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뒤흔들고 있는 공급망
전통적·경제적·네트워크 관점서
2022년 공급망 미래 살펴본 결과
공급망 대란 쉽게 해소할 수 없어
글로벌 공급망 근본적 혁신 필요

반도체가 부족해 자동차와 스마트폰을 만들지 못한다. 감자가 없어 햄버거 세트에서 감자튀김이 자취를 감춘다. 요소의 태부족으로 요소수 공급이 급감해 전국 화물차들이 멈춰 선다. 모두 무너진 공급망이 불러온 결과다. 문제는 공급망을 위협하는 리스크가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2022년엔 공급망 대란을 극복할 수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전통적 관점, 경제적 관점,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미래를 살펴봤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망이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망이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에 사람들의 긴 행렬이 늘어서 있다. 커다란 문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누군가 카운트다운을 외친다. “셋, 둘, 하나.”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레이스가 시작된다. 이곳은 오픈런(open run) 현장이다.

오픈런은 우리말로 ‘개점 질주’다. 쇼핑을 하기 위해 상점의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간다는 뜻이다. 오픈런이 벌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해당 제품ㆍ서비스를 원하는 사람(수요)은 많은데 정작 제공하는 재화의 수(공급)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픈런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는 수급의 불균형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혹자는 공급을 늘리면 해결될 일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맞다. 공급이 수요를 충족하면 오픈런은 필요 없다. 문제는 재화의 공급 과정에 숱한 변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변수들의 배경에는 다수의 거래 주체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공급망이 있다. 지금 글로벌 경제에서 첨단기술 제품(반도체ㆍ자동차)부터 식품(감자ㆍ소시지), 원료(마그네슘ㆍ희토류)에 이르기까지 ‘오픈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바로 공급망 때문이다.

공급망과 무한대의 변수들    

공급망은 공급자들 간 거래 체계다. 이 체계 안에는 하나의 상품을 생산ㆍ유통ㆍ판매하는 데 참여하는 거래 주체들이 사슬처럼 연결돼 있다. 그렇다 보니 공급망의 어느 한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공급망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현재의 공급망 대란도 원료 회사, 부품사, 설비업체, 운송업체 등 공급망에 존재하는 거래 참여자들이 연쇄적으로 문제의 늪에 빠진 탓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공급망 대란을 언제쯤 해소할 수 있을까. 공급망의 향방을 좌우하는 변수를 어느 한가지로 규정할 수는 없다. 각각의 변수에 내재한 리스크도 천차만별이다. 공급망의 미래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2022년에도 공급망 대란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22년에도 공급망 대란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큰 틀에서 향후 방향성을 가늠해볼 수는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3가지 관점(전통적 관점ㆍ경제적 관점ㆍ네트워크 관점)에서 공급망의 미래를 살펴본 이유다. 과연 글로벌 공급망은 어떤 방향으로 향하고 있을까. 

■전통적 관점 = 전통적인 관점에서 공급망을 살펴보려면 먼저 ‘4가지 V’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V가 의미하는 것은 ▲변동성(volatility) ▲가시성(visibility) ▲동기화(volume) ▲속도(velocity) 등이다.

통상적으로 공급망의 변동성이 크고 속도가 느릴수록, 가시성과 동기화 능력이 떨어질수록 공급망이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고 해석한다.[※참고: 여기서 가시성이란 공급망 내 변수가 발생한 지점을 판별할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투명하고 선명한지를 의미한다. 가시성이 높을수록 공급망의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일어났는지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동기화는 수요과 공급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그렇다면 4가지 V를 적용해 살펴본 글로벌 공급망의 미래는 어떨까. 우리는 글로벌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중국발 변수(재생에너지)’를 통해 4가지 V의 움직임을 살펴보기로 했다. 

중국 정부는 2018년부터 국가에너지국(NEA)의 주도하에 청정에너지 보급을 확대하는 한편 기존 화석연료의 사용은 줄이고 있다. 중국 정부가 도시 전역의 석탄 사용량을 통제하고, 원료 생산(채굴ㆍ제련ㆍ유통)에 쿼터제를 적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경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중국은 2022년부터 산업용 석탄 발전에 이용하는 전기 요금을 인상하고 에너지 소비 총량을 제한하는 등 통제 정책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며 “중국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은 향후 3~5년간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중국이 밀어붙이는 재생에너지는 기후에 따라 생산량과 공급량이 달라진다. 그래서 재생에너지가 에너지정책의 중심축이 되면 ‘전력난 변수’에 봉착하기 쉽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날씨에 따라 에너지 생산량이 들쭉날쭉하니, 변동성이 커진다. 언제 어디서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니, 가시성도 떨어진다. 언제 얼마만큼을 생산할 수 있을지도 예측하기 어려우니 ‘동기화’도 약해진다.

