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최씨의 규소 앓이
규소 값 올라 리모델링 비용 상승
반도체 가격 따라 전기차 가격도 출렁

전세계 곳곳에 널려 있고, 여기저기 안 쓰이는 곳이 없지만 수입에 많이 의존하는 광물이 있다. 바로 규소다. 그 때문에 ‘희유금속’으로 분류되는데, 다양한 곳에 폭넓게 사용되다 보니 수급이 꼬이면 우리 일상도 타격을 입는다. 결혼을 앞둔 직장인 최정우씨도 규소 때문에 홍역을 앓았다.[※참고: 희유금속의 분류 기준 중 하나는 ‘수입 의존성’이다. 그래서 그 양이 많아도 희유금속이 될 수 있다.]

규소 가격은 주택 리모델링 등 서민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규소 가격은 주택 리모델링 등 서민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38살 직장인 최정우(가명)씨. 그의 평소 지론은 ‘나로부터 친환경’이다. TV에서 틈만 나면 떠들어대는 ‘북극곰 타령’ 때문도, 기업들의 ‘ESG 경영 타령’ 때문도, 정부의 친환경 정책 때문도 아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쓰레기 더미들 때문이다.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어서가 아니다. 많아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주 1회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데, 수거날에는 재활용 쓰레기와 종량제 봉투에 담긴 일반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인다. “저 많은 쓰레기가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과연 버릴 곳은 있을까. 이대로 가다 쓰레기와 함께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최씨는 ‘내가 친환경을 실천하지 않으면 내가 서 있을 곳이 없겠다’ 싶었다. 그가 ‘나로부터 친환경’을 스스로 다짐한 이유다. 

사실 최씨의 이런 생각은 기우가 아니다. ‘재활용 쓰레기의 재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뉴스는 잊을 만하면 보도된다. 거대한 쓰레기 매립장이 있는 인천은 더 이상 쓰레기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내만이 아니다. 쓰레기를 자원으로 쓰던 중국조차 이젠 쓰레기를 수입하지 않는다. 최씨처럼 ‘친환경’으로 무장한 사람도 자기 동네에 쓰레기장이 생긴다면 반대할 상황이니 중국이라고 오죽했을까. 

그래서인지 최씨의 ‘나로부터 친환경’은 눈물겹다. 음식은 남기지 않기 위해 가급적 적게 만든다. 생필품은 되도록 리필제품을 사용하고, 봉투나 비닐봉지를 쓰지 않기 위해 언제나 에코백을 들고 다닌다.

필연적으로 폐기물을 만들어내는 ‘에너지’도 나름의 방식으로 잘 쓰지 않는다.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데다 배달원의 안전까지 해치는 배달음식은 아예 주문조차 하지 않는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닌다. 

그런 최씨가 최근 결혼을 앞두고 있다. 문제는 결혼 준비를 하면서 그놈의 규소 때문에 ‘나로부터 친환경’이라는 지론에 심각한 회의감이 들었다는 거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최씨는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데다 나름 재테크도 잘한 덕분에 경기도 변두리에 있는 아파트 한채를 장만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아내 될 사람과 통장을 합치고, 대출을 껴 사긴 했지만 말이다. 

아내의 돈을 합쳤든 은행의 돈을 빌렸든 아파트를 고를 때 최씨의 ‘친환경 마인드’는 여지없이 발동했다. 발코니를 확장하지 않은 아파트를 고른 거다. 아무래도 확장을 하면 단열이 제대로 안 돼서 여름에는 냉방을, 겨울에는 난방을 더 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아파트 연식이 좀 있어서 그런지 집은 전체적으로 리모델링을 해야 했다. 문제는 고작 화장실과 발코니 수리에만 적지 않은 비용이 산출됐다는 거다. 인터넷카페에 실린 글을 살펴보니 가격이 1.5배나 비쌌다.

수리업체에 따졌더니 업체의 설명은 이랬다. “타일 가격이 올라서 어쩔 수가 없어요.” 타일의 재료인 규소 가격이 오르면서 타일값도 상승했다는 거였다. 최근 원자재 가격이 올라 산업계의 타격이 심각하다는 뉴스는 봤지만 최씨는 그게 자신의 삶에 직결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림➊은 수리업체의 해명을 입증해준다. 규소의 가격은 세라믹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세라믹은 타일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중국산 규소 가격은 연초 대비 약 6% 올랐다.

지난해엔 반도체와 태양전지용 폴리실리콘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규소 가격이 단기간에 300% 치솟기도 했다. 가격 반영 기간이나 중간 마진 증가 등을 고려하면 ‘타일 가격 상승’은 그럴 법했다. 결국 최씨는 쓴 입맛을 다셔야 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결혼 전 자동차 없이 살아온 최씨는 결혼과 함께 차를 구입하기로 맘먹었다. 당연히 친환경을 추구하는 그의 선택지는 내연기관차가 아닌 전기차였다.

전기차에는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많은 반도체가 들어간다.[사진=뉴시스]
전기차에는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많은 반도체가 들어간다.[사진=뉴시스]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반도체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전기차 가격도 확 올랐다. 이 역시 규소 가격 상승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림➋에서 보듯 반도체의 주재료가 규소를 이용해서 만드는 메탈실리콘이나 폴리실리콘, 혹은 게르마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연기관차에는 200여개의 반도체가 들어가지만 전기차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1000여개의 반도체가 투입된다. 최씨는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사이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차 구입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A씨는 친환경 에너지를 직접 생산해서 사용하는 태양광 패널을 놓기로 했는데, 이 역시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태양광 셀의 주재료인 태양전지용 폴리실리콘 가격이 올라 비용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그림➌의 여파가 고스란히 전달된 셈이다. 태양광 산업에 진출한 테슬라가 지난해 가정용 태양광 지붕 ‘솔라루프’의 가격을 인상했다는 소식이 그저 바다 건너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최씨는 자신이 평소 생각했던 ‘나로부터 친환경’이라는 지론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지론을 지키자니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 규소를 수입에 의존하는 산업 구조 탓인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생각한다.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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