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재정건전성 고찰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은 OECD 회원국과 비교할 때 나쁘진 않다. 하지만 국가부채 증가 속도는 가장 빠르다는 지적을 받는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2020년 2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국가부채 증가 속도를 주시하고 있다”면서 “재정건전성을 지킨다는 약속을 못 지키면 신용등급 하락 위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교롭게도 이 우려는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한 추경을 통해 현실화하고 있다.

국가의 재정건전성 확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사진=뉴시스]
국가의 재정건전성 확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사진=뉴시스]

경제는 종종 생태학에서 그 원리와 해법을 찾는다.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 mons)’ 이론도 그러하다. 주인이 없는 공동 방목장은 농부들이 경쟁적으로 더 많은 소를 끌고 와 풀을 뜯게 한 끝에 곧 황폐화하고 만다는 것을 미국 생물학자인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이 은유적으로 빗대 표현했다. 

사실 성숙되지 않은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재화나 시설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빨리 망가짐을 쉽게 볼 수 있다. 20대 대통령선거 공약을 재정의 눈으로 살펴보면 여야를 막론하고 ‘증세는 없다.

그러나 복지를 위해 돈은 더 풀겠다’로 요약된다. 이게 가능할까. ‘증세 없는 복지’라는 요술 램프는 없다. 정치인들의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populism)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고 소유 재산을 국고에 기꺼이 출연하겠다는 정치인도 없는 듯하다. 결국 공약대로 복지를 실행하려면 공유지인 ‘국고’를 축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할 때 나쁘진 않지만 국가부채 증가 속도는 가장 빠른 것으로 지적된다. 이미 빨라진 부채비율의 증가 속도는 관성의 법칙처럼 쉽게 꺾이지 않는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Fitch)가 2020년 2월 보고서에서 제기한 ‘한국의 국가부채 증가 속도를 주시하고 있다. 재정건전성을 지킨다는 약속을 못 지키면 신용등급 하락 위험으로 작용할 것’이란 경고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 우려는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한 추가경정예산(추경)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방역지원금 300만원을 지급한 지가 얼마나 됐다고 정치권은 벌써 1000만원을 추가로 지급하겠다고 한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그 발언의 속내가 6월 지방선거에서 표를 의식하는 행위라는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유지의 비극을 방지하는 방법은 없는가.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지의 비극이 항상 나타나도록 만들 정도로 바보는 아니므로 ‘이해관계자들의 조정’을 통해 공유지의 비극 문제를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누가 조정 역할을 하는가. 사회의 집단지성을 이끄는 공신력을 지닌 준거집단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선거 과정을 보면 이들의 영향력이 현저히 약화했음을 알 수 있다. 지식인이나 종교인, 시민단체의 건강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중 일부는 자극적·선동적·혐오적 발언을 쏟아냈다. 

정치권은 여야 가리지 않고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해 국가의 재정건전성 유지에 역행하는 추경을 또 편성하려 들 것이다. 필자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금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올해 예산의 불요불급한 지출 항목을 조정해 재원을 마련하되 그러고도 부족할 경우 추경을 편성하는 게 상식적이라고 본다. 

모든 사람을 위한 ‘국고’에서 공유지의 비극이 발생하는 것을 막으려면 우리나라도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규정한 마스트리히트 조약 제104조(공공적자는 국민총생산의 3% 이하,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의 60%를 초과하지 않도록 규정)를 모델 삼아 정치권의 무분별한 재정지출 편성 시도를 강제적으로라도 막을 재정준칙을 조속히 법제화해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남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우리나라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국가 재정건전성 확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개인이나 국가나 빚진 이는 빚 준 사람의 종이 되는 법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  | 더스쿠프 
acnanp@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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