 XBOX 시리즈로 비디오 게임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MS와 게임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블리자드가 만났으니 반독점법 심사가 깐깐하게 이뤄질 공산이 큽니다.

현재 블리자드 주가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익명을 원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M&A로 블리자드 주가가 오른 건 두 기업 간의 시너지에 관한 기대감이 반영됐다기보단 블리자드 인수가격(1주당 95달러)에 주가가 추종한 것일 수 있다”면서 “블리자드를 둘러싼 부정적인 이슈들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조용민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도 “대부분의 게임주들이 하락장을 맞고 있는 걸 생각하면 예외적인 케이스”라면서 “블리자드 주가는 M&A의 성사여부에 많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블리자드의 몸값이 높아진 게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거나 눈여겨볼 만한 실적을 냈기 때문이 아니라는 얘기죠.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는 블리자드에 눈독을 들였다. 사진은 2014년 두 사람이 한 행사에서 함께한 모습.[사진=뉴시스]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는 블리자드에 눈독을 들였다. 사진은 2014년 두 사람이 한 행사에서 함께한 모습.[사진=뉴시스]

이처럼 최근 증권가에서 각광받고 있는 신흥세력들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안고 있습니다. 로블록스는 정체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와 동시에 사업 확장을 통해 ‘제2의 도약’을 할 수 있다는 잠재력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블리자드는 MS의 후광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지만 해결해야 할 부정적인 사건들이 쌓여 있습니다. 이들 기업의 양면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죠.

아울러 기업들의 객관적인 지표도 면밀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로블록스의 사례가 보여주듯 신흥세력의 평가가 지표 변화에 따라 눈에 띄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조용민 애널리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메타버스나 NFT 같은 개발이 한창인 기술을 보유했는지 여부로 이들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건 리스크가 있다. 이 기술들이 상용화하는 건 아직 먼 미래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DAU·이용시간·구독자 수 같은 이용자 관련 지표를 체크해 두는 게 좋다. 내로라하는 기술을 가졌다고 해도 이들 기업의 사업 대상은 결국 사람이기 마련이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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