 4가지 V의 움직임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자. 가령, 해가 쨍쨍하지 않으면 태양광 발전소가 일정한 양의 전기를 생산하지 못한다. 이상 기후로 예상보다 흐린 날이 오래가면 목표했던 전기 생산량을 달성하지 못한다. 

이는 나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전기가 부족하면 원재료를 생산하는 공장의 가동률이 떨어지고, 결국 원재료 생산량이 가파르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럼 부품을 못 만들고, 완제품도 생산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문제는 이런 악순환이 속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가령, 소비자가 상품을 주문해도 부품이 부족해 완제품을 생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럼 하나의 완제품이 소비자에게 도착하는 시간도 길어진다.

중국 정부는 2022년부터 에너지 통제 정책을 강화할 방침이다.[사진=연합뉴스]
중국 정부는 2022년부터 에너지 통제 정책을 강화할 방침이다.[사진=연합뉴스]

주목할 점은 이런 문제가 중국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란 점이다. 유럽에서는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에너지 대란으로 천연가스, 알루미늄, 비료 등 원료 공급난이 심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천연가스의 공급 부족이 심화하며 제품의 생산과 판매에 애를 먹고 있다. 세계 경제의 근간을 지탱하는 주요국들의 상황을 살펴보면 2022년 글로벌 공급망은 마비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

■경제적 관점 = 이쯤 되면 혹자는 “공급이 부족해도 수요가 줄면 모두 해결될 일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주문량이 적어지면 공급자는 그만큼 생산 여력을 회복할 수 있고, 상품의 생산과 조달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마침내 수요와 공급이 균형점에 도달하면 공급망도 정상적인 사이클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하지만 여기선 따져봐야 할 문제가 있다. 과연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얼마나 있느냐는 거다. 경제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유례없이 높아진 글로벌 총수요가 2023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그 중심에 소비 수요가 있다.[※참고: 총수요란 모든 경제 주체들이 소비 또는 투자의 목적으로 사려고 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합을 의미한다.]  

이재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소비 수요를 촉진하는 요인으로 가계의 순자산 증가 및 가처분소득 대비 저축률의 하락이 있다” 면서 “가계의 소득 여건이 개선되면서 소비 여력이 크게 확대되고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2021년 3분기 미국 가계의 순자산은 145조 달러(약 17만2115조원)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가처분소득 대비 저축률은 2021년 11월 기준 6.9%로 2017년 12월 이후 가장 낮았다. ‘쓸 돈’이 많아지니 가계의 구매력도 상승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미국 가계의 소비 지출은 1047억달러(약 124조2789억원)를 기록하며 10월 대비 0.6% 증가했다.

지표는 다르지만, 우리나라 역시 가계의 소비 여력이 좋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다르지 않다. 자본시장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1분기에서 2021년 3분기까지 가계의 초과저축액은 67조원으로 이는 2020년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3.5%, 명목 가계최종소비지출의 7.8%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가계의 저축률이 높아지면 가계가 지갑을 닫고 소비를 줄인다는 신호로 해석한다. 하지만 초과저축은 미래 소비 가능성을 대비해 비축해두는 자산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본시장연구원도 “초과저축액 67조원이 향후 1년에 걸쳐 모두 소비에 이용된다고 가정하면 총수요 부양효과가 적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공급은 제자리, 소비 여력은 껑충 

관건은 가계의 초과저축이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얼마나 있느냐인데, 소비지출 전망ㆍ가계수입 전망 등을 합산해 산출하는 국내 소비자심리지수(CCSI)를 살펴보면 2021년 8월부터 11월까지 꾸준하게 상승세(102.5→103.8→106.8→107.6)를 탔다. 

1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03.9로 11월과 비교해 3.4% 떨어졌지만 2020년 12월(89.8)보다는 15.7% 상승한 수치라는 점에서 미래 소비를 향한 가계의 기대감이 꺼지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참고: 소비자심리지수는 100 이상일 경우 소비자가 미래 경기상황을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종합하면 가계의 소비 여력과 소비심리가 지속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건데, 이를 공급망 대란에 빗대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2022년에도 글로벌 공급망의 참여자들이 생산 여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총수요는 지속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총공급과 총수요의 간극이 커지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성도 높아질 공산이 크다.” 2022년에도 공급망 대란을 해소하기 쉽지 않을 거란 의미다. 

글로벌 총수요와 총공급의 간극이 커질수록 공급망의 불안정성도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글로벌 총수요와 총공급의 간극이 커질수록 공급망의 불안정성도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네트워크 관점 = 이 때문인지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성이 장기화를 넘어 디폴트값이 될 거란 관측이 나오기도 한다. 이덕희 카이스트(기술경영학) 교수는 “현대 사회는 다수의 경제적 주체가 얽히고설켜 있는 복잡계 네트워크의 사회이기 때문”이라며 네트워크 관점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미래를 진단했다. 

이 교수의 분석을 자세히 들어보자.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정보의 유통과 거래가 쉬워지면서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거래 주체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로 인해 정보를 교환하고 전파하는 연결망이 복잡해지면서 정보를 받아들이는 각 주체들의 반응에 ‘시차’가 존재하게 됐다. 공급망 참여자들이 늘어날수록 공급망 내 정보의 연결성은 되레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결국 공급망의 불안정성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자동차 시장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 교수의 분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동차 회사의 공급망에는 8000곳 이상의 크고 작은 부품사들이 존재한다. 고객사, 운수회사, 카드사 등의 거래처를 포함하면 자동차 공급망의 참여자들은 더 늘어난다.

공급망 불안정성 자극하는 요인 

이렇듯 숱한 고객사와 하청업체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공급망의 어느 한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공급망의 내밀한 부분까지 한눈에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자동차 회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보의 연결성이 낮은 공급망 최하단의 거래 참여자들까지 살펴봐야 하고, 따라서 문제 지점을 발견하기까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자동차 회사가 정보를 확인하고 문제를 인식한 뒤 대응책을 마련하기까지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는 거다.

단기적인 변동성이 축적될수록 공급망이 무너질 위험성도 커진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단기적인 변동성이 축적될수록 공급망이 무너질 위험성도 커진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처럼 공급망의 문제를 해결하는 속도가 더딘 상태에서 수요(자동차 소비자 등)는 지속적으로 늘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먼저, 수요와 공급의 괴리가 커질 거다. 주문은 밀려드는데 판매할 물량은 부족하니 상품(자동차)의 가격이 오를 가능성도 높다. 

가격은 치솟는데 상품을 받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리니 소비자들이 대체재로 눈길을 돌릴 공산도 크다. 자동차 회사의 입장에서는 수요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변수들이 많아지는 셈이다. 이는 자동차 공급망의 변동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앞서 전통적 관점에서 살펴봤듯 변동성이 클수록 공급망은 불안정해진다. 

이덕희 교수는 “단기적인 변동성이 자주 축적될수록 공급자는 새로운 정보를 업데이트해 새롭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상황에 수시로 직면한다”면서 “공급망의 ‘과잉 네트워크’를 개선하지 않는 이상 이런 현상은 반복적으로 나타날 것이고, 이는 공급망의 정상적인 작동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공급망 리스크는 강도만 다를 뿐 항상 존재할 것”이라며 “수요와 공급의 정량적인 변화로 수급이 균형점을 찾고 공급망이 안정성을 회복해도 그것이 되레 일시적인 현상일 뿐 언제든 다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21년 하반기 ‘공급망 대란’이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전기가 불안정하니 공장을 못 돌리고, 공장을 못 돌리니, 원재료를 만들지 못하고, 원재료를 만들지 못하니 완제품이 부족해진다. 이럴 때 수요라도 위축되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수요는 폭발하고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공급망 불안정 해소하려면

그렇다고 뾰족한 답도 없다. 공급망 네트워크엔 너무나 많은 참여자가 몰려 있어 대란의 원인을 찾아내기 힘들다. 우린 이제 무얼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공급망을 혁신하는 것이다.

김태복 한양대(산업공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공급망을 혁신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제조 기술의 혁신을 통해 공급망을 위협하는 요인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공급망 자체를 단순하게 만드는 거다. 이를 위해서는 공급망을 정교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젠 공급망까지 혁신해야 할 때가 됐다. 실패하면 우린 ‘공급망 대란’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지 모른다.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